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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도, 여자도 아닌 그저 당신② <소녀와 여자> 김효정 감독
` | 2016년 6월 17일 금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정복자는 보물을 약탈한다. 그리고 약탈된 보물을 지키고자 창고를 세우고 그 문을 단단히 봉쇄해둔다. 다른 정복자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정복지가 ‘여성의 몸’이 될 때다. 남성을 정복자로 규정지은 부계사회의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몸은 정복지가 됐다. 다른 남성에 침탈당할까 봐, 혹은 여성 스스로가 달아날까, 정복자는 사뭇 두려웠다. 그래서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잘라 성적 쾌감을 도려내고 그들의 성기를 묶어 순결을 입증했다. 순결이 입증돼야만 어른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른바 할례다. 김효정 감독은 아프리카의 사막을 달리며 그녀들의 삶을 봤다. 타인에게 몸이 정복되고, 타인에 의해 소녀와 여자의 정체성을 허락받는 그녀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소녀와 여자>는 그 안타까움이 빚어낸, 한국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 할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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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 <JAM DOCU 강정> <안녕?! 오케스트라> 등의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아왔다.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내가 선택한 작품이 아니다. 사이더스FNH에서 10년 간 일을 하며 참여한 거다. 준비되고 있는 작품에 바로 투입되는 거라서 내게는 작품 선택권이 없었지. <안녕?! 오케스트라>나 <논픽션 다이어리> <JAM DOCU 강정> 등이 내가 진짜 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다. <소녀와 여자>까지 본의 아니게 그런 영화들로 풀렸네(웃음).

약자에 대한 영화가 많다. 약자에게 마음 끌리는 이유가 뭔가?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혼자 구석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 한 마디라도 더 붙이게 되더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다. 얘기를 나누는 게 재밌다.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마음도 가난한 건 아니니까.

조금 진부한데(웃음).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류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에 대한 이상에 끌려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실체에 회의를 느낀다는 거다. 그런 회의감은 없었나?
이들이 소수자니까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으며 정립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으로 사람에게 다가갔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나와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행동하는 게 다다.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뜻을 함께해 주며 내 일과 병행할 수 있는 선에서 참여하는 거지. 광화문에서 농아인 단식에 동참한다든가, 하는 식으로(웃음). 시간 안 돼서 못가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화니까 영화로 동참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영화를 만들면 당신에게도 소수자의 낙인이 찍힌다. 돈도 되지 않고.
힘들다(웃음). 그래서 소수자 영화를 제안 받으면, 일단 작품 보고 얘기하겠다고, 지금 시간이 안 된다고 빼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작품들에 마음이 끌리더라고(웃음). 참 이상하지. 마음이 끌리고 나면 주변 상황을 걱정하지 않게 되더라.

<소녀와 여자>를 배급하면서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웃음).
영화 투자사 쪽은 아예 알아보지도 못했다. 대기업 사회기금이나 NGO 후원을 받아보려고도 했는데 2010년에는 여성 할례가 수면 위로 올리기 부담스러운 주제라 말하더라고. 그래서 다 불발 됐거든. 결국 내 퇴직금을 다 쏟아부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1인 영화사 (주)꿈꾸는 오아시스의 제작사를 차렸다.

낙천적인 건가, 용기가 있는 건가.
내 장점이다(웃음).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잖나. 어려운 일도 달리 생각해보면 좋게 풀릴 수도 있는 거고.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뜻있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다 보면 돈도 벌 날이 오지 않을까. 그래도 지금 밥은 먹고 사니까 만족한다(웃음).
<소녀와 여자>가 첫 감독 데뷔작이다. 소감이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다. 그것도 극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일 줄이야! 그저 운명인 것 같다. 내가 그 순간에 하고 싶어서 했던 일들이 결과로 맺어지고 있다. 영화과를 졸업해서 영화사에 들어갔고, 사막에서 촬영하다 보니 사막의 아름다움을 느껴 사막 마라톤을 여러 번 하게 됐고, 책도 내게 됐고, 그러더니 사막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완성이 됐다. 돈도 없는데 <소녀와 여자>가 완성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영화진흥위원에서 지원받아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봉하게도 됐다. 매 순간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내년에 어떤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소녀와 여자>를 촬영하면서 겪었던 소중한 경험들이 밑바탕이 되겠지.

감독 데뷔작인만큼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사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연출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내가 정말 감독이 될 수 있을지, 연출자 김효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걱정되더라. 내가 아무리 나 스스로를 감독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도 다 인정해주는 건 아니잖나. 더군다나 생소한 아프리카에서, 생소한 문제를 다루려니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했다. 촬영팀도 힘들어했고. 그러다 연출에 자신감을 가진 게 편집 기간이었다. 지금 영화는 우리가 취재한 것의 10%다. 통번역을 해준 연출팀 두 명과 녹취록을 정리하고, 공통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을 형광펜으로 마킹하며 내용적으로 핵심이 되는 부분의 교집합을 만들어갔다. 교집합을 만들고 필요 없는 부분의 가지를 쳐내고 편집을 하는 것을, 작년 3월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전까지 6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잠도 잘 못 잤다. 머리가 계속 돌아가고 있더라고. 그러면서 연출의 맛을 알게 됐다. 감독들이 말하길, 영화는 머릿속에 다 있다고 하잖나. 그 말을 처음 들을 땐 반신반의했는데 이젠 좀 알 것 같다(웃음). 감독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머리가 터질 듯 많은 생각을 하니까(웃음).

극 영화의 프로듀서도 많이 맡았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차이점은 뭔가?
사실만을 얘기하느냐, 상상 속 허구를 말하느냐가 가장 큰 차이겠지(웃음). 이번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내가 일정한 방향성은 두되 내 생각을 자막으로 쓰고 싶진 않았다. 오로지 사실만으로 영화를 구성하고 싶었다. 사실이 주는 힘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영화는 어떻게든 대사를 더 쓰고 지문을 감정적으로 만들어서 웃음과 눈믈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그런 게 불가능하다. 진실의 힘이 극대화될 때만 웃음과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
진실의 힘을 어떻게 극대화시키려 했나? 당신의 영화는 가장 핏빛인 이슈를 다루면서 감정이 상당히 절제돼 있다. 음악도 밝지 않나.
그 부분이 사실 제일 걱정이었다(웃음). 좀 웃음이나 눈물을 마구 자극해야 하는데 내가 취재한 화면에는 자극적인 게 없으니까. 모니터링하면서도 그런 지적을 많이 받았다.

왜 그랬나?
좀 지루하더라도 담담하게 얘기하고 싶더라. 울리는 다큐멘터리는 너무 많다. 사실 엔딩 부분에서 “아빠가 날 할례 시키려 해서 도망쳤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이 보고 싶다”고 우는 소녀의 모습을 넣을까 많이 고민했다. 이런 식으로 관객을 울리려면 충분히 울릴 수는 있다. 그렇지만 난 밝은 미래, 희망이 보이는 걸 원했다. 짠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톤. 음악감독이 그 톤을 잘 잡아줬다. 이런 작은 영화에 뜻을 동참해준 모든 스텝들에게 그저 감사하다.

제목을 <소녀와 여자>로 지은 이유는? 영어 제목은 <Where am I? Beyond Girl and Woman>이더라.
나는 내 영화가 <데저트 플라워>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가제가 <다시 피는 꽃>이었다. 그러다 팀 회의를 거쳐 여성을 꽃에 비유하지 말자고 결정했다.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면서 떠올렸던 첫 제목은 <Where am I>다. 그런데 한글로 “나는 어디에 있나요”라 말하면 의미가 모호해지잖나. 그렇다고 beyond Girl and Woman으로 하려니까 beyond의 한국어 대체어가 마땅치가 않았고. 당초에는 소녀나 여자라는 단어를 배제하기로 했지만 원점으로 돌아가 이 단어들까지 다시 다 검토했다. 그래서 한국어는 “나는 어디에 있나요”와 “beyond”를 다 빼고 <소녀와 여자>로 결정했다.
영어 제목을 번역하면 “나는 어디에 있나요? 소녀와 여자를 넘어서”가 된다. 어떤 의미인가?
소녀와 여자 사이에서 진정한 내 위치는 어디냐는 물음이다. 당신이, 내가, 우리가 남자든 여자든 결국 ‘나’는 ‘나’니까 사람으로서의 ‘나’에 집중하자는 의미다.

그렇다면 소녀와 여자를 가르는 그 지점은 ‘성인식’이 된다. 아프리카에서는 이게 할례지만 우리나라에도 성인식이 있다. 이를 테면 수능, 혹은 군대 등. 비록 본 목적은 성인식이 아니었으나 사회적으로 성인식의 문화적 의미를 겸하게 된 경우다. 한국의 성인식과 아프리카의 할례의 연결고리를 생각해본 적은?
<소녀와 여자>를 제일 처음 구상한 건 2010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이 얘기를 왜 해?”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우리나라에서 왜 아프리카 여성 할례를 얘기하려는지, 그 답을 하는 게 과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찾지는 못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 사람까지 도와줘야 하냐고도 따진다. 난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정우성이 말한 게 답인 것 같다. 그때 정우성은 “난민만 돕자는 게 아니다. 난민도 돕자는 거다. 주변에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 중에 난민이 포함돼 있다”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그 여자들만 돕자는 게 아니라 그들도 돕자는 것이다. 인류 전체의 인권이 나아지는 건 우리 모두에게 도움 되는 일이잖나.

일면에서는 할례를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여성도 난민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지. 할례 반대 캠프의 경우, 할례를 피해 도망치는 소녀를 가리켜 난민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할례를 피하기 위해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소녀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공감만 해 줬으면 좋겠다. 꼭 적극적으로 돕지 않더라도 공감하면서, 이 이야기를 다른 한두 명에게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많은 인권 감독이나 인권운동가가 ‘공감’을 주장한다. 그런데 혹자는 ‘공감’이 타인의 고통을 지적 유희로서 소비하는 방식이라고도 지적한다. 당신은 공감의 힘이 뭐라고 보나?
나 같은 사람이 생기는 것. <데저트 플라워>를 보고 그 이야기에 공감했다.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과 함께 토론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소녀와 여자>를 만들어서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잖나. 물론 공감만 하고 끝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타인에게 퍼뜨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가지를 쳐서 말할 거고, 그중 몇 명은 이들을 위해 행동을 할 거다. SNS와 같다. 그저 타인이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바뀔 수 있다.

희망적이다(웃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의 외연을 더욱 넓혀서 다른 나라의 문제도 해결하고 싶지만 아직은 여력이 없다. 영화에 등장한 아프리카의 국회의원도 그렇다. 다만 손을 놓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마침내 자국 내 할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 노하우를 살려 그들이 다른 나라도 돕지 않겠나. 설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차근차근 바꾸면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어떻게 살까? 어떻게 하길 바라나(웃음)? 영화 만들어야지.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부산국제영화제! 내가 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수 있다니! 사실 모든 작품에서 프로듀서보다는 감독이 주목을 받잖나. 프로듀서로서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때는 사업 차 가는 거라서 단 한 편의 영화를 볼 새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감독으로 가서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영화의 바다에 빠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올해 즐거웠던 건(웃음)?
12월과 1월 새해를 인도 네팔에서 보냈다. 히말라야 설원에서 일출을 보며 나의 40대는 더 찬란할 거라는 새해 다짐을 했다. 트랙킹 하면서 정말 행복하게 살자고, 날마다 웃으면서 살자고 기도했다. 그래서인지 많이 웃고 지낸다. <소녀와 여자>를 작업하면서 작년에 많이 힘들었는데, 그 피로를 잘 떨치고 온 것 같다(웃음).

2016년 6월 17일 금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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