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영화를 홍보해 본 건 처음이다. 이전에도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그땐 내가 기댈 수 있는 배우들이 있었잖나. 이번에는 혼자 감당해서 그런지 더 긴장된다. 인터뷰 하는 것도 더 힘들다.
<무한도전>, <해피투게더>에도 나오더라.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겁은 나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다 하자고 생각했다(웃음). 영화를 알리기 위해서 출연했다.
원톱 주연으로서의 부담감이 심한가 보다.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웃음).
잠도 잘 못 잔다. 상상도 못했던 압박감이 있다. 영화가 잘 되면 긴장도 풀리겠지, 어휴(웃음).
영화에 대한 딸의 반응은 어땠나?
아직 VIP시사회는 하지 않아서 시나리오만 본 상태다. 시큰둥하게 “어, 재밌네” 하더라. ‘소리’의 모습도 궁금해 했다.
영화에서는 ‘버럭 아빠’로 나왔다. 실제 아버지로서의 모습은 어떤가?
‘해관’과는 많이 다르다. 친절하고 자상한 아빠다(웃음). 애의 눈높이로 사는 것 같다. EXO 좋아하는 딸을 위해 함께 노래도 듣는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더라(웃음). 그래도 계속 듣는 건 둘만의 시간 혹은 특별한 이벤트를 하기 위해서다(웃음). 이벤트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그냥 15분이나 20분 정도 같이 노는 것뿐이다.
‘해관’처럼 딸을 과보호하는 편인가?
‘해관’도 나도 딸을 둔 아빠다.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안 그런 척 해도 마음이 자꾸 그렇게 된다. 아들이었으면 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딸이라서 더 보호하려는 것도 있다.
그 물음은 ‘소리’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어주는 일침이다. 내 아픈 구석을 묻는 거다. 보호란 건 고마운 것임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본능이다. 펭귄도 알을 낳으면 발등 위에 놓고 알이 부화할 때까지 며칠씩 얼음 위에 서서 기다리잖나. 요즘엔 그런 생각도 든다. 영화 초반처럼 아기 때는 아이들과 부모가 항상 붙어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1분씩 떨어져 있어도 되고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게 되며 외박도, 혼자 여행도 갈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아이랑 아빠가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고 결국은 아빠 혼자 남게 된다. 영화가 꼭 부모와 자식이 이별하는 과정을 압축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운다는 건 세상 밖의 누군가에게 이 아이의 손을 건네주기 위해 준비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를 보낼 마음을 다져가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 ‘해관’이 딸을 세상 밖에 내놨어야 했던 건데 ‘유주’는 그러지 못했던 거지. 그런 ‘해관’의 죄책감을 ‘소리’가 훅훅 파고들었다. 그래서 “그냥 고맙다고 해, 인마”한 거다.
‘해관’은 딸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10년 동안 생업을 전폐하고 찾아 나선다. 캐릭터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던 부분이다. ‘해관’이 ‘유주’의 죽음을 인정하는 건가, 하지 않는 건가, 하면서. 난 인정한다고 본다. 하지만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그 날, 그 현장에 ‘유주’가 있었던 건 맞지만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정황 상 거기에서 ‘유주’가 죽은 건 맞지만 믿고 싶진 않았던 거다. 생각하기도 싫었을걸.
그렇다면 딸의 죽음을 알면서도 믿지 않고 ‘유주’의 행방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처음엔 ‘해관’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점점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 역시 그럴 것 같았다. ‘유주’와 싸운 자신을 자책하면서 찾아다닐 거다. 사과하고 싶어서. 그런 자책감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아마 ‘유주’의 사고를 목격하는 순간 그의 뇌는 한 쪽으로 확 쏠린 채로 모든 게 포맷됐을 거다. 그러지 않고서는 10년 간 생업도 전폐하고 버티긴 힘들었을걸. 부모들은 충분히 그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대구를 배경으로 한다는 게 참 반가웠다. 젊은 시절 누비고 다녔던 데에서 촬영을 한다니까 설렜다. 대구는 정이 많이 든 도시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어쩌면 잊고 사시는 분들에게 괜한 기억을 끄집어 내 상처를 들추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자칫 흥미를 유발하려는 소재거리로 사고를 이용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도 됐고. 그래서 감독님도 사고 장면을 촬영할 땐 앵글을 자제해서 찍었다. ‘유주’가 나에게 메시지 통화를 보내는 장면도 원래는 배경도 안 나오는 바스트 한 컷이었다. 그래도 사건의 공간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 컷을 더 추가했다. 사고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넣을 수 있었음에도 감독님이 반대하셨다. 감독님, 제작사 대표들, 제작진과 나까지 촬영장의 추모탑에 가서 참배하기도 했다. 기자 시사회 전 날엔 추모탑에 혼자 다녀왔다.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차기작으로 <로봇, 소리>를 선택한 이유는?
전작의 명성으로 인한 부담감은 없다. <로봇, 소리> 촬영은 신기한 작업일 것 같았다. 로봇이 나오잖나. 어쩌면 한국 로봇영화, 한국 SF 장르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길 기회처럼 보이기도 했다(웃음). 무엇보다 영화 시나리오가 마음에 와 닿았다. 감독님과 제작사 대표님도 정말 좋으신 분들이었고. 그래서 출연을 결정한 거다.
<대호>도 그렇고 점점 영화촬영장에서 신기술이 도입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신소재, 새로운 촬영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새로운 촬영방식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새로운 게 있다면 어떻게 이 작업을 수행해 갈까, 촬영하면서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 <로봇, 소리>를 찍으면서 나름 열심히 궁리해서 답을 찾은 것도 있다. 나는 로봇과 교감해야 한다. 그때 로봇이 반응하길 바라서 ‘소리’의 동작들을 연구했다. 상하좌우, 목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것들을 최대한 이용해 내 동작과 맞춰봤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재밌었다. <대호>의 최민식 선배는 더 어려웠을 거다. 사람이 나타나선 “제가 호랑이에요, 전 사슴이에요”하면(웃음).
유달리 합이 잘 맞거나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모든 게 합이었다(웃음). 생각지도 못한 합이 나왔던 건 ‘소리’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재회했던 장면이다. 그때 ‘소리’가 강아지처럼 내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참 뭉클하더라. 그날 감정신을 촬영해야 해서 딴 데 집중하고 있었는데도. 소리삼촌(로봇을 조종하는 사람)이 열심히 연구한 거다. 어느 순간 누가 그러더라.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소리삼촌 연기가 점점 늘더라고. 이런 합이 소리삼촌하고 맞아야 한다. 슬리퍼 던지는 건 현장에서 갑자기 낸 아이디어다. ‘소리’가 그냥 슬리퍼를 맞으면 재미없으니까 이마에 맞으면 고개를 뒤로 젖히도록 만들자고 했다. 나중에는 ‘소리’가 길 가다 갑자기 날 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런 합이 자주 맞진 않았지만(웃음).
대중들이 좋아할 거라는 느낌이 오는 장면은?
“춥다, 들어가자”는 대사를 칠 때 ‘해관’이 ‘소리’에게 다정해진 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로봇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추우니 들어가자고 말하는 순간 온기가 돌았던 것 같다. 영화가 새롭게 시작되며 따뜻해지는 지점이다.
딱히 이하늬 씨와 호흡을 맞춘 건 없다. 하늬 씨는 현장에서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만들어줬다. 온통 돌아다니며 기를 주더라. 다만 추위를 많이 타서(웃음). 춥지만 않으면 정말 생기발랄하더라. 칙칙한 아저씨만 있는 촬영 현장에서 분위기를 돋워줬다. 사실 케미나 호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희준과 이하늬가 더 잘 맞지 않았겠나.
액션, 스릴러 장르물도 잘할 것 같다.
공포스릴러물인 <손님>도 했었고 액션 영화의 악역을 맡아보고 싶다. 내가 도전해야 할 숙제다. 물론 <검사외전>에서도 악역으로 나온다. 심각한 악역은 아니고 적당한 악역으로(웃음). ‘해관’과는 극과 극을 달리는 악당 역이 욕심난다. <악마를 보았다>의 살인마 ‘장경철’같은?
드라마 ‘미생’ 캐스팅 당시, ‘장그래’ 역으로 “인성 좋은 배우가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들었다. 자연인으로서의 인성이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건가?
인성이 연기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몰라도 팀에는 영향을 미친다. 당시 김원석 감독님이 가고 싶은 방향대로 드라마를 끌고 가려면 인성이 올곧은 배우가 ‘장그래’ 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개 그런 배우들이 잘 해내고.
후배 연기자들에게 존경 받는 배우다. 그런 이성민도 지향하는 배우가 있나?
송강호 선배. 그 분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충격적이다. 내게 힘이 된다. 최민식 선배님도 그렇다. 후배로 따지면 하정우나 조진웅 같은 배우도 놀랍다. 특히 조진웅은 나중에 정말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줄 거라 본다. 임시완은 영리하고 영민한 배우고 변요한은 굉장히 뜨겁다.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배워야 할 지점들이 보인다. 그중 마음 속으로 따라가야 할 배우, 해내야 할 연기라 생각하는 사람은 송강호 선배의 연기다.
배우 송강호 연기의 매력이라 하면?
평범한 듯한 비범함? 소시민적인 건달? 리얼리티? 그런데 어느 순간 송강호 선배는 그걸 뛰어 넘어서 연기하더라. <사도>나 <설국열차>, <변호인>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내가 따라갈 만 하면 저 앞에 가 있고,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으면 저기 앞에 가 있고 그렇다. 지금도 늘 바라보고 있는 배우다.
‘보통사람’같은 연기를 지향한다는 건가?
송강호 선배의 연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하고도 싶은데, 가끔은 내가 최민식 선배 부류인 것 같기도 하다. 두 분을 골고루 본다. 최민식 선배님은 송강호 선배님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 호흡이나 어조는 최민식 선배님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여러 선배를 닮고 싶다. 이 나이에 이러고 있다는 게 한심하지만(웃음).
배우로서 이성민이 갖고 있는 차별점은 뭘까?
평범함, 그로 인한 친숙함. 내가 송강호 선배님을 지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화려하지 못하기도 하고. 여기에서 오는 평범함도 무시할 수 없다(웃음).
영화를 좋아했다. 아버지가 강제로 영화를 보게 하셨다. 혼자 보기 싫으시니까 같이 보자는 거였다(웃음). 점점 영화가 좋아지다 보니 연기도 좋아하게 됐다. 그러다 연극영화과를 알게 됐다. ‘재밌겠다, 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시험도 못 쳤다. 그러던 찰나 연극단원 모집 공고를 봤다. 마음 속에 울리더라. 호기심에 오디션을 봤는데 정말 많은 얘기를 듣게 됐다. 마치 종교에 홀린 듯 새로운 세계를 접한 거다. 그 매력에 빠져서 연기를 결심했다.
연극배우의 삶은 고되다. 고된 삶을 지탱하며 연기를 지속하게 한 원동력은 뭔가.
총각 때는 그냥 살았다. 돈이 없으면 굶으면 됐다. 결혼하고 나서는 가족이 내 힘이 돼줬다. 가족이 있어서 버텨낼 수 있었고 잘하고 싶은 욕망도 생겼다. 가족은 버팀목이자 부담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가족 덕분에 더 앞으로 가려고 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연기에서도 묻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해관’같은 아버지 역이나 ‘오상식’같은 역을 더 익숙하게 느끼는 것 같고. 둘 중 어느 캐릭터에 더 많이 공감되나?
사실 나에게는 ‘해관’이 더 익숙하다. ‘오상식’과 나는 닮지 않았다.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명언들을 날린다. 그렇지만 이 둘은 따뜻한 사람들이다. 겉으로는 다정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가족과 동료애가 넘친다.
요즘 그러고 있다(웃음). 로봇을 조종하는 소리삼촌이 옆에 있는데도 로봇을 보며 말하고 있더라. 딸한테도 하지 않는 뽀뽀하기, 사진찍기를 ‘소리’와 하는 걸 보면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난 애완동물도 좋아하지 않는데(웃음). 그래도 누가 ‘'소리'를 집에 가져 갈래요?’하면 싫다 할 거다. 사람이 좋다(웃음).
인터뷰 하는 내내 딸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사춘기 딸과 잘 지내는 비결은 뭔가.
내 눈높이를 아이에게 맞추는 거다. 가족 서열에서 내가 밀린다고 생각한다. 걔는 자기가 3위라 우기지만 난 내가 3위인 것 같다(웃음). 우린 지금도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른이 사춘기를 이해해주는 거다. 어른은 사춘기를 겪어 봤잖나. 어쩌면 사춘기 아이들의 고통은 갱년기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 헐크가 몸이 변할 때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춘기 증상이 반항, 저항, 대꾸인데 그 시기에는 애들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딸에게도 그런 얘기를 한다. 네가 몸이 변하기에 힘들단 걸 이해하지만 너 스스로도 네가 그런 시기란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인지 요즘엔 딸이 반항을 하고도 바로 “미안”이라 말하더라. 이렇게 또 한 단계 성숙해지는구나 싶었다.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글쎄…….
힘 내서 한 번 더 생각을(웃음).
뭐가 있지? 생각이 잘 안 난다. 없네. 앞으로 즐거울 일이라면 영화가 잘 될 거라는 거? 기자간담회 때 기자들이 영화를 좋게 평해준 것도 즐거웠던 일이다. 그때 제작진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제작사 대표님은 아침 7시부터 나와서 촬영장비를 점검하시더라. 행사가 다 끝나고 기자 반응이 좋은 걸 알았을 때는 한시름이 아니라 반시름 놨다. 반시름에서 한시름 덜려면 관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아야겠지만(웃음). 영화 어떻게 봤나?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뭉클하고 찡했다.
사람마다 뭉클한 지점들이 다르더라. 어떤 사람은 ‘소리’랑 재회하는 장면이 울컥했다 하고 다른 사람들은 선로에서 ‘해관’이 울 때 찡했다고도 하고.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웃음).
2016년 1월 22일 금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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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