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본 인터뷰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두 번 봤다고 들었다. 눈물도 흘렸다던데.
두 번째 봤을 땐 눈물이 나더라. 내 연기보다 선배님들의 연기가 좋아서 눈물이 났다. 첫 번째 봤을 때는 촬영 현장 추억에 젖어서 봤다. 두 번째 봤을 때는 ‘수현’을 만나기 위해 김상호 선배님이 하나 남은 알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간 장면 때문에 눈물이 났다. 외로운 상태의 ‘수현’에게 죽마고우가 찾아와서 건네는 말들이 내게 해주는 말처럼 위로가 되더라. 대본으로도 충분히 좋은 장면이었지만 영상으로 보니 더 좋았다.
영화를 본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반응이 되게 좋았다. 그런데 다른 쟁쟁한 영화들이 동일한 시기에 개봉 돼서 걱정도 된다. 그래도 연말에 극장을 찾는 분들이 많으니까 손익분기점은 넘기지 않을까 싶다. 잘됐으면 좋겠다.
언니 김옥빈은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
언니가 너무 좋아했다. 내 스스로가 연기한 걸 보면 항상 아쉽기만 하고 단점만 보인다. 언니가 그런 모습을 지켜 보면서 ‘넌 내 동생이 맞구나’ 그러더라. 언니도 신인 때 자신의 단점만 보이고 아쉬워했다면서 안 보이는 장점들이 더 많으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응원해줬다. 첫 상업 영화인데 이 정도면 잘했다고 칭찬도 해줬다.
고등학교 때 책으로 먼저 접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쑥쑥 넘어가더라. 원래 소설 속에선 샌프란시스코랑 뉴욕이 배경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화려한 외국의 길거리와 팝송을 상상했다면, 한국식으로 각색한 시나리오 봤을 땐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실제 촬영할 때도 김현식 님의 음악이라든가 80년대 분위기를 풍기는 레코드 판 같은 소품들이 너무 좋았다.
말한 대로, 원작과 완전히 닮았다고 할 순 없더라. 그래서 걱정됐던 부분이나,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오히려 한국식으로 각색 될 때는 어떤 느낌일까 라는 기대감이 컸었다. 또 ‘연아’의 경우, 소설 속에서는 수의사인데 영화 속에서는 여성 최초 돌고래 조련사로 직업이 바뀌었다. 이건 감독님이 ‘연아’라는 인물을 좀 더 능동적으로 그리고자 해서 바뀐 설정이다. 또 소설에서는 ‘수현’과 헤어진 ‘연아’가 자살을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다리다가 사고를 당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바뀐 설정들이 연아의 성격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연아’는 어떤 인물인가.
감독님과 ‘연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연아’는 감정이나 생각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수현’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여성 최초 돌고래 조련사라는 설정은 용기 있는 여성이라는 특징을 드러낸다.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연아’는 묵묵히 자기 길을 꿋꿋이 가는 인물이면서 자신이 가진 부드러움으로 ‘수현’과의 관계를 리드하는 인물이다.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눠보니 실제 성격도 ‘연아’와 비슷할 것 같은데.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아무래도 또래에 비해 차분하고 진중한 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한결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감독님이 이런 부분을 오디션에서 좋게 봐준 것 같다.
훈련 받은 것에 비해 편집이 많이 돼서 아쉬웠다. 조련사 분들 공연도 직접 가서 관람하고, 실제 수신호도 배웠다. 그런데 돌고래들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한 마리만 붙잡고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먹이 시간, 먹이량, 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 등이 규칙적으로 정해져 철저한 계획아래 훈련했다. 또 돌고래들은 수신호를 무작정 따르는 게 아니다. 돌고래들과 조련사 간의 교감이 있어야 따르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이 힘들었다.
돌고래와 함께 한 신 중에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실제 돌고래를 타는 장면이 있다. 영화를 본 친구들이 아래에서 기계가 밀어준 거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그림이 잘 나왔다. 이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몇 번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실패하고 또 연습했는데, 잘 나와서 다행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돌고래들과 교감이 제대로 안 되면 돌고래가 살짝 물기도 한다. 강아지들이 물 듯 애교스럽게 무는 거라서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기남았다. 또 실제로 조련사분들이 매 여름마다 공연을 하는데 여름에 같이 공연하자고 그랬다. 기회가 된다면 동참하고 싶다. 너무 감사하다.
30년 후 ‘연아’ 역할을 맡은 김성령 씨와는 닮았다고 생각하나.
처음에 김성령 선배님이 30년 후 ‘연아’를 맡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좋았다. 촬영이 없는데도 현장에 가서 선배님과 사진도 찍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엄마와 친구들한테 자랑했다.(웃음) 친구들은 사진을 보더니, 이야기 들었을 땐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서로 닮은 것 같다고 그러더라. 기뻤다.(웃음)
아직이다. ‘수현’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나 직접 연기할 때 ‘수현’ 같은 사람이 내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믿음직하고 한 여자만 평생 바라보는 남자는, 모든 여자들이 바라는 이상형인 것 같다.
‘수현’이 이별을 고했을 때, 본인이라면 기다릴 건가 아님 떠날 건가.
상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극중 ‘연아’와 ‘수현’의 관계에서는 ‘수현’이 ‘연아’에게 이별을 고하는 게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둘 사이에는 일반적인 연인과는 다른 엄청난 믿음이 있었고 그래서 7년이나 만났던 것이다. ‘수현’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함께 있어준 게 ‘연아’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당연히 결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별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이다. 그래서 ‘연아’는 헤어진 이후에도 기다렸던 것인데… 내 경우에는 상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아직 나이가 어린데, 연애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
‘수현’ 역의 변요한과 내외적으로 케미가 좋았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너무 좋다. 연기할 때도 예쁘고 애틋한 모습이 보여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30년 후의 ‘수현’을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모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요한 오빠는 낯가리는 성격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처음 봤을 때 ‘나와 같은 과구나’ 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성격을 잘 아니까 오히려 더 편했던 것 같다. 억지로 노력해서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분장실에서 요한 오빠와 같이 노래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더 도움이 됐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컷이 들어갔을 때, 오빠는 완벽히 ‘수현’에 이입했고 난 ‘연아’를 연기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변요한이 많이 챙겨 줬다고 들었다. 어떤 식으로 챙겨줬나.
무엇보다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변요한과 비슷한 성격이라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에서 불편한 건 없는지 계속 신경 써줬다. 너무 감사했다. 한번은 긴장을 심하게 하니까 오빠가 나랑도 친하고 본인과도 친한 동문을 불렀다. 함께 대기실에서 수다를 떨고, 촬영 하니까 긴장을 하지 않고 찍을 수 있었다. 그날 찍은 신이 소파에 누워서 미래에 태어날 아이 이름을 짓는 장면이었다. 덕분에 좋은 장면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데뷔작인 독립 장편영화 <초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 소년과 소녀가 만나 치유 받고 성장해가는 영화이다. 극중 스킨십도 전혀 없고 로맨스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둘의 모습이 예뻐 보였나 보다. 관객 분들이 ‘왜 마지막에 키스를 하지 않았냐, 실제로 촬영 이후에 사귀었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웃음)
김윤석과는 붙는 신이 많지 않았는데.
선배님이 출연한 작품을 거의 다 봤다. 워낙 무게감이 있는 작품을 많이 해서 처음 만날 때 긴장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김윤석 선배님은 후배들을 알뜰살뜰하게 챙겨주는 굉장히 푸근한 선배님이었다. 이야기의 절반이 딸 이야기일 정도로 좋은 아버지이기도 했다. 수시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후배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너무 좋은 선배님이다.
<커튼콜>에서도 박철민 등 선배님들과 사이가 좋았다고 들었다.
단체 카톡방이 있다. 이번에 함께 공연도 보러 다니고 연말에 파티도 하기로 했다. 영화 흥행에 상관없이 서로 잘 지내고 있다. 예산이 부족한 영화였지만 그만큼 똘똘 뭉쳐 연극 준비하듯 한 장면 한 장면을 만들었다. 연극과 영화를 동시에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현장을 앞으로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고맙고 감사했다. 그때는 소속사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이제 막 <초인>을 찍고 데뷔한 시기에 감독님이 믿고 뽑아 주신 게 감사했다.
<커튼콜> ‘슬기’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개성 있었는데.
난 원래 전라도 사람이다. 그런데 대구 사투리를 써야 했다. 심지어 경상도 중에서도 억양이 센 지역의 사투리를 구사했다. ‘슬기’가 사투리를 숨기고 있다가 후반에 들키는데, 그때 관객분들이 사투리를 숨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연기하려고 했다. 촬영장에 실제로 대구 분이 계셨다. 밥 먹을 때, 숙소 다닐 때 계속 그분을 쫓아다니며 사투리를 연습했다.(웃음)
일단 차기작은 정해진 게 없다. 사극을 좋아한다. 아예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이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도 80년대를 배경으로 연기했는데, 그 시대 소품, 도시 배경 등을 보면서 그때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시대,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 공부할 게 많아 분석하는 과정이 재미있더라. 사극 중엔 <다모> <태왕사신기> 같은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도약하고 싶은가.
단기간으로 목표를 잡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일이 선택하기보단 선택 받길 기다리는 입장이기도 하고 내가 어떤 작품을 만나 어떻게 대중과 만날지 모른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목표를 잡고 있다. 20대 때는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고 대중에게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30대 때는 ‘배우’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본인의 바람이 꼭 이루어 지길 응원하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웃음) 행복한 일이라고 했는데 자꾸 웃긴 게 생각난다. 어제 무대인사를 돌다가, 요한 오빠랑 세하 오빠가 동선이 엇갈리면서 부딪힌 적이 있다. 요한 오빠는 관객 분에게 선물을 전해주려고 했었고 세하 오빠는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부딪힌 거다. 그런데 부딪히고 나서 세하 오빠 표정이 너무 웃겼다. 나한테만 보였는데, 지금도 생각 하면 웃음이 난다. 요즘은 영화도 개봉되고 그래서 그런지 이런 소소한 일에 자꾸 웃음이 난다. 물론 영화가 잘된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
2016년 12월 26일 월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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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