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본 인터뷰는 <4등>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잘 봤다. 상업 영화는 아무래도 연출에 제약이 따른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을 말하는 건가.
흥행을 위한 규칙 같은 게 있다. 물론 각 영화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든 영화에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예를 들면 훌륭한 스포츠영화는 보통 마지막 대회에 엄마나 코치를 등장시킬 거다. 그리고 엄마와 코치가 아이를 계기로 각성하고 반성하면서 서로 교감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이 나왔을 거다.
<4등>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요소가 다분한 영화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느낌이다.
사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정서적으로 순화돼 안정을 되찾기보다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마음을 조금 더 길게 갖고 가길 바랐다. <4등>은 상업영화도 아닌 데다가 전체적인 영화의 톤이 사람들을 작정하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다. 게다가 초중반부는 비교적 이야기를 편안하게 끌고 나가는 편이기 때문에 결말만큼은 관객들이 여운을 갖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결말에서 준호가 꼭 1등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당신이 말한 대로 몇 등이든 상관 없다. 등수에 상관 없이 준호(유재상 분)는 얻은 게 있으니까. 자기방식으로 수영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결말에서 준호는 예상치 못한 1등을 해서 얼떨떨한 거다.
씁쓸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에는 준호가 1위를 한 것이 당황스럽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른다고 썼다.
준호가 그 순간 씁쓸했을 거라고 느낀 건 성인의 시각에서 바라봐서 그런가 보다.
당신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게 그 장면이 준호가 승리를 단순히 즐기기만 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닌 건 명백하다. 하지만 씁쓸한 건 아니었다.
예상 외의 흥행을 거둔 적은 없다(웃음). 하지만 생각보다 흥행이 저조했던 건 <사랑니>다.
<사랑니>의 어떤 면이 대중들에게 어필할거라 생각했나?
중년 남성들이 <사랑니>를 볼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흥행이라는 게 굉장히 귀한 평가라는 데 동의한다. 거기다 상업영화는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여되나! 대중과 소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단지 마음을 다해 만드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입장에 영화를 맞추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런 면은 타고나기가 서툰 거다(웃음).
<4등>이 평가가 좋다.
기자분들이 좋게 봐줘서 고맙다. 일반 시사회에서 조금 당황스러웠던 게 영화를 보다 관객들이 자꾸 웃더라. 그래서 좀 놀랐다. 하지만 웃는다는 건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반응이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개인적인 만족도는?
난 좋다(웃음). ‘야, 그럼 지가 만들어 놓고 싫다고 하겠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내가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난 <4등>이 좋다.
수영 대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다. 혹시 수영을 하는 자녀가 있나?
고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있다. 수영은 안 한다. 하지만 자녀를 둔 부모의 불안한 심정은 진짜 100% 이해한다. 그 장면이 실감나게 그려진 건 제작진이 모두 성실하게 취재했기 때문이다. 정말 꾸준히 조사해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사실적으로 느껴졌다니 다행이다.
종목이 육상이었다면 같은 액수의 제작비로 훨씬 맛있는 걸 먹으며 촬영했을 거다. 그런데 수영장은 촬영하러 들어가기가 일단 힘들다. 수영장은 보통 일주일에 한번 쉬는데, 그때 외에는 매일 회원들이 수영을 하니까 절대 촬영을 허가해주지 않는다. 또 대관료가 비싸다. 일단 물을 데워야 하기 때문에 가스비를 내야 한다. 수영장이 물을 데워야 한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었나? 난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이다.
몰랐다. 나 같은 개인이 수영장을 대관할 일이 있겠나! (웃음)
단순히 물을 틀어놓고 받아 놓는다고 생각했는데 체온을 유지하려면 물을 데워야 하더라. 그 큰 물통을 데운다고 생각해 봐라. 가스비가 엄청나다. 그마저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촬영이 가능하지 않아 스케줄 조율이 힘들었다. 촬영할 때는 수영장에 습기가 많아 말이 울려퍼져서 소통이 힘들었다. 스탭들이 수영장에 들어갔다 오면 아프곤 했다. 한 주에 한 번 있는 촬영일이 다가오면 각오를 다졌던 기억이 있다.
서로 미루고 싶었겠다(웃음).
준호가 혼자 수영장에서 레일을 풀어놓고 수영하는 신을 ‘도둑 수영’ 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그 신을 찍을 때는 다들 예전에 보지 못한 그림을 만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모두들 의욕이 넘쳤다. 제작부가 몸에 장비를 둘둘 말고 수영장에 들어갔지만 굉장히 좋아했다.
영화 초반 준호가 1등에게 기분 어떠냐고 묻는데 1등 소년은 답을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그저 음악만 흐를 뿐이다. ‘넌 모르는 기분이야’ 이런 답변인 건가?
헤드셋은 박태환 선수의 모습을 보고 따온 거다. 음악을 듣고 있어서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잘 안 들리는 거다. 준호 입장에서 보면 약간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준호의 질문은 성의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은 아니지 않나. ‘어 그래, 난 1등 할 땐 이런 기분이 들어’ 이렇게 이갸기하는 건 너무 허세 같지 않나! 그래서 준호의 질문을 받은 1등 소년도 난처할 거라고 생각했다. 준호가 기분이 떨떠름해지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 1등 소년은 실제로도 굉장히 뛰어난 수영선수다.
얼굴도 잘생겼던데?
너무 잘 생기고 몸도 좋다. 사람이 정말 멋있다. 중학생도 이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의젓한 친구다.
그 친구 이름은 뭔가?
최지혁이다. 물 속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야 하는 장면은 지혁이 대신 해 준 적도 있다. 민간인이 점프하면 바로 퐁하고 물이 튀는데 지혁이 점프하면 잔잔한 물결만 일거든(웃음). 처음에 지혁이 ‘제가 한 번 해볼까요’ 하고 자진하는데 너무 멋있더라. 운동선수다보니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부분이 꽤 있었다. 그래서 편집에서 많이 지우긴 했다. 그런데 마지막 수영 장면쯤에는 지혁이 연기를 제대로 한다고 느껴졌다(웃음). 지혁이 준호를 돌아보는 장면의 묘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자식, 그래 잘했다!’도 아니고 ‘너, 기다려! 내가 금방 따라 잡을 테니까’ 라는 느낌도 아닌 묘한 표정이었다. 운동이 좋은 건 그런 거 같다. 지혁은 중학생밖에 안 됐는데 운동으로 몸의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서 그런지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너무 의젓하더라. 그래서 운동이 좋다고 하나 보다.
준호가 1등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집중훈련으로 몸이 단련됐기 때문에 몸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영화에는 준호가 거울 앞에 놓여진 청소 도구들을 한동안 물끄러미 보는 시점숏이 있다. 준호는 거울 속 물건들로 매를 맞으며 운동했지 않나. 그래서 1등 하고 나서 ‘저 물건들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라는 기분으로 거울을 보는 거다. 그래서 준호는 자신의 승리를 온전히 즐길 수만은 없다. 2등했을 때 준호가 오두방정 떤 걸 생각하면 1등을 했을 때는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나야 한다. 그런데 막상 1등하고 보니 낯설고 얼떨떨한 거다. 본인만의 영법으로 수영해서 얻은 결과에 기쁘기도 하지만 거울 속 막대기들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준호는 거울을 보며 매의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거다.
훈련의 결과와 능동적인 태도 모두가 1등의 요인이 된 셈이다. 광수 코치가 준호더라 혼자 훈련해 보라고 하는 건 준호를 100% 믿는다는 이야기인가?
광수가 국밥집에서 ‘니 혼자 해봐라, 될 거다’ 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사실 광수는 ‘그래, 네가 재능있으니까 될 거야’ 라는 마음은 20% 정도다. 80%는 ‘너 나 덕분에 이만큼이나 할 수 있는 거야’ 라는 마음이다. 광수는 잘난 체하는 구석이 있는 캐릭터거든.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 해’ 라는 이야기를 안 하고 있을 뿐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영화 속에서 준호의 엄마와 아빠 캐릭터가 조금 일차원적으로 그렸졌다는 느낌이 든다. 준호가 체벌당하는 걸 안 아빠는 곧바로 코치를 협박한다. 엄마가 1등 엄마를 따라다니는 것도 자식을 위한 거긴 하지만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서 오히려 희화화된 느낌이다.
전혀 미안할 것 없다. 사람의 관점은 다양한 거니까. 내 생각에 준호의 아빠가 코치를 협박한 건, 코치의 됨됨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 현역 선수였던 코치는 훈련 전날까지 술을 마시기도 하고, 도박을 하느라 훈련을 무단이탈하는가 하면 자신을 때리는 스승을 기자에게 고발하기도 했다. 코치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코치를 찾아가 ‘술 한 잔 하자’면서 코치를 회유하고 코치에게 부탁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겠지. 그래서 차라리 아이를 그만두게 하거나, 돈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코치를 찾아간 거다.
요즘은 엄마들도 아이에 집착하기보다 자아를 찾으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런 변화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엄마들, 그러니까 자녀를 운동시키는 엄마들은 자식들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더라. 한 번은 아이가 맞는 것을 꼭 본인이 지켜봐야 한다는 엄마가 있었다. 체벌을 말리려고 그러나보다 했는데 아이가 훈련 중에 맞은 날은 아이를 집에서 혼내지 않기 위해서라는 거였다. 집에서까지 닦달하면 아이가 너무 궁지에 몰려 갈 곳이 없게 될까봐 신경쓰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데 정말 가슴 아팠다.
준호 엄마도 ‘맞는 게 4등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나.
영화 속에서 준호를 연기한 유재상은 실제로도 수영을 했다. 유재상과 처음으로 배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윤재상이 나더러 어떻게 맞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 운동계 안에서도 훈련강도에 대한 편차가 크더라. 수영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훈련 방법에 차이가 있다. 서울에서도 50m 레인이 있는 지역은 선진국과 훈련 환경도 비슷하고 레슨 받는 환경도 훨씬 안정적이다. 그런데 25m 레인에서 훈련하는 아이들은 과거의 방식대로 여전히 맞으면서 훈련한다. 그 친구들이 결국 모두 모여 서로 시합하게 되는 거다.
처음 안 사실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국가대표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는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운동 시스템, 그리고 학습권이라는게 보장돼 있다. 또 국가대표가 되면 무료로 레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어떻게든 국가대표가 되려고 애를 쓰는 거다. 예전에는 합숙하지 않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것에 대해 항의가 생겨 소송이 있은 적도 있다. 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왜 일방적으로 합숙훈련을 시키는 게 문제가 됐다. 그만큼 선수들 사이에서도 훈련의 편차가 굉장히 크다는 이야기다. 내가 영화를 하면서 알게 된 운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체벌여부 정도는 중요하지 않은 수준의 문제였다. 어느 정도는 일상화되어 있었는데 실제 수영 선수였던 배우가 촬영중에 보호장치가 빗나가서 맞았을 때 아프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에게 혼났을 때와 비슷했다고 이야기 하더라.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다.
운동을 뒷바라지하는 엄마들을 평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웃음).
정말 그 엄마들이 위대하다. 경지가 다르다. 김연아 선수로 인해 잘 알려졌다시피 피겨 스케이팅 같은 경우는 연습할 곳도 많이 없어, 스케이트 링크가 있는 장소와 링크 개장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엄마가 운전기사와 매니저, 엄마 역할을 모두 하는 셈이다. 어쩔 수 없이 집안 살림이나 다른 형제들에게는 소홀해질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준호는 수영하는 즐거움을, 엄마는 성공을 추구한다.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궁금하다.
나는 본인이 재밌고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돈과 명예만 좇아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이 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내 영화과 돈과 명예를 얻는 것과는 조금 멀어진 구석이 있다(웃음).
자식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아이에게 아빠는 굉장히 복 받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 그래서 아이더러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당장은 열악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산업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좋은 직업이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지금은 아주 유망한 직업으로 보이는 것들이 15년, 20년 후에도 좋은 직업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4등>에서도 준호가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 1등을 하고 싶다고 한다.
준호가 좋아하는 걸 하고, 엄마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중심이 생겼다면 앞으로 어떤 일을 겪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매번 어떻게 이기나! 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실패하는 건 큰 일이 아닌 거 같다. 우리가 오디션 프로 같은 걸 봐도 정말 좋아해서 열심히 한 후 탈락하면 그 사람의 정신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끌려 다니다 망하면 그때부터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되는 거다. 준호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상대방을 설득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버틸 수 있는 근력이 생겼기 때문에 준호는 선수로서 수영을 하든 취미로 수영을 하든 행복하게 살 거다.
솔직히 말해 지금 한국사회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못 믿겠다.
4등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순위를 매긴 후에 4등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구선수를 예를 들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선수 중에서도 은퇴 후 지도자로 남는 등 평생 축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행복한 4등이 아닐까?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게 행복한 4등이다.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지켜내려면 재능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지만 재능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어떤 면에선 모순이다. 재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위치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불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게 행복하다면 그렇게 행복한 순간을 맞닥뜨린 사람이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축구선수를 예로 들면 단지 프리미어 리그에 못 갔다고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자신의 길을 지켜나간 것 자체가 재능이라 생각한다.
꼭 1등을 해야만 재능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1등이라는 건 사람들이 매기는 객관적인 기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나.
흔히 말하는 ‘마술적 천재성’ 은 없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적은 없으니까!
<4등>을 준비하면서 운동선수 인터뷰를 많이 했을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천재들이 정말 많더라. 그런데 그들 주변에는 영화 속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있더라. 팀의 승리가 필요할 때 천재들을 데려다 쓰는 거다. 어른들의 의도를 아는 영악한 천재는 훈련 기간 동안 열심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들도 천재들에게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으니까 야단 치지 않고 이기면 용돈을 줄 뿐이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그 선수로 인해 4강에 진출하거나 다른 선수들의 대학 진학 조건이 좋아지면 그뿐인 거다. 하지만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마음을 다해서 천재들을 다른 선수들과 함께 이끌어 가야하지 않겠나. 그게 스포츠맨 십인데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능력있는 선수들이 예선할 때는 훈련에 합류도 하지 않고 놀러다니다가 준결승쯤에 합류해 우승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정말로 좋지 못한 말년을 맞이하는 천재 선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광수에게도 그런 면이 있지 않나.
그렇다. 광수도 본인이 천재인 걸 알고 허영을 부린 거다. 쉬엄 쉬엄 하다가 대회 2주 정도 전부터만 제대로 하면 되니까. 주변에서도 가끔 정말로 빼어난 사람이 보이지 않나. 이것 저것 손만 대면 모두 잘한다. 안 해봤다는데도 뭐든 쉽게 한다. 그런데 그런 재능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순간 말년이 안 좋아진다.
구상중인 차기작이 있나.
<뷰티 인사이드>의 제작사인 용필름과 함께 <침묵의 목격자>라는 중국영화를 리메이크할 생각이다. 법정 드라마다.
<해피엔드>를 유심히 보면 엄청난 배우와 스탭들이 모여 있다. 최민식과 전도연이라는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촬영은 모든 감독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한다는 김우형 감독이 맡았다. <해피엔드>가 그의 상업영화 데뷔작이었거든. 또 박현원 조명기사님은 <올드보이>로 유명한데 정말 한국을 대표하는 조명기사다. 프로듀서는 심재명, 이은이었고. 이런 사람들이 모두 모인 한국 영화가 없다. 그런데 그때는 영화를 만들면 이 정도 사람들이 모이는 게 보통인 줄 알았다(웃음).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웃음).
처음부터 레벨이 너무 높았던 거다. 복인지도 모르고 의례 영화라면 이 정도 수준의 스탭들이 모이는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또 큰 성공을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도달해보고 싶은 수준이 생겼다. 스스로는 <해피엔드>의 완성도 자체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좋은 기운이 있는 영화이긴 굉장히 거칠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래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곧바로 차기작을 하지 않은 건 보다 영화적으로 완성도를 갖춘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성숙하고 싶은?
나쁘지 않은 도전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 영화 <사랑니>는 흥행에 너무 실패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4등> 때문에 정신 없겠지만 최근에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인상 깊었던 일? 깜짝 놀랐다. 인상 깊은 영화는 물어봐도 인상 깊은 일은 처음 질문 받는다. 내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다! 얼마 전 <사울의 아들>을 보고 영화가 아직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영화라고 생각한 것과 정말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더라. 그런 영화를 보면 어지럽다. 지금 영화가 어디로 가는지 질문하게 되는데 <사울의 아들>은 그런 면으로 정말 무서웠다.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를 보여줬다. 보통 아우슈비츠를 소재로 다룬 영화는 관습적으로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가스실에 들어가는 게 중심 이야기인데 <사울의 아들>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난 뒤 가스실 문을 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태연히 도축장에서나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거다. 그것도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사울의 얼굴만 계속해서 보여준다. 진짜 무섭더라.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며칠 동안 어질어질하다.
<사울의 아들>과 같은 영화를 보면 자극 받을 것 같다.
쉽게 까불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웃음). 나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그러나 ‘포기하지 말자, 영화란 무엇이라고 쉽게 규정짓지 말자. 더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는 생각은 한다.
2016년 4월 11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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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