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평상시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고민은 끝났나.
아무래도 자의로 시작한 게 아니다 보니 고민이 있었다. ‘나에게 과연 이 길이 맞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까지만 하는 게 맞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도 ‘아냐, 얼굴 다 팔렸는데 이제 와서 다른 일을 어떻게 해' 하기도 하고.(웃음) 군대에 가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왜 바뀌게 된 건가.
군대에 있으니 이쪽 일이 너무 하고 싶어지더라. 또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도 태도에 변화를 줬다. 사람이 태어나서 하나쯤은 잘 하는 걸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더라. 다만 그걸 찾기가 쉽지 않은 거고. 그 때 ‘그래도 나는 부모님께서 연기에 대한 재능을 빨리 찾아주신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봐도, 잘 할 수 있는 게 이거다. 운동, 공부, 춤, 노래, 아무것도 잘 못하지만 연기만큼은 연습하고 갈고 닦아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군대가 사람을 어른스럽게 만든 셈인가
사실 군대 갔다 온다고 갑자기 엄청 철이 든다거나 어른스럽게 되는 건 아니더라.(웃음)
맞다. 연기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군대 가기 전엔 내 역할만, 내가 나오는 장면만 잘 하는 게 중요했다. 지금은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에 맞춰서 연기를 해야 된다는 걸 느낄 정도의 여유는 좀 생겼다.
옛날과 다르게 주변이 보인다는 말인데, 그럼 책임감도 함께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지 않나.
정말 책임감이 이전과 다르게 훨씬 더 느껴진다. 이제 아역이 아니니까. 특히 전역하고 나서부터는 주변에서도 나를 완전한 성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부담이 커진 건 사실이다.
아역에서 성인배우로 가는 과정에서 느낀 혼란감은 없었나.
혼란감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런 감정이 너무 심해지고 연기에 대한 고민도 커지면서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던 거다. 그래도 이제는 현장에 있으면 맘이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봉이 김선달> 촬영 현장이 꽤 맘 편하고 즐거웠나보다.
스탭분들 개그 실력이 출중한 덕이다. 스탭 분들 때문에 엔지가 난 적이 적지 않다. 그만큼 즐거운 분위기였다. 극 중에서 나를 포함한 사기패 4명의 분위기가 좋듯이 현장 분위기도 그랬다. 고창석 선배는 예상했던 것처럼 즐거움을 주는 분이셨고.
그 땐 내 나이가 너무 어렸다. 또 선배 역할이 날 많이 때리는 캐릭터였다. 덩치도 크고 수염도 많이 나있어서 선배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게 아니라는 걸 당연 알았지만. 그리고 선배를 보고 느낀 것도 많다.
어떤 점인가.
처음에 남을 웃기는 연기를 하려니 엄청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내가 유머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먼 사람이다. 주로 남이 개그 하면 옆에서 웃기만 하고, 한 번 용기 내 개그를 시도하면 망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데 선배들은 엄청 뻔뻔하고 능글맞게 웃긴 연기를 잘 하시더라. 그걸 보면서 ‘이건 어차피 코믹이고, 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되는 거다’란 생각이 확 들었다. 그러니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망가져보자 싶어서 오히려 내가 더 오버하는 부분도 생기고. 그렇게 해서 관객이 많이 웃어주기만 하면 그만큼 내가 연기를 잘 했다는 증거니까.
그간 좀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을 선택해온 걸로 안다. 해보지 않았던 코믹 장르를 선택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코믹 연기를 할 자신이 없어서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소속사는 좀 다른 의미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전작 <조선 마술사>와 시대도 겹치고 연달아 사극이니까.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는데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사기 행각이 너무 귀여워서 읽는데 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 감독님이 ‘젊고 섹시한’ 사기꾼을 만들어보자고 하셔서 한 번 믿고 해보자고 맘 먹게 된 거다. 다 찍고 나니 가끔은 편하게 즐기듯이 찍을 수 있는 영화도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의 코믹한 연기에 만족하나.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웃음) 시사회 때 들어가서 같이 봤는데 딱 내가 원했던 만큼 표현됐다고 느꼈다.
그게 어느 정돈가.
애초에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준다거나, 이러이러한 의미를 담았다고 강조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편하게 극장에 와서 웃긴 장면에는 웃고, 반전도 즐기시라는 게 목표였다. 특히 주모를 꼬시는 장면! 나도 내가 그렇게까지 느끼하게 할 줄은 몰랐다. 가장 김선달스러운 장면이었던 것 같다. 그런 장면들을 비롯해서 관객들이 여러모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랐다. 실제로 김선달도 맨 첫 장면에서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니 남은 인생 즐기면서 살자’고 하지 않나. ‘즐기자’만 생각했다.
여장에 대해서는 뭐… 다시는 안 할 거니까.(웃음) 농담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평소에 해보지 못한 것들을 많이 해봤다. 여성분들이 붙이는 속눈썹도 달아보고, 볼터치도 해보고, 틴트도 발라보고 아무튼 여성스러워 보일 수 있는 건 다 했다. 치마 입고 머리 따고 현장에 나타나니까 스탭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쳐다보더라.
연기를 하기 위해 그만큼 노력했는데 흥행해 대한 욕심도 날 것 같다.
물론 잘 돼야 된다. 근데 내가 재미있어도 흥행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고, 난 재미 없는데 뜨는 경우도 있어서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남은 건 관객의 반응일 텐데, 최근에는 관객이 좀 냉정하다고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때가 언젠가.
아무래도 배우니까 연기에 대한 지적을 받을 때가 아닐까. 그럴 때 마음이 아프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내 생각대로 역할을 잘 풀어나갔다고 생각해도 그런 순간이 있더라.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건 안다. 대중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려고 한다.
댓글 보나.
가끔. 댓글은 많은 분들의 반응을 압축시켜 놓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댓글을 보면 대중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대강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많이 보고 싶진 않다.
유승호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굉장히 우호적인 편으로 아는데. 안티도 별로 없지 않나.
많던데.(웃음) 난 군대 갔다 오면 안티가 안 생길 줄 알았는데 더 생기더라.
친구들 만나서 논다. 나도 그렇지만, 친구들도 튀는 애들이 아니라서 술도 다 못 마시고 클럽도 안 좋아한다. 만나면 일단 다같이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얘기하고, 그러다 심심하면 PC방에 가서 내기 게임을 한다. 친구의 여자친구가 그러기를, 날 만나서 놀면 참 안심된다고 하더라. 어차피 내가 껴있는 한 여자도 못 만날 테니까.
게임비는 내주나. 친구들보단 돈을 많이 벌 텐데.
우리는 그런 거 없다. 무조건 내기다. 친구란 그런 거 아닌가. (웃음)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좋다. 지금 스물 넷으로 알고있는데, 20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청춘이라고 부르기에 더없이 적절한 나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 가장 불안할 수도 있는 시기다.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정말 내가 뭘 하면서 살고 있는 건지 아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아니면 행복하게, 이런 말만으로 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송강호 선배처럼 믿음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나 저 사람 팬이야!’ 정도는 아니어도 ‘저 사람은 연기 잘하니까 이번에 나오는 작품은 재미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배우. 실제로 극장 가서 돈을 내고 영화를 봐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또 너무 튀지 않고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영화는.
가장 마지막이 곡성이다. 아, 주토피아도 좋았다.
그럼 근래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소소할수록 좋다.
(한참 고민하다가)아, 어젯밤이겠다. 아침부터 인터뷰하고 쇼케이스까지 하니 너무 피곤하더라. 밤 12시에 씻고 누워서 유투브를 켰다. 내가 자기 전에 게임 방송을 꼭 하나씩 보고 잔다. 마치 어린 애들 잠자리에서 동화책 읽어주듯이. 그 방송을 보는데 너무 기뻤다. 잠도 스르르 오고. 너무 좋았다.
2016년 7월 1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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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