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김수진 기자]
시작은 ‘돈’이었다. 사기꾼 ‘동현’은 7세 정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작은형 ‘동근’의 1억을 노리고 그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방해꾼들이 등장한다. 다운증후군에 시각 장애까지 캐릭터 하나는 확실한 형의 친구들. 장애인이 잘 먹고 잘 산다며 부러워하는 ‘동현’에게 ‘선우’는 “그럼 장애인을 하세요”라며 돌직구를 날린다. 무슨 직업도 아니고 장애인을 하라니… 배우 전석호는 자신이 맡은 ‘동현’에 대해 ‘마음의 장애를 가진 인물’이라고 표현한다. 드라마 <미생>의 ‘하 대리’로서 대중에게 먼저 얼굴을 알린 그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작은형>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본질과 완생을 꿈꾼다.
(본 인터뷰는 <작은형>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다. <조난자들>(2013) 이후 두 번째 주연 영화다.
그렇다.(웃음) 헌데 분량으로만 주인공이다. 맡은 캐릭터들은 극 중 중심 인물이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자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찰자 역할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형>이라는 영화도 형제에 대한 이야기고, 여러 가지 유사성이 많아 보이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연출을 맡은 심광진 감독님도 일전에 말했지만, <작은형>이 먼저 제작됐다. 엄연히 말하면 우리가 ‘큰 형’인 것이다.(웃음) 무엇보다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약 <작은형>이 단순히 형제의 우애만 그린 영화라면 출연하지 않았을 거다. 감독님과 영화를 찍기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당시 <작은형>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우리 영화는 형제애를 넘어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부끄러운 시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형>에 조정성과 ‘엑소’ 멤버 ‘도경수’가 출연한다. 이 또한 부담스러울 것 같다.
솔직히 관객의 선택에 맡기고 싶다. 인지도를 따지면 턱없이 부족하나 두 영화가 조명하는 포커스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 있다. 그리고 <형>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비교하기가 힘들다. 중요한 것은 우리 영화는 단순히 형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작은형>은 형제간의 우애를 넘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담겨있다.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가 평소 이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28세 때부터 장애인은 물론이고 노숙자, 가출 청소년, 문화 소외지역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각을 끊임없이 고민을 해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2년 동안 그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노숙자 분들과 공연을 하기도 했고 1년 정도는 문화 소외지역 등을 다니며 어려운 친구들과도 공연을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 스스로가 알고 있으니 부끄럽고 불편했다. 그런 마음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상대에게 전해지더라. 그런데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니 차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작은형> 덕분에 다시 한번 배웠다. 정말 감사한 작품이다.
사실 <작은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런 적나라한 표현이 좋다. 평소 성격도 불편한 시선들을 굳이 피하지 않고 언제나 솔직하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 ‘동현’이 ‘동근’(진용욱)과 그의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 신이 있다. ‘동현’은 그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짓누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불편한 시선과 상황들은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저 아름답게만 비춰지면 ‘본질’을 볼 수 없다.
영화를 찍는 동안 특별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이 고생을 많이 했다. 관찰자의 시점을 그려내야 해서 줄곧 핸드헬드로 촬영이 진행됐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고생한 만큼 그런 노력들이 영화 속에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저 예산 영화 특성상 장소 섭외가 어려워 서울, 익산, 제천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촬영해야만 했다. 물론 여기저기서 지원을 많이 해주신 부분도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 전한다. 솔직히 <조난자들> 더 악조건이었다. 온통 눈으로 덮인 산장에서 20일 동안 촬영을 했는데, 전화도 터지지 않아 고생한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근’과 그의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 신이다. 알고 있지만 연기하는 나도 착각할 정도로 ‘재진’(이혁) ‘이정주’(선우)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더라. 실제로 혼란스러운 마음이 연기로 드러났다. <작은형>을 통해 배우가 감정을 계산한다는 것은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감정을 연기로 표현했기에 더 공감 가는 연기를 펼친 것 같다. 그밖에 ‘동현’이라는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가족의 탄생> <데몰리션>을 인상 깊게 봤었다. 이 작품들에는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자기 내면 깊은 곳을 콕콕 찌르게 하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감정을 이번 <작은형>을 연기하면서 반영하려고 했다. 그밖에 노력한 게 있다면, 최대한 힘을 빼고 연기하려 했다는 거다. 스스로 ‘동현’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하지 않았고 관객들에게 최대한 맡기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인물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렇다면 결과물이 나온 지금, 의도한대로 잘 보여진 것 같은가.
힘을 빼고 연기한 부분은 확실히 잘한 결정이었다. 아쉬운 것은 ‘동현’이라는 캐릭터를 내가 연기했다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했다면 사람들에게 더 어필이 됐을 것 같다. 또 초반 감독님이 내게 맞는 ‘동현’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나리오를 약간 수정한 부분도 있다. 물론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과정이 아쉬웠다. 내가 아니었으면 바뀌지 않았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임했다. 힘을 빼고 연기한 것도 감독님의 그림에 최대한 맞추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심광진 감독과 사이가 각별한 것 같다.
캐스팅 되기 전 영화 기획 단계부터 이야기를 자주 나눈 사이다. 다른 배우들 오디션에 참석해 상대 역할로 대사 합도 맞추고 그랬다. 그런 과정 중에 감독님이 내게 주연 제의를 한 것이다. 당시 난 “그냥 ‘차선책’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솔직히 감독님을 오래 봐왔지만 성향 자체가 다르게 때문에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나’라는 캐릭터에 맞춰 수정을 하니, ‘동현’에게 잘 녹아 들 수 있었고, 결국 출연 결정을 하게 됐다.
배우들 이야기로 넘어가면, 작은형 ‘동근’을 연기한 진용욱 배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호흡은 어땠는가.
일면식 없는 배우가 아니라서 편하게 지내며 연기할 수 있었다. 앙상블 적으로도 좋았고 밸런스도 잘 맞았다. 당시 익산에서 촬영을 많이 했는데, 한 숙소에서 지내다 보니 더 가까워지더라. 촬영 외에도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합숙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동근’이외에 ‘선우’(이정주) ‘재진’(이혁)과 붙는 서브 플롯도 흥미로웠다. 그중 ‘선우’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떻게 촬영에 임했나.
사실 그 장면에서 따뜻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연기하지 않고 상황 자체가 따뜻해 보이도록 연기했다. 그래서 더 무덤덤하게 연기 했다. 우리 영화 자체가 감정의 연속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보여주는 데 충실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친절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거기에다 보편적인 영화들처럼 확실하게 터지는 ‘감동 코드’도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점이 우리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도 따뜻함은 가장 오래 남아있을 영화다.
대답을 들어보면 소신이 강한 듯 하다. 문득 배우가 아닌 인간 전석호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동현’처럼 츤데레다.(웃음) 나 역시도 마음의 장애가 있고, 그런 부분들이 비슷했다. 또 예전부터 ‘서민을 위한 배우’가 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사람 냄새 나는 영화를 좋아하고, 연기를 할 때도 소소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참고로 난 이상주의자다.(웃음) 주변에서는 글쎄… 날로 먹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 삶을 돌아보면 ‘연기가 는다’는 말은 곧 ‘인간 전석호가 성장했다’는 말과 직결된다. 2012년까지 굉장히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다들 ‘짐승’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야기 하나에도 마음에 안 들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성격이었다. 어떻게 보면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것 같다. 당시 인간관계를 비롯해 여러가지로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런데 내 안의 또 다른 모습 같았던 <미생>의 ‘하 대리’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점점 사람이 돼 가는 것을 느꼈다. <작은형>도 그렇고 <미생>까지 모두 ‘짐승’이었던 날 사람으로 만들어 준 작품이다.(웃음)
<미생>의 ‘하 대리’는 정말 인생 캐릭터 같다. 제작진 쪽이 조만간 시즌2를 제작한다는 보고가 있는데, 출연 의사가 있는가.
‘하 대리’ 이미지가 많이 굳혀진 건 사실이다. 더구나 <미생>이후 노출이 많지 않다 보니 더 그런듯 하다. 그런데 시즌 2 출연에 대한 생각은 아직 없다.
생각해보니 이번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에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그렇다. 이번 영화에서도 소소한 이야기에 포커스를 두고 연기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난 단벌 신사로 나온다. 때문에 연기로 그럴 수 밖에 없는 타당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화 속 볼거리가 줄어 들게 될 수도 있겠지만, 볼거리가 줄어드는 만큼 ‘본질’이 더 잘 드러나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품활동은 많지 않았다.
사실 출연을 거부한 작품이 많았다.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스스로의 자신감의 문제다. 내가 지금 여러 작품을 할 수 있느냐를 항상 고려하게 된다. 다작하는 배우들을 보면 대단한 것 같다. <미생>이후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주변에서 ‘물들어오니 노 저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내가 막상 하고 있는 건 대부분 공연이었다. 많이 갖고 있으면 잃을 까봐 겁이 나서 욕심부리지 않는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결과인 듯 하다.
다양한 연기 시도를 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을 텐데.
솔직히 난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에서만 특출나다. 다른 분야를 하라고 하면 고민된다. 물론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 믿음직하다면 고려할 만 하다.
그렇다면 차기작은 정해졌는가.
조만간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시청자 분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전석호에게 배우로서 최종적인 꿈은 무엇인가.
빛나는 배우는 원치 않는다. 유명해지려고 배우가 된 것이 아니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유명해지고 싶진 않다. 솔직히 내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일까 항상 의문이 든다. 어떤 작품을 홀로 끌어갈 그만큼의 역량이 내게 있을까 매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아마 많은 배우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론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계의 스티브 잡스가 될 것이다. 그만큼 이쪽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의 일이고 지금은 충분히 고민해야 할 단계다.
<작은형>을 기다리는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영화는 ‘형제 이야기’ 혹은 ‘장애인 이야기’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 물론 둘 다 맞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또 다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핏줄이 아닌 사람들, 사회적 약자, 육체적 여건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해 사는 이야기다. 특히 내가 맡은 ‘동현’은 다른 의미에서 장애가 있는 인물로 관객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체든 마음이든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우리 영화는 그 ‘다름’에 중점을 뒀다. 그리고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웃음) 얼마 전 나도 광화문에 나갔었다. 그곳에서 생각이나 느낌을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물론 적극 행동에 나서는 사람만이 지사가 되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모두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일상 속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지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대한 신념만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올곧은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배우 혹은 인간 전석호에게 최근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솔직히 요즘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다. 부모님에게 하루에 한 번은 연락을 드리려고 하는 편이다. 부모님이 내 곁에 언제까지 계실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임한다. 지금 인터뷰도 그렇다.
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