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지금도, 그때도 한영희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활동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13년 전,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연분홍치마’라는 단체를 발족할 때부터 그의 관심사는 ‘소외’나 ‘배제’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평생 미군을 상대하며 살아온 기지촌 여성 ‘양희 이모’의 목소리를 담은 <마마상>(2005)을 시작으로 잇달아 여성과 성 소수자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들만큼 유려하게 찍을 줄은 몰랐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마음만큼은 진실했다. 용산참사, SK브로드밴드 하청노동자, 쌍용차 해고노동자까지 그와 연분홍치마의 시선이 닿는 곳이 조금 더 너르게 퍼진 지금,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녕 히어로>를 이야기하기 전에, 당신이 오랫동안 소속되어있는 ‘연분홍치마’라는 단체부터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당신의 작품 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다.
여성주의문화운동을 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활동가가 되기 위한 예비운동가의 모임으로 시작했다. 2004년 발족했으니 올해가 13년째다. 나를 포함한 5명의 멤버가 활동 중이다.
<마마상> <3XFTM>(2008)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까지 연분홍치마의 초기 작품은 여성과 성 소수자를 주로 다뤄왔다.
당시 우리 단체의 가장 큰 관심사가 섹슈얼리티였다. <마마상>은 기지촌 성매매 산업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성매매특별법’ 이 제정된 2004년쯤 우리 단체의 야심 찬 꿈은 한국의 성 산업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었다. 미군클럽에서 일하다가 도망가는 여성 사례를 취재했는데, 트랜스젠더 여성도 성매매 산업에 종사한다는 걸 알게 됐다. 대체 어떻게 성 산업에 유입된 걸까 궁금했다.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만들고, 카메라 촬영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애초에 연출 전공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다.(웃음) 카메라를 든 이유는 활동을 더 잘 하고 싶어서였다. 현장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에게 상황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마상>이 다루던 이야기와 결합해 있던 문제 중 하나가 성전환자의 (주민등록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운동이었다. 당시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게 최현숙이다.
당신의 전작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주인공인 그 최현숙 말인가.
맞다. 최현숙은 그 전까지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가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성 소수자 운동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2008년 총선에 종로에 출마 하겠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우리가 당신의 활동을 촬영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연분홍치마는 적극적인 여성, 성 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이자 영상활동가들의 모임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이후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2011)을 제작해 선보였다.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편집하던 2009년 초, 뉴스에서 용산참사 생중계를 봤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해 가을 절친한 활동가 한 분께서 용산참사 현장을 기록할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하길래 흔쾌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 카메라 역할을 한 것이다. <두 개의 문>은 그때 느낀 문제의식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개봉한 <안녕 히어로>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자녀 이야기를 담았다.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문제에서 보다 다양한 인권 문제로 활동 방향이 확장된 느낌도 든다.
작품 흐름으로만 보면 아마 괴리감이 있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연분홍치마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켜봐 온 분들은 우리가 왜 그런 활동을 하는지 이해한다. 우리는 특정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특정한 사건만 다루지 않는다. 영역이나 의제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용산참사 현장이든, 국가폭력이 일어나는 현장이든, 해고자들이 투쟁하는 곳이든 성소수자 인권운동이나 여성주의 운동을 하던 가치관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관심이 간다. 그래서 세월호 현장도 함께했고, ‘퇴진행동’(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활동도 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구체화한 계기가 있었을 텐데.
<두개의 문>을 개봉할 때 배급위원으로 가장 먼저 나서준 분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다. 시사회 현장에서 그분들이 얼마나 많이 우시던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파업 이후 굉장히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을 맞던 상황이었다. 개봉을 끝내고 바로 쌍용차 현장에 달려갔다. 그게 2012년 일이다.
그렇게 <안녕 히어로>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는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아닌, 그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기획 단계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2012년 11월 쌍용차 해고노동자 투쟁 현장을 찾은 후, 기획은 바로 떠올랐다. 특히 김정운씨가 눈에 띄었다. 노동자 중에 가장 아이들 자랑을 많이 하는 팔불출 같은 분이었다. 조심스럽게 제안 드렸다. 이러이러한 영화를 만들 예정이고, 나중에는 개봉도 가능할 수 있다고. 그랬더니 “역시 연분홍치마는 다르네요”라고 말씀하시더라. 기획이 좋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왜 노동자가 아닌 그들의 자녀를 비추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노조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글을 쓰던 분이라 그런지 기획 의도를 직감적으로 알아채더라.
아버지인 김정운 씨의 허락을 받았으니, 그 다음은 아내와 아이들과 이야기해야 할 차례였겠다. 카메라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촬영인 만큼 사전에 면밀한 협의가 필요했을 것 같다.
운이 좋았다. 김정운 씨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게 큰 장점이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촬영에 돌입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런 성격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아내 역시 너무나 흔쾌히 촬영을 수락했다. 아이들이 아빠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차마 물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게 쌍용차 해고노동자 대부분의 고민이었다.
충분히 이해되는 고민이다. 주인공인 현우 역시 촬영을 흔쾌히 받아들이던가.
아니, 거기부터 문제였다.(웃음) 김정운 씨가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둘째 민서는 좋다고 했는데 정작 현우는 별로라고 했다더라. 현우가 싫다면 민서 중심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다행히 김정운씨 내외께서 도와주셨다. “민서는 영화에 나오는데? 넌 안 나와도 괜찮겠어?” 하는 식으로 말했더니 현우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더라.(웃음)
큰 도움을 주셨다.(웃음) 현우 같은 10대 초반의 소년과 친하게 지내본 적 있는가.
단 한 번도 없다.(웃음)
그럴 것 같더라.(하하하) 영화를 보는데 당신이 현우를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다.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에 출연한 사람들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던 장면과 비교하면 상당히 조심스럽더라.
현우를 만나기 전에 가장 컸던 건 공포심이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기획부터 자신이 없었다. 그 나이 소년과 대화를 잘 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10대를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면 현우의 시점을 (왜곡하지 않고) 견지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경험이 없고…
촬영 여건은 갖춰졌는데, 심리적 난관이 닥친 셈이다.
자꾸 일희일비하게 되더라. 현우와 민서가 즐거운 모습을 보이면 나도 덩달아 업되고, 아이들이 침울하면 마치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가 대역죄인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들 반응에 천당과 지옥을 오고갔다. 카메라를 드는 대부분의 사람은 등장인물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이 사람의 인생을 내가 함부로 규정짓고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안녕 히어로>가 현우와 민서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고민스러워 잠을 못 잤다.
그래도 용케 촬영을 다 마치고 개봉까지 했다.
촬영 중간에 와락(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심리치료 공간)에서 심리치료 선생님의 도움도 받았다. 두 친구가 카메라 뒤로 숨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부터 들어서 말이다. 나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까 걱정된다는 말에 서천석 선생님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 응? 그게 답이야? 굉장히 허무했다.(웃음)
당신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두 친구에게도 카메라가 너무 낯선 존재였기 때문 아닐까.
그럴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큰 착각을 했구나 싶더라. 나는 10대를 마치 백지상태 같은 순수한 시절처럼 생각했다. 단 하나의 점을 찍어서도 안 될 것만 같다는 걱정을 했다. 그게 착각이다. 청소년 역시 이 사회에 존재하고,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이 사회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영향도, 부정적인 영향도 모두 미칠 수밖에 없다. 그들도 그러면서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현우에게 ‘박카스를 먹고 큰 힘이 생기면 어디에 쓰겠냐’고 질문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현우의 대답 또한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나온 것 아닐까.
현우가 그 질문에 대답하던 때는 쌍용차 노동자가 공장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하던 시기다. 이미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굶고, 청와대 앞에 주저앉고… 모든 상황에서 대부분 졌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아빠는 새벽에 잠깐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길 반복하니, 현우 입장에는 계속 지는 싸움을 왜 계속하는지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만약 자기라면 (박카스를 먹고 큰 힘이 생겨도) 쓸데없이 용기 부리지 않겠다는 말,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차피 안 되는데? 그러니 무조건 살아남는 방법만 생각해야지 싶은 거다. 세상에 대한 절망감 같은 게 있었다고 본다.
흠.
예컨대, 박근혜를 물러나게 한 경험 이후 시민사회는 함께 움직이면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본다. 물론 그런 순간이 똑같이 다시 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떠올린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이다. 아마 현우도 노동자가 승리했다는 뉴스를 접해봤다면, 그게 굳이 아빠의 경우가 아니었더라도,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친구들의 생각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현우와 많이 가까워졌나.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더라. 내가 너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어필을 상당히 많이 했다. 일방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지칠 때도 있었다. 다만 그 외에는 전혀 속 썩인 건 없다. 촬영을 펑크낸 적도 없고,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없다. 다만 외부 촬영을 나갈 때는 작전 비슷한 걸 짰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더라. 카메라가 이쪽으로 지나갈 테니까, 너는 모르는척 ‘슥’ 지나가라는 식으로.(웃음) 친구들과 농구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도 지도 선생님께 미리 협조를 구했다. 현우가 촬영 사실을 주변에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아 하니까 선생님께서 농구감독님이 우리 영화 주인공이라고 설명해주실 수 없겠냐고.(웃음)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현우의 감정을 가장 중점에 두고 촬영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우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부모의 감정은 어떤지… 그런 것들을 잡아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도 영화를 함께 봤다고 들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영화가 다소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평가를 하더라.(웃음)
아마 언론시사회라는 걸 처음 해봤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가가 어떨지 걱정이 앞서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셨던 것 같다.(웃음) 나에게는 오히려 일반 관객에게 훨씬 큰 전달력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다만 해고 노동자 가족 중에는 아직도 복직을 못 한 분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문제를 영화로 다시 본다는 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파업 장면은 언제 봐도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더라.
김정운 씨는 영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던가.
부끄러워서 못 보겠다고 했다.(웃음) 보자마자 한 말이 “내가 술 안 먹었을 때가 없네”였다. 워낙 술이 세서 얼굴색 하나 안 바뀌니, 촬영하는 나도 그가 술에 취했다는 걸 잘 몰랐다. 본인은 민망했던 모양이다. 이 장면 빼달라, 저 장면 빼달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아무래도 가족 이야기가 낱낱이 드러나니까. 하지만 그 장면 빼면 영화가 안 되는데? 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지.(웃음)
영화에는 김정운 김현우 부자의 이야기만 나오지만, 촬영하면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으리라 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들은 성 소수자 이슈에 대해 거의 몰랐다. 퀴어문화축제라는 게 있다고 알려주고, 조심스럽게 무지개 배지도 달아드렸다.(웃음) 싸움을 하는 현장은 어디든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연대 제안을 되도록 많이 하는 편이다. 이창근, 고동민 씨가 퀴어문화축제에서 연대 발언을 했고, 서울시청 무지개농성 당시에도 김정운 씨를 비롯한 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응원 와줬다.
성 소수자(게이) 합창단의 ‘지보이스’ 이야기를 다룬 <위켄즈>(2016)를 보면 그들이 쌍용차 투쟁현장에 찾아가 연말 공연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연분홍치마의 제안이라고 들었다.
맞다. 우리가 했다. ‘지보이스’와 쌍용차 노동자들이 협연을 한 적도 있다. 2015년 5월 열린 성소수자차별반대행동의날에 한 무대에서 같이 율동 하며 ‘콩그레츄레이션’(지보이스의 노래)을 부른 적도 있다.(웃음)
흐뭇한 이야기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한동안 연분홍치마에서 다른 감독들이 추진 중인 기획을 서포트할 것 같다. <공동정범>(2016)이 내년 1월 극장에서 개봉한다. 그 외에도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님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예정이다. 내 개인적인 기획은 그 뒤에 생각해볼 예정이다.
알겠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사실 웃을 일이 잘 없다. <안녕 히어로> 개봉은 반가운 일이지만 연분홍치마 내적으로 여러 안좋은 일이 겹쳤다. 함께 활동하는 김일란 감독이 건강 문제로 힘들어하는 상황이고, 이혁상 감독은 무급으로 휴식 중이다. 본래 유급 휴식기를 가져야 하는데 재정여건이 좋지 못했다. 나머지 3명의 감독이 기존의 활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활동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그 와중에 웃을 일이 있다면 배급사(시네마달) 직원들이 활짝 웃어줄 때?(웃음) 그리고 현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개봉하면 이런 게 좋은 거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시라.
<안녕 히어로>는 영화적 재미도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막연히 너무 슬프고 마음 아플 것 같아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과 함께하는 분들, 특히 10대 자녀와 어떻게 마주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관람하셨으면 한다.
2017년 9월 14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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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시네마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