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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고 떨리는 스크린 데뷔 <히야> 안보현, 이호원
2016년 3월 7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히야’의 뜻이 무엇인가.
안보현(이하 안): 경상도 사투리로 형을 의미한다.

시사회를 앞두고 인터뷰하니 긴장될 듯하다.
안: 일단 실감이 잘 안 난다. <히야>를 찍으면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사실 찍어 놓은 지 꽤 된 작품이다.
이호원(이하 이): 가수 활동을 오래했지만 처음 데뷔하는 것처럼 긴장된다. 어제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설레고 걱정된다.

곧 있을 기자 간담회에서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모르니 떨리긴 하겠다. 둘 다 사투리가 자연스러운데 고향이 어딘가.
안: 둘 다 부산이다. 그러다 보니 사투리를 쓰는 영화라고 했을 때 조금 만만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 안심하고 있었는데 대본을 받고 감독님과 리딩을 해보니 대구 사투리와 부산 사투리가 많이 다르더라. 억양도 차이가 났지만 단어부터가 다른 경우도 있어서 대사를 틀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아무래도 사투리가 많이 신경 쓰인 부분 중 하나다. 어릴 적 영화를 볼 때 그 지역 출신이 아닌 배우가 사투리를 쓰면 꼭 어색한 부분이 보이더라.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지방 사람들은 그런 지점에 민감한 경향이 있다. 사투리 쓰는 사람만의 자부심이라고 할까(웃음). 그래서 대구 출신의 지인에게 사투리를 배우면서 노력을 많이 했다.

호원은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 이후 <히야>에서 더 어리고 거칠어진 역할을 맡았다.
이: 그렇게 됐다. 그런데 응칠보다 <히야>의 캐릭터가 나와 더 잘 맞는다. 감독님이 나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썼다고 들었다. 캐스팅되고 나서도 나에게 더 잘 맞도록 다듬은 캐릭터라 아무래도 나와 유사한 점이 많다.

감독님은 훤칠하고 멋진 외모의 배우를 진상 역에 캐스팅하고 싶었다던데.
안: 처음에는 감독님과 만나는 자린지 모르고 미팅에 나갔다. 감독님이 여성이란 걸 알고 조금 더 멋지게 보이려고 스스로를 포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꾸밀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단지 인간적인 안보현을 보여주면 될 것 같더라. 감독님이 그런 면을 좋게 봤는지 다행히 여러 번의 리딩과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첫 촬영은 언제였나.
안: 2014년 10월 정도다.

지금 ‘태양의 후예’에 출연중인 걸로 안다.
안: ‘태양의 후예’은 사전 제작 드라마다. 촬영은 이미 끝났는데 이번에 편성 받은 거다. ‘태양의 후예’를 비롯해 현재 방영 중인 ‘최고의 연인’과 <히야>, 세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게 됐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지금이 터닝 포인트인 것 같다.

인터뷰 전에 둘이 따로 앉아 있던데 서로 친하지는 않은가 보다(웃음)
이: 친하다. 출신지가 같다 보니 말도 잘 통하고.

형제애를 다룬 영화다 보니 둘의 호흡이 중요했을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하지는 않았나.
이: 그렇진 않았다. 고향도 같고 둘 다 운동을 했다는 공통점도 있더라. 게다가 가까운 곳에 살아서 촬영할 때보다 촬영 전에 오히려 더 자주 만났다. 술도 많이 마시고.
안: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서 정말 동생 같다.

둘 다 술을 좋아하나 보다.
안: 남부럽지 않게 마신다(웃음).

영화 속 이미지 때문인지 호원은 미성년자 같아 보인다.
이: 그런 소리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 최근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서 어려 보인다는 말이 기쁘다.
안: 맞다. 말이 없으면 정말 아이처럼 보이지 않나!

<히야>는 우애를 다룬 영화다. 실제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나.
안: 난 여동생만 있다.
이: 3형제 중 둘째다. 형과는 정말 많이 싸웠다. 형과 사이가 안 좋은 적도 있었다. <히야>에서 진상과 진호가 오랫동안 말을 안 하고 지내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3~4년 정도 남처럼 지낸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촬영하면서 공감이 컸다.

촬영하면서 형 생각이 많이 났겠다.
이: 맞다. 때로는 연기를 한다는 느낌보다 과거로 돌아가 다큐멘터리를 찍는 기분이 들더라.

호원 같은 경우는 진호가 가수 지망생이라 감정 이입이 많이 될 수 밖에 없겠다.
이: 친구들에게 내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오디션 보는 장면을 비롯해 공통된 부분이 너무 많아 나열하기 시작하면 이틀 밤을 새워야 한다(웃음).

보현은 여동생과 사이가 어떤가?
안: 여동생이 많이 무뚝뚝한 편이다. 가족이 모두 투박하다. 속은 다정한데 표현을 잘 못한다. 나는 어릴 때 운동을 해서 중 2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무슨 운동을 했나?
안: 권투. 체육 고등학교라 기숙사에 있었고 그 이후에는 군대를 가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성격이 무뚝뚝해서 동생을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서른 가까이 돼서 생각해 보니 정말 고맙더라.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가 좋아졌다.
키가 커서 권투하는 모습이 상상이 잘 안 된다. 호원은 무슨 운동을 했나.
이: 태권도와 축구를 했다. 어릴 때 몸이 약해서 태권도를 하게 됐다. 부모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어릴 적에는 응급실에 많이 실려 갔다고 하더라. 특히 기관지가 안 좋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운동을 시켰다고 들었다.

춤추는 모습을 보면 전혀 몸이 약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인이 당신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 추는지 꼭 물어봐 달라고 했다.
이: 과찬이라고 전해 달라(웃음).
안: 그 정도로 잘 춘다고 하면 안 된다. 실제로 춤 추는 걸 보면 정말 놀랄 거다.
이: 타고 난 장점이 많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단점을 장점으로 만든 게 많다. 춤도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더뎌서 연습을 더 한 결과다. 기관지가 안 좋다 보니 처음에는 남들보다 빨리 지치고 숨이 찼다. 긴 시간 춤 추지 못하니 남들은 한 시간에 터득할 걸 나는 더 오래 걸렸다. 10분 동안 춤을 추고 나면 10분 동안 쉬는 식이니까. 그래서 남들은 연습 끝내고 집에 가는데 나는 혼자 남아 계속 연습을 한 거다.

일부러 랩을 어설프게 하는 연기가 오히려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이: 사투리로 랩 하는 부분은 정말 많이 고민했다. 현실에서는 사투리를 쓴다고 사투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랩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캐릭터는 심각하지만 보는 사람은 웃기도록 연기해야 했다. 그리고 진호가 오디션에서 하는 랩은 직접 쓴 것이어서 부담감이 엄청 컸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웃겨야 했거든. 관객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모두 배꼽 찾으러 다닌다고 할 정도로 재밌어했다.

보현은 가수 준비한 적이 있나. 랩을 곧잘 하던데.
안: 호원이가 써 준 걸 보고 많이 연습한 덕분이다. 가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음악은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너무 좋아한다. 랩 하는 장면은 정말 많이 연습한 장면 중 하나다.
이: 형이 촬영 전에 ‘쇼미 더 머니’ 나가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다음 시즌에 출연하는 거 아닌가!
안: 기회가 있으면! 사투리로 대사 하나 틀리지 않고 하는 랩을 장기로 개발해볼까 생각 중이다(웃음).

여성 감독님인데 호흡은 어땠나?
이: 감독님이 여성이라고 다른 건 없었다. 사실 첫 영화다 보니 다른 감독님들의 성향도 잘 모른다. 그리고 시간도 짧아서 감독님의 성향을 파악하기에는 정신이 없었다.
안: 여성이라서 더 섬세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여자가 볼 때 남자의 어떤 면이 멋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 ‘히야’는 친한 형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언니에게도 쓰는 말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감독님은 남자들이 ‘히야’라는 단어를 쓰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영화를 만든 거다. 여성의 시점에서 꼼꼼하게 잘 준비한 것 같다.

둘 다 연기 이외의 분야에서 먼저 데뷔했다.
안: 우리 때는 강동원, 차승원 선배처럼 모델이 연기의 발판이 된 사람이 많았다. 가진 게 키밖에 없어서 운동을 그만 두고 모델이 됐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는 했다.
이: 응칠을 굉장히 갑작스럽게 출연하게 됐다. 연습생 때도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 생각도 못한 일이다. 회사에서도 멤버들 포지션을 정할 때 꽃미남 친구들은 연기 쪽으로 밀어주는데 나는 그 쪽이 전혀 아니었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어서 기회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응칠에서 사투리를 쓸 줄 아는 배우나 아이돌이 필요해 기회가 온 거다. 처음 하는 연기인데 너무 재밌어서 완전히 빠졌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어렸을 때는 영화 감독을 꿈꾼 적이 있고, 운동을 하면서는 액션 배우를 꿈 꾼 적도 있더라. 연기를 정확한 목표로 둔 적은 없지만 무의식 중에 연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던 거다.

직접 연기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배역이 있나.
안: 유오성 선배님이 출연한 <챔피언>이다. 내가 권투선수였기에 권투 영화를 보러 간 거였는데 진짜 권투 선수가 찍은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배우가 연기한 거여서 충격을 받았다. 기회가 되면 권투선수 역을 해 보고 싶다. 또는 <올드보이>의 유지태 선배님이 연기한 캐릭터도 좋다. 절제된 악역 연기가 하고 싶다.
이: <라이프>라는 영화가 있다. 제임스 딘과 한 사진 기자의 이야기인데 남자 배우들이 차분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멋지더라. 나도 그들처럼 고독하고 어둡고 깊어 보이는 연기를 하고 싶더라.

어떻게 보면 배우는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난 가수도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춤을 추려면 신체적으로 무리가 많이 가지 않나. .
이: 물론 힘든 부분도 있다. 나도 벌써 재활 운동과 몸 관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몸 관리 최대한 잘 해서 어떻게든 오래오래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

가수와 배우로서의 에너지가 다를 것 같다.
이: 다르기도 하지만 공통점이 많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서로 도움이 된다. 배우든 가수든 어찌 됐든 카메라 앞에, 사람 앞에 서는 거고, 감정을 다루는 일이니까.

아이돌이라서 연기의 기회를 쉽게 갖는다는 시선도 있다.
이: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가수여서 기회를 놓친 적이 더 많았다. 가수이기 때문에 얻은 기회도 분명 있지만 오디션을 보고 최종 합격이 됐는데 연기와 상관없이 가수는 무조건 싫다는 작가 분도 의외로 많아서 출연이 무산된 경우가 몇 번 있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 있다.
이: 그 점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부분이다. 불만 같은 건 없다. 평가하는 건 보는 사람의 몫이고 비난 받지 않을 만큼 잘 하는 건 내 몫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안: 마지막에 동생에게 귓속말 하는 장면과 동생이 공연하는데 사탕 내미는 장면!
이: 사실 이런 질문이 가장 힘들다. 모든 장면을 공 들여 촬영했기 때문에 전부 소중하다. 내가 출연하지 않은 장면까지도 너무 인상 깊고 좋다. 영화를 볼 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대답하기 힘들지만 촬영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청도 축제 장면이다. 축제 장면을 찍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 장면에서 나오는 ‘로드 킹’ 멤버 다섯 명 중 두 명이 내 지인이다. 한 명은 어릴 적 친구고 다른 한 명은 친동생이다.

몰랐다!
이: 친동생은 학교에서 연극은 하고 있다. 그런데 춤은 한 번도 춰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친구와 동생에게 춤을 두 세달 정도 가르쳤다. 나머지 멤버들도 춤을 많이 안 춰 본 친구들이라서 정말 데뷔를 준비하는 그룹처럼 연습을 많이 했다. 3개월 정도를 시간이 날 때마다 매일 연습했다.

당신의 진두지휘 아래?
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 장면을 겉만 다루는 걸 싫어한다. 춤도 율동 같이 가볍게 춘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과할 정도로 준비했다(웃음). 동생이 누가 봐도 아이돌 그룹 멤버처럼 보이게 하려고 훈련을 많이 시켰다.

누가 동생인가.
이: 대사 딱 한마디 있는 친구다(웃음). 모두들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고생한 만큼 그 장면이 괜찮게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히야>는 결국 가족 드라마인 셈인데 근래 부모님을 보며 짠한 적이 있나.
안: 우리 아버지는 덩치도 크고 몸무게도 나보다 더 많이 나가셨다. 또 기가 세셔서 어릴 때 참 무서웠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버지를 피한 적도 있다. 난 서울에 있고 부모님은 부산에 거주하니 명절 때나 가끔 내려가서 뵙는데 이제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 아버지가 많이 왜소해지고 머리도 하얗게 변했다. 옷이 커진 것처럼 보이더라. 큰 소리로 화를 내셔도 무섭다는 생각보다 짠한 감정이 크다.
이: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짠하다. 특히 엄마가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우리 집이 식당을 하다 보니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부터 엄마가 하루 종일 일을 많이 했다. 그렇게 평생 일을 하셨는데 내가 조금 잘 되고 나니 집 전체가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가게를 작게, 힘들지 않게 하실 수 있도록 내 드렸는데 망했다. 그래서 다른 가게를 내 드렸는데 또 망했다(웃음). 차라리 잘 됐다고 했다. 평생 힘드셨는데 이제 좀 쉬시라면서. 그런데 엄마는 1년이 조금 넘게 쉬니까 너무 미안해 하더라. 얼마 전부터 다른 사람 식당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오랜만이다 보니 힘이 많이 드시나 보더라. 그 이야기를 듣는데 울컥하더라. 남들이 보기에는 잘 된 가수고 돈도 많이 벌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엄마는 그렇게 일을 하시니, 마음 아팠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쓰기 편치 않은 모양이다.
이: 일 안 하셔도 상관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얼마를 벌던 돈을 함부로 못 쓰겠더라. 부모님도 열심히 돈을 버시는데 내가 명품을 사거나 친구들과 몇 십 만원씩 술 사 마시기가 힘들더라. 그런 적도 있긴 하지만.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안: <트루먼 쇼>를 좋아한다. 일 년 전에 봤는데 어떻게 저런 발상을 했을까 의아했다. 너무 충격이었다.
이: 굉장히 많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클래식> 이다. 아주 어릴 때 처음 봤는데, 2년 전 쯤 다시 봤다. 난 늘 일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음 한 켠에는 순수하고 맑은 사랑을 꿈꾸나보다. 멜로 영화를 참 좋아한다. 실제로는 연애를 잘 못하니까 대리 만족을 하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 근래 가장 기뻤던 일이 있다면?
안: <히야> 개봉이 확정된 것! 한달 정도 됐다. 새해에 좋은 소식이 있어서 너무 기뻤다. 드라마도 방송을 시작해 좋은 일이 겹친 셈이다.
이: 얼마 전 월드 투어 콘서트가 끝났다. 그 중 개인 솔로무대가 오랜만에 있었는데 1~2 주 동안 짧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결정해주는 부분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선곡부터 밴드, 안무, 의상 등 모든 부분을 내가 처음으로 전부 결정했다. 한마디로 내가 만든 무대였다. 그런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평소 나를 인정하지 않던 분들도 ‘엄지 척’ 해주셨다. 인정을 받게 된 점이 가장 기뻤다. 아직까지도 기쁘다.

2016년 3월 7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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