[무비스트=박꽃 기자]
드디어 영화 <치즈인더트랩>을 개봉한다. 2016년 방영된 드라마에서 아쉬움이 컸던 당신 팬들을 달래줄 수 있겠다.
그 아쉬움이 백 퍼센트 해소될 거로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다.
또다시 대학생을 연기 하려니 벅차지 않던가. 나이가…(웃음)
다들 알겠지만, 내 나이가 서른여섯이다. ‘유정’의 극 중 나이는 스물네 다섯 살 정도로 설정돼 있으니 거의 띠동갑이다.(웃음) 그렇게 어린 나이를 연기 하려니 나 역시 좀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보는 분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함께 연기한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또래여서 혼자서만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관객 역시 나를 캐릭터 ‘유정’으로 봐주길 바란다.
아무래도 어려 보이려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일단 어울리지도 않는 단정한 옷을 입었다. 머리는 차분하게 빗고, 책가방도 메고,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캠퍼스를 거닐었다. 따뜻한 봄 날씨에 학생들이 즐기는 여유를 느껴보니 이런 맛에 대학 생활을 하는구나 싶기도 하더라. 내가 기억하는 대학 생활은 뉴스에 나오는 얼차려 같은 안 좋은 모습이 거의 다였다. 아니면 드라마 <토마토>(1999) 정도.
<토마토>… 대체 언제 드라마인가.(웃음) 극 중에서 심지어 고등학생 연기까지 소화했다.
고등학생 시절 분량이 많았으면 아역을 썼을 텐데, 딱 두신 밖에 나오질 않아서 고민 끝에 직접 연기했다. 보정을 잘 해주십사 하고…(웃음) 아마 내 마지막 대학생 역할이자, 마지막 교복 입은 역할이 될 것 같다.
원작 웹툰 <치즈인더트랩>의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 16부작 드라마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아쉬움 없이 보여줬는가.
두 시간이라는 러닝 타임 동안 복잡미묘한 ‘유정’이라는 인물을 다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전부 다는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인물의 특색을 부각해 짧고 강하게 보여줬다고 본다.
여전히 아쉬움이 있는 모양이다. 언론시사회 때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치즈인더트랩>은 다양한 인간 군상과 여러 심리전이 묘미인 작품이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과도한 축약이 필요한 분야보다는 여러 편을 이어서 보여줄 수 있는 웹드라마 형식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맡은 ‘유정’역을 과감히 포기하고, 나보다 더 젊은 친구들을 캐스팅해서 직접 찍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을 정도다. 앵글, 구도, 색감 모든 걸 다 신경 써서 말이다. 그만큼 매력 있는 콘텐츠다.
영화 버전에서는 드라마와 달리 스릴러 요소가 상당히 늘어났다. 여성에 대한 무분별한 폭력이나 집착, 스토킹 등의 장면이 여러 차례 묘사되는데.
(여성에 대한 폭력은) 요즘 특히 주목받는 문제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당연히 불편한 관객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잔인한 장면을 워낙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간접적인 묘사는 찬성해도 직접적인 노출은 반대했다. <치즈인더트랩>에서도 사실 이렇게까지 잔인한 장면을 자주 보여줘야 하나 생각했다. 많이 잘라내고, 최소화한 게 지금의 버전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점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내 여자친구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유정’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이다. 폭력적인 사건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관객이 기대한 로맨스 정서도 분명하다. 오글거릴 정도로 말랑한 대사도 자주 등장한다.
사실 말랑한 연기를 잘 못 한다. 선호하지도 않는 편이다. 그래서 설레는 대사를 건네는 게 드라마 촬영 내내 힘들었고, 이번 영화 촬영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극장에서 ‘홍설’(오연서)에게 카디건을 벗어주면서 그의 귀에 대고 “예쁘다, 오늘” 하고 말하는 장면은… 하…(웃음) 실제 연애 관계라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촬영장은 단둘이서만 연기하는 곳이 아니지 않나. 정말 정신력으로 버텼다.(웃음)
내가 뭐라고 감히 그들을 비교하겠나.(웃음) 느낀 점 정도를 말하자면 고은 씨는 솔직하고 귀여운 스타일이다. 실제 성격도 사랑스러운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연서 씨는 똑 부러지는 데가 있다. 웹툰의 ‘홍설’과는 연서 씨의 그런 성격이 좀 더 비슷하지 않았나 한다. 외모 싱크로율도 좀 높은 편이었던 것 같고.
<치즈인더트랩>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주목하는 작품인 것 같다. 당신의 꾸준한 중국 활동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 배우 최초로 웨이보 개인 채널도 개설한다고 들었다.
나도 국내 배우 중에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인기가 많아서 하게 된 건지, 대표님이 일을 잘 해주셔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한한령 때문에 한국 배우들의 중국 활동에 큰 제약이 걸린 상황인데, 당신은 그 영향을 다소 피해 가는 것 같다.
음. 최근 2~3년간은 나 역시 한한령 때문에 중국 작품 출연에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 지난달 산동공항에서도 안전 문제로 입국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 1,000명에 가까운 취재진이 몰려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회적으로나마 한한령이 남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 배우들의 활동을 장려해주려는 여러 움직임이 있어서, 누구 하나가 그 물꼬를 트기만 한다면 조금 더 활발하게 중국에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워낙 큰 시장이다.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물론 그렇지만, 그렇다고 중국만 염두에 두고 일하는 건 아니다. 국내 작품으로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한국에서 작품 하나를 하면 중국에서도 하나 하려고 하는 식으로 계획하고 있다. <치즈인더트랩> 일정이 마무리되면 내년쯤 중국에서 좋은 작품에 합류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촬영 여건과 중국 현장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시스템만 놓고 보면 중국이 훨씬 좋다. 시스템이 완전히 할리우드다. 촬영 시간과 쉬는 날짜를 계약으로 미리 정해 놓는다.
당연하다. 내 경우에는 비자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휴식 없이 한 번에 촬영했을 뿐이다. 보통은 사전에 계약한 시간을 엄수한다. 실제로 계약한 시간이 다 끝나면 모두 칼같이 돌아간다.(웃음) 그런 상황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 안에 못 찍은 사람이 잘못했다는 분위기가 합의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 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으면 현장이 상당히 분주해진다.
언어가 원활히 통하는 게 아니다 보니 연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심정적으로 힘들더라. 상대방 대사까지 다 외워서 알아서 리액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서 모처럼 드라마 <내 딸 서영이>(2012)라는 작품에 출연했는데, 그때 많은 걸 느꼈다. 아, 내가 좋아했던 게 이런 거였지. 말이 통하는 사람과 서로 호흡하고 교감하며 연기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지. <나쁜 녀석들>(2014)을 하면서 그 감흥이 증폭됐다. 그간 해보지 않은 역할에 도전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대중에게 박해진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연기와 활동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들으면서, 힘들어도 아직은 좀 더 욕심을 부려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작품이든 중국 작품이든, 한 해도 연기를 쉰 적이 없다. 일 욕심이 많은 편인가보다.
지금은 욕심이 많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때인가.
음. 이런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골라서 할 수 있을 만큼 일이 많이 들어온다. 정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언제까지 이럴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향후 얼마간은 일에 전념할 생각이다. 일하고 싶은데 쉬어야만 하는 시기도 분명히 온다. 일이 없어서 뭐라도 해야 할 때가 오기 전까지는, 열심히 해야 한다.(웃음)
지난 시간 동안 그 기세로 <소문난 칠공주>의 ‘연하남’ 타이틀도 확실히 벗어 던졌다.(웃음)
진짜 많이 노력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뭘 해도 사람들이 연하남! 연하남! 그러더라.(하하하)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다행히도 앞으로는 <치즈인더트랩>의 ‘유정 선배’라는 역할을 벗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내게 큰 의미를 남긴 작품이다.
꼭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웃음) 솔직히 <사자>는 너무나도 두려운 촬영이다. 아직은 한 신에 두 명 이상 나오는 촬영은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다. 한 신에 네 명이 다 같이 나오는 신도 있다. 그러면 분장에 걸리는 시간은 물론이고, 똑같은 자리와 구도를 유지하면서 연기해야 해서 하루에 한 신밖에 못 찍는다고 하더라. 앞으로 해내야 할 숙제라 너무너무 걱정된다. 네 가지 역할의 간극을 어떻게 벌릴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왕성한 드라마 활동에 비하면 영화 출연은 거의 없던 편인데.
<치즈인더트랩>이 모처럼 만의 영화긴 하지만,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이다. 좀 더 영화스러운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다. 연극처럼 무대에 서는 건… 자신 없다. 무대 울렁증이 있어서, 대사를 까먹으면 센스 있게 넘어가질 못하고 울 것 같다.(웃음)
박해진 개인에 대한 질문도 해보자. 유명한 ‘신발 덕후’다.
신발 2,000족 정도를 모았었다. 최근에 좀 정리해서 500족 정도 남았다. 내가 사는 집이 아니라 신발이 사는 집 같아서 말이다.(웃음)
그 마음, 정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른바 ‘덕질’의 기본은 누가 뭐래도 정가 구매다. 누가 이미 샀던 걸 비싼 값에 되파는 건 절대 사지 않는다. 그건 덕질이 아니라 ‘돈질’, ‘현질’이다. 내 노력으로 살 수 있는 신발은 다 사봤다는 생각이 드니 더 안 해도 될 것 같더라. 나중에 결혼할 사람이 내 취미를 이해해줄까? 내 애들이 이걸 가만히 놔둘까? 싶은 생각도 들고.(웃음)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데뷔하고 나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형편이 안 됐다. 어릴 때부터 워낙 신발을 좋아해서 친구들끼리 돌려 신기도 많이 돌려 신었다.(웃음) 두 달 넘게 용돈을 모아서 당시 돈 15만 원을 주고 산 중고 에어 맥스 97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이야 흔해졌지만 당시에는 귀한 신발이었는데, 완전히 사기를 당했다. 280사이즈라더니 300사이즈가 왔다. 발등 스카치는 반도 안 남아있고 발바닥에 쓰여 있어야 할 XY라는 글자는 하나도 안 남아 있더라. 신발 마니아들끼리는 발바닥에 써 있는 XY라는 글자가 얼마나 남아있는지에 따라서 가치를 평가한다.(웃음) 심지어 에어까지 물렁물렁하고… 지금처럼 사이버 수사대가 있을 때도 아니라 한 번 사기 당하면 끝일 때였다. 지금까지도 한이 맺혀 있다.(웃음)
재밌다.(웃음) 요즘에 관심 있는 건 뭔가. 뷰티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다고 들었다.
관리받는 걸 좋아한다. 관리해야 할 나이가 됐다. 화장 솜 하나에도 민감할 나이라...(하하하) 요즘에 관심 있는 건 조명과 가구다. 하나에 꽂히면 그 디자이너가 만든 모든 걸 찾아본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나서 집에 갔는데 내게 달려 나오는 조카들을 볼 때. 징글징글한 나이지만 어쩐지 그 애들을 보면 힘이 난다.(웃음)
2018년 3월 15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_마운틴무브먼트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