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지혜 기자]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다. 소감이 어떤가?
우선 다행이다(웃음). 안도되긴 하는데 개봉을 해 봐야 알 것 같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우리들>이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느낌이 통한 게 아닐까. <우리들>을 만들면서 걱정이 많았다. 이들이 겪는 경험이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면 어떡하나, 불안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외국 학생들에게서 “우리도 그랬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 내가 느낀 관계 불안이나 슬픔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뜻이니까.
영화 연출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연기. 아주 날 것 같은 순간을 포착하려고 애썼다. 이 순간을 포착하려면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끄집어내야 하는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감독으로서 최대한 배우를 속이지 않으려고도 했고.
배우를 속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촬영할 때의 연출 방법을 말한 적이 있다. 이 영화 역시 아역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나. 그런데 아역 배우는 아무래도 감정표현이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압바스 감독은 주인공이 고민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아역 배우에게 속으로 아주 어려운 구구단을 외워보라고 시켰다더라. 덕분에 심각하게 고뇌하는 표정을 찍을 수 있었다면서(웃음). 물론 아주 어린 친구들을 촬영할 때는 그런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은 다 큰 친구들이다. 영화 속 장면들은 모두 그 친구들의 실제 감정이다. 난 이들이 배우로서 그 감정에 온전히 몰입해 표현하길 바랐다.
그게 내 철칙이었다. 아역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마음을 다치면 안 된다는 것! 순간의 감정에 몰입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연기라는 것을 항상 주지 시켰다. 그런 감정이 상처로 남으면 안 되잖나.
아역배우를 위해 심리치료사도 촬영에 동참했다더라. 그런 이유 때문인가.
전문 심리치료사를 현장에 부를 만큼 제작비가 넉넉하진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내 지인 중에 아동 청소년 연기를 전공한 친구가 있다. 석사 과정을 밟고 논문도 쓰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연극치료를 실시한 전문가다. 그분을 초빙해서 조언을 많이 받았다. 함께 리허설도 했다.
아역 배우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웃음). <손님> <콩나물> 그리고 <우리들>까지 당신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만들어 왔다. 왜 아이들의 세계에 끌리는 건가.
나도 알고 싶다. 심리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웃음). 사실 난 내가 아직도 어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20살이 넘어가면 어른처럼 살 수 있을까, 30대가 되면 어른처럼 살 수 있을까, 했는데 맙소사! 여전히 난 7, 8살 때의 ‘나’와 같다. 많은 일을 겪었지만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여전히 똑같다. 현상을 대하는 느낌, 사고방식은 과거의 나와 큰 차이가 없는 거다. 다만 어릴 때는 경험이 부족해서 실수가 잦았다는 게 좀 다르겠지.
전적으로 동의한다(웃음). 나도 내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나 여러 미디어에서 어린이를 묘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항상 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애들이 늘 수동적으로 대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작 우리가 어릴 때는 그보다 적극적이고 많은 것을 알지 않았나. 이해받고도 싶었고. 어른이 되면서 우리의 과거 모습을 잊는 게 안타깝더라. 그래서 어쩌면, 어린 시절에 표현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지금에서야 표출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에는 역으로, 애어른 캐릭터가 대세더라.
잘 반영한 캐릭터도 있고 과장된 캐릭터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른이 각양각색이듯 아이들 역시 정말 다양하다. 저마다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생떼 부리는 철부지도 있지만 할머니가 들어앉은 것처럼 속 깊은 아이도 있더라. 여러 작품에 다양한 아이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여자라서(웃음). 내가 겪은, 지금 겪고 있는 세계가 소녀의 세계다. 자연스러운 발현이다. 내가 소년의 세계를 잘 모르기도 하고(웃음). 그런데 소녀의 세계를 다룬 문학작품은 많은데 영화는 별로 없더라. 그래서 내가 이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내 안에 늙은 소녀가 있다(웃음).
그래서인지 <우리들>에는 어른이 쉽게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하게 아픈 순간들이 담겨 있더라. 이를 테면 피구 편 가르기 같은.
그런 미묘하고 아픈 경험이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운동을 잘 하게 됐지만 초등학교 때 나는 운동을 못하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피구 잘 하는 아이가 인기인이잖나. 피구 팀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데 나는 피구를 못해서 어느 편에도 들 수 없더라. 내가 선이 같은 친구라서 그 마음을 잘 알지(웃음).
오프닝의 그 장면이 참 마음 아팠다.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 관계를 학습한다. 놀이를 하면서 또래 사이에 계급이 나뉘는 걸 학습하고 편을 가르는 법을 배운다. 그 시절의 경험이 나에게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현재의 어린 친구들도 똑같이 겪고 있더라. “냄새난다”면서 꼬투리 잡고 있는 것까지. 친구를 따돌리면서 모욕감을 주는 걸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하고 있는 거다. <우리들>을 작업하며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말하기가 애매한데(웃음). 선이가 겪은 것과 비슷하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조금 더 혹독한 경험을 했다. 그 또래의 여자 아이들은 친구와 아주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잖나. 스킨십이 없다는 것만 뺀다면, 너무나 큰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거의 멜로 관계나 다름없다. 그런 관계가 틀어지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서로 상처가 남게 된다. 이 관계가 교실 내 권력 구도에 휘말리면 더 뒤틀리거든. 나 역시 그 역학관계에 내동댕이 쳐진 경험이 있다. 한동안은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도 않더라. 그럼에도 그 기억이 마음 깊은 곳에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기억은 참 아프지.
그래서인지 난 아직도 왕따나 학교폭력으로 자살했다는 아이들의 기사만 접하면 심장이 벌렁댄다. 남 얘기 같지가 않다. 사실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도 없고 이들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 아이들이 극단으로 몰리기까지 얼마나 아팠을지…….
당신의 경험이 <우리들>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 건가?
그 시절에 내가 겪었던 경험과 <우리들>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난 항상 내 13살 때를 계속 얘기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때다. 대학생 때는 소설로 써 보기도 했다(웃음). 내가 왜 그 기억을 놓지 못하는지,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의 정체가 뭐였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은 건지도. 그런데 모르겠더라고. 왜 그 친구랑 그렇게 틀어진 건지도 모르겠고, 그 상처를 받으면서 내게 뭐가 남았는지도 모르겠더라. 앞으로 또다시 사랑하고 배신당하고 상처받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역시 모르겠다. 그런 고민들을 풀고 싶어서 <우리들>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우리들>을 만들면서 당신의 상처가 치유가 됐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걸까? 상처는 상처로 남는 거다. 설사 새 살이 돋더라도 상처를 완전히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상처에 고름이 나도록 계속 쥐어뜯을 수도 있고, 상처 위에 굳은살이 박히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있다. 이걸 내 상처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우리들>이 100% 내 경험인 건 아니다. 나는 선이랑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때로는 내가 지아의 입장에 있기도 했고 보라였던 상황도 있을 거다. 내가 만든 인물이 배우를 만나 살아나는 걸 보면서, 이 모두를 이해하고 싶어 졌다. 이들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봤다. 날 미워했고, 내가 미워했던 친구들의 마음에 뭐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왠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을 것 같더라. 아마 그 친구도 내게 상처를 입었을 거다. 마음이 복잡해졌던 순간이 많았다(웃음).
지나고 나면 보이는 것 같다.
그렇지. 크면 보이는 것 같다.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게 되니까.
여러 계급을 거쳤다. 처음에는 선이의 계급이었다. 그러다 성장하면서 활달해지려고 노력했다. 중고등학생이 돼서는 중심은 아니더라도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게 됐다.
그러면 13살이 지나고 당신은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나? 이렇게 물어보자. 어떻게 또래 계급의 지위를 높였나?
모르겠네(웃음). 13살에 나는 좀 안쓰러웠던 것 같다. 내가 굳이 바뀌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날 바꾸려고 애썼다. 친구들에게 나를 깎아 내려가면서 친절하게 대하기도 했고. 사회집단 내 관계 역학에 눈을 뜨면서는 그 안에서 어떻게 날 포지셔닝할지 나름 고민을 열심히 했다.
지금은? 한 영화의 총 지휘자가 됐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데(웃음). 감독으로서 수행해야 할 일을 하려고 위치에 따른 특성을 익힐 뿐이지. 원래 난 내향적인 사람이다. 일을 하면서 내 자아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법을 익힌 것 같다.
당신이 나눈 계급 기준에 따라 선, 지아, 보라를 분류한다면?
명확한 지위를 부여해 본 적은 없다. 다만 간략한 그림은 있다. 아마 보라는 1학기 반장이었을 거다. 얼굴이 예쁜 데다 공부도 잘하고 카리스마도 있어서 반의 중심에 있는 친구가 아닐까. 선이는 중심에 들지 못한 친구다. 선이는 친구가 너무 갖고 싶은데 친구를 사귀는 법이 서투른, 소극적인 아이다. 생각이 많고 차분해서 어쩌면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를 겁내는 아이일 수도 있고. 내성적인 성격을 우리 사회는 나쁘게 보잖나. 그러다 보니 결국 소외됐을 거다. 지아는 이방인이다. 이 세계에 처음 들어온 신입으로, 자기 자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림이다. 이전 학교에서 소외됐던 만큼 자기 자리를 재조정해 중심으로 다가가고 싶은 아이일 거다. 그런 마음들에 깊이 공감한다.
경력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 아이들의 상황인 만큼, 배우가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내가 상황과 감정을 설명해주고 나서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 보고 싶냐고 물으면, 그 상황에 몰입하는 친구들이 있다. 인물에 얼마큼 깊이 빠질 수 있는지, 공감능력은 어떤지 살폈다. 연기 경험이 없어서 오히려 도움이 됐다. 연기학원에서는 정형화된 연기를 주로 배우거든. 이를테면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같은. 그런데 이 영화는 실제 상황에 가까워서 자기의 말과 자기의 눈빛, 몸짓으로 반응해야 하니까.
실제 아역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좋더라. 캐릭터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배우를 캐스팅한 건가?
누가 어떤 역을 맡을지 미리 정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모든 캐릭터의 가능성이 다 엿보였다. 최수인 배우에게 보라의 상황을 부여하기도 했다. 물론 친구를 따돌리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 다만 지아의 생일파티에 선이가 온 걸, 보라의 입장에서 싫어하는 내색을 해 보라고 주문했다. 자기네들끼리 재밌게 놀 수 있는 상황에서 초대받지 않은 선이가 와서 언짢은 상황. 이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말할 건지를 묻는 거다. 그러면 배우가 상황에 맞게 마음을 느끼고 행동한다.
그렇다면 왜 최수인 배우를 선 역으로 캐스팅했나?
난 선이가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무성적인 느낌이길 바랐다. 최수인 배우의 이미지가 선이와 잘 어울렸다. 차근차근한 말씨나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성격,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질도 선이랑 닮아 있었다. 좀 더 자신감을 키우고자 연기학원을 다니기도 했다더라.
지아 역에 설혜인을, 보라 역에 이서연을 캐스팅한 이유는?
설혜인 배우는 원래 성격이 시크하고 본인만의 독특한 말투를 지니고 있었다. 흥분해서 마구 말할 때 귀엽기도 했고(웃음).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도 좋았다. 보라 역의 이서연 배우는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정말 다르더라. 완전히 맏언니 스타일이었다. 저렇게 착해서 어떡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똑똑해서 말을 할 때 신뢰감을 주더라. 얼굴도 예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아 보였다. 내가 4학년이었다면 친하게 지내고 싶을 것만 같은 배우였다. 연기도 안정적으로 잘 하더라.
내가 노력을 해봤자 얼마나 잘 됐겠느냐마는(웃음). 그 나이 또래의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 세세한 취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도 아이들의 세계에 관심이 많다. 나 어릴 적에는 이러고 놀았는데 이 친구들은 뭘 하고 노는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대화를 많이 나눴다. 만나면 “오늘 뭐 했어, 뭐 하고 놀아?”하고 수다를 떤다. 요즘에도 “학교에서 뭐 했어?”하며 항상 묻는다.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잘 맞춰주나 보다(웃음).
눈높이를 잘 맞춘다기 보다 내가 쉬운 인간이라서 그런 것 같다(웃음). 사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내가 지식과 경험이 더 많다는 것 외에는 다를 바가 없다. 어려운 말 대신 쉬운 말을 써서 대화하면 어른과 마찬가지로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어른과 같은 지혜와 깊이가 있다. 배울 점이 많다.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거지(웃음).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리허설을 3개월 이상 했기에 이미 굉장히 친해진 상태였다. 서로 친해져야 한다고 세뇌를 시키기도 했다(웃음). 서먹한 장면도 친해져야 찍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게 기우였다. 배우들이 어디에 있는지 안 보여서 찾아보면 멀리 가서 서로 놀고 있더라(웃음). 가끔은 너무 친해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아이들끼리 싸우지는 않았나?
싸우기도 했다. 마치 영화처럼. 그래서 하루는 배우들을 다 불러 놓고 이야기했다. “내가 개입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온 감정들이 많잖나. 스스로 관계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멀찍이서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걸 조용히 들었다. 그런데 정말 본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소통하더라고. 기적 같았다. 울고 웃으면서 서먹했던 감정들을 스스로 풀었다. 정말 훌륭하더라. 이제 이 아이들은 다 컸으니 나만 자라면 되는구나 싶었다(웃음).
선이와 지아도 실제 배우들처럼 풀리면 좋을 텐데. 엔딩이 희망적이면서도 열려 있었다.
나는 일상에서 화해의 순간을 만나진 못했다. 선이나 지아처럼 노력해 봤지만 실패했다. 처음에는 나처럼 관계 개선에 실패하는 엔딩도 염두에 뒀다. 그런데 모두가 다 아는 얘기를 해서 뭐하나, 싶더라. 찍기가 싫더라고. 지금의 엔딩은 어쩌면 내 판타지일 수 있다. 주인공에게 최고의 기적이 벌어지길 바랐다. 그 기적이 주인공이 낸 용기 덕분에 일어난 것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고. “내가 봤는데 지아가 금 안 밟았어”라고 말하는 건 정말 엄청난 용기다. 어른인 나도 그렇게는 못하지만 누군가 그런 용기를 내주길 바랐다. 어린이가 그런 용기를 내면 더욱 큰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을까(웃음).
선이나 지아의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많을 거다. 그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방법을 모르겠다. 이런 어른이 돼서 미안하다. 혼자 있는 게 너무 아프고 힘들다는 걸 이해한다. 친구들 사이에 속하고 싶은데 배척당하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본질적인 부분을 바꿔가면서 무리에 속하는 건 올바른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관계를 맺는 건 매번 힘들다. 어른이 돼서도 아픈 경험을 맛보거든. 너무 끔찍한가(웃음)? 그래도 자기의 중심을 잃지 않고 상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선이가 지아의 마음으로, 보라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는 거다. 그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바라본다면 내가 조금 덜 아파질 수도 있다. 인간관계는 인생의 미스터리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가장 최근에 즐거웠던 일은?
배우들이랑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 그런 소소한 일상이 좋다. 얼마 전에 VIP시사회를 한 것도 좋다. VIP시사회에 초등학교는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친구들이 와줬다. 방황했던 20대 시절의 선배님들도 많이 오셨고. 이창동 선생님도 오셨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그분들께 보여드리는 것 같아 울컥하더라고. 엄마한테도 내 작품을 당당하게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친구들도 “너 꿈을 이뤘구나”하면서 응원해줬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싶더라.
이창동 감독이 영화의 기획을 총괄했다 들었다. 이창동 감독은 뭐라시던가?
원래 이창동 선생님은 칭찬을 잘 안 하신다. 칭찬받아 본 적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 했다고, 애썼다고 말씀해 주셨다. 인생의 스승님께 토닥토닥 격려받은 것 같더라. 조금 멋쩍기도 했지만(웃음).
가장 좋았던 칭찬은 뭔가?
2013년에 찍었던 <콩나물>의 김수완 배우도 VIP 시사회에 왔거든.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당시에는 7살짜리였던 꼬마가 이젠 4학년이 돼 있더라. 날 만나서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잖아요. 나 저 이야기가 뭔지 알아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해줬다. 이 얘기가 4학년의 얘기라고, 자기의 얘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울컥했다. 내가 저 친구의 이야기를 만든 것 같았다. 지나온 세월이 느껴지면서 조금은 뿌듯하더라. 수완이가 신나서 이상한 춤을 춰 준 것도 좋았고(웃음).
2016년 6월 17일 금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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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