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기는 한데 주말에 촬영하는 건 단편이다.
장편 작업 사이사이 단편 작업을 계속하는 모양이다.
감독으로 데뷔한 뒤 단편 작업을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계속 작업하는 게 좋다.
준비 중인 차기작은 무엇인가?
<0.0MHz> 라는 다음 웹툰 원작의 공포영화다.
공포영화라니 당신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처음에는 웹툰 원작이고 공포영화라서 거절했다(웃음). 웹툰 원작 영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왜? 웹툰은 근래 가장 주목받는 콘텐츠 소스 아닌가.
당시 웹툰은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소스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부터가 평소 공포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내가 즐겨보지 않는 영화를 연출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다. 그런데 연출 제안을 거절하고 1주일 후에 원작 웹툰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웃음). 그리고 <0.0MHz>는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던 장르의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예술영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정작 영화 감독의 꿈을 꾸게 만든 영화는 <에이리언>시리즈다. 리들리 스콧 감독, 제임스 카메론 감독, 장 피에르 주네 감독, 데이빗 핀처 감독을 좋아한다. 나도 언젠가 그들과 같이 미지의 생명체가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런데 <0.0MHz>는 한국적인 생명체가 나오는 공포영화가 될 것 같았다(웃음).
한국적인 생명체라니?
<0.0MHz>는 귀신 이야기인데 우리는 통상적으로 한국귀신을 떠올릴 때 하얀 소복에 긴 생머리의 여자를 떠올린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의 색깔이 담긴 또 다른 생명체가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래서 <0.0MHz>를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굉장히 즐겁게 작업중이다.
CG 작업이 많을 것 같다.
CG가 많이 들어가기는 한데 예산은 크지 않을 것 같다(웃음). 항상 영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예산이 담보되기를 바라는데 실제로는 영상보다 적은 예산을 받게 된다(웃음). 그래도 굉장히 욕심나는 영화다.
왜 웹툰이 영화화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나?
모든 웹툰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웹툰은 정말 좋은 콘텐츠지만 매주 내용이 바뀐다. 업데이트 될 때마다 관객을 새롭게 끌어당겨야 하기 때문에 일일드라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장기간 매주 업데이트된 내용을 두 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웹툰의 내용을 얼마만큼 덜어내서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웹툰의 내용을 모두 있는 그대로 실사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웹툰의 소재와 이야기에 내 아이디어를 가미해 변형하고 싶다. <0.0 MHz>는 원작도 재밌지만 영화적인 변형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0.0MHz>의 시나리오는 직접 쓰나?
각본은 작가와 함께 쓴다.
이제껏 못 봤던 영화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여름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난 항상 여름 개봉을 선호하니까(웃음).
우연찮게 그렇게 됐다(웃음). 영화 예산의 크기와 관계없이 여름에 개봉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다. 어렸을 때부터 ‘썸머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웃음). <살인재능>이 ‘나의 조그만 썸머 블록버스터’라 생각한다. 3,500만원짜리 영화가 몇 백억짜리 영화와 함께 개봉한다는 사실이 재밌다.
예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살인재능>은 전 재산을 털어 만든 영화라 들었다.
맞다. 그 당시 전 재산이었다.
전 재산을 모두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생기나?
절박함인 것 같다(웃음). <풍산개>를 끝내고서는 영화를 그만두려 했다.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에서 떠나있고 싶었다. 잠시 물 좀 마셔도 되겠나?
물론이다. 질문을 너무 공격적으로 했나보다(웃음).
운동 끝내고 곧바로 와서 목이 탄다(웃음). 사실 그 돈은 여행 경비였다. 영화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서 자아를 찾으려 했다. 과연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만들어야 되나 싶더라. 그런데 문득 남들은 자아를 찾기 위해 여행을 가도 나는 영화를 찍으며 자아를 찾는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차피 여행가서 쓸 돈, 영화에 쏟아부어야겠다고 결심한 거다.
무엇이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당신을 절박하게 만들었나?
내가 영화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29살에 영화를 처음 시작해 비교적 빨리 데뷔한 편이다. 2007년도에 <물고기>라는 단편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갔고, 2008년도에는 장편 <아름답다>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갔다. 그리고 2011년에는 <풍산개>를 개봉했다. 그때까지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적성과 맞는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무조건 달려오기만 한 것 같다. 그런데 <풍산개> 이후 여러가지 일이 생기면서 잠시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고 싶었다.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의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라도 있었나?
지금 와서 그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애매한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힘들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경험으로 바뀌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나려고 결심할 때쯤 살이 1주일 동안 8~9kg정도가 빠졌다. 건강이 안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주위에서는 위로해주려고 그래도 살은 예쁘게 빠졌다고 하더라(웃음). 김기덕 감독님의 말이다(웃음). 이런 게 기사로 나가도 되려나? (웃음)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웃음). 그때는 물론 많이 힘들었겠지만 지금 들으니 재미있기도 하고. 굉장히 긍정적인 시선이다.
정말 긍정적인 시선이다(웃음). 아무리 몸에 안 좋은 독도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 영화로 돌아오게 된 것 같다. 그때 또 한 가지 깨달은 건 세상에 진정한 ‘바닥’은 없다는 거다.
좋은 마인드다(웃음).
왜냐하면 지금 바닥이라고 생각한 것 밑에 또 다른 바닥이 있더라(웃음). 김기덕 감독님이 한 달인가 두 달 전에 붓글씨로 편지를 써 주셨는데 재홍아, 많이 힘들지? 앞으로는 더욱 힘들거야, 라고 적혀 있더라(웃음). 그리고 힘들지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도 하셨는데 그게 감독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최고의 직업이자 최악의 직업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감독님이 워낙 바빠서 자주 연락을 못했다. 항상 안부를 묻고 가끔씩 뵙는다. 김기덕 감독님과 김기덕 사단이 있다는 건 굉장히 좋은 것 같다. 고민거리를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다른 감독들이 있다는 게 정말 좋다.
자아를 찾으려던 여행비를 털어 만든 것이 <살인재능>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본인에 대해 무엇을 발견했나?
우선 내가 영화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웃음). 그리고 처음으로 감독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 같다. <아름답다>나 <풍산개> 때도 감독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나이가 들어 <살인재능>을 찍으니 영화가 달라지더라. <아름답다>는 미의 기준에 관한 영화고, <풍산개>는 분단의 슬픈에 대한 이야기지만 두 영화 모두 내 실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살인재능>은 내가 경험한 사회를 내 시선으로 담은 영화다. 내 살로 직접 체험했던 이야기를 뽑아냈다는 것이 전작들과 다르다.
전작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부터 김기덕 감독이 많은 도움을 준 걸로 아는데 <살인재능>은 시나리오를 혼자 썼다.
감독님은 내용을 전혀 모른다(웃음).
일부러 자문을 구하지 않은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웃음). 감독님은 개봉하고 나면 그때 보실거다. 아직까지는 모르신다.
<살인재능>은 제작, 촬영, 연출, 각본을 모두 맡은 영화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애착이 많을 것 같다.
애착보다는 고민이 많이 생겼다.
고민이라면?
다음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이 생겼다. <살인재능>은 끝났지만 다음 영화에 대한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다. 옛날 같은 경우는 영화를 만들 때 겁이 났다면 지금은 고민이 생겼다. 감독은 프리랜서 직업이기 때문에 예전에는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찍을 수 있을지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다음 번에는 더 큰 영화를 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대신 어떻게 해야 내 자신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옛날에는 욕심과 의욕이 앞섰다면 지금은 작품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영화에 본인의 모습과 시선이 더 많이 투영되는 만큼 또 다른 두려움도 생길 것 같다.
맞다. 영화는 언제나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난 내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극장이나 시사회에서 내 영화를 보는 걸 가장 싫어한다. 발가벗겨진 내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건 굉장히 끔찍한 일이고 최악의 고통이다 (웃음). <아름답다>와 <풍산개>를 개봉할 때도 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본인의 영화를 보면서 뿌듯해 할지 몰라도 난 내 영화를 보면 너무 창피하다. 혼자 몰래 보는 건 몰라도 시사회나 영화제에서 감독 자리에 앉아 보는 건 싫다 (웃음). <풍산개>도 시사회 때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개봉하고 나서 영화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 혼자 몰래 극장가서 봤다. 아마 <살인재능>도 개봉하고 나면 극장에서 조용히 볼 것 같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화에 본인이 드러난다는 점에 유독 더 민감해 보인다(웃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드러나는 게 영화다. 사실 그래서 재미있다. 내 사상이 드러나고 내 모습이 보이는 영화가 재미있다. 반대로 아무리 큰 예산의 할리우드 영화라 하더라도 내가 드러나지 않는 영화는 연출하고 싶지 않다. 전재홍 감독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했구나, 라고 느껴지는 영화를 하고 싶다. 그게 나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고 지난 4년 동안 고민했던 부분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어도 자기 색깔을 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러기가 힘들었는데 나이가 들고 데뷔한 지도 거의 10년 가까이 되니까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리들리 스콧 감독 같은 경우는 나이가 많지만 새롭고 재미난 영화를 계속 만든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누가 봐도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라는 것이 느껴진다. 이안 감독을 존경하는데 그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헐크>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를 찍었지만 모두 누가 봐도 이안 감독의 영화라는 게 보인다. 다만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관객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찍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를 택하기 전에 항상 과연 나라면 이 영화를 거금 9,000원을 주고 볼 것인지를 묻는다.
여러가지 분야에 관심이 많다. 감독은 항상 귀가 열려 있고 눈이 열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된다. 인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지금은 괜찮지만 어렸을 때는 말을 더듬는 장애가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인권은 나와 아주 밀착된 문제였다. 사회의 시선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할 수 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그런 문제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더 컸지만 지금은 내가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를 찍기 전에는 몰랐던 본인의 모습을 영화를 찍고 나서 발견한 경우도 있나?
항상 그렇다. 지인 중 하나가 내 영화에는 외로움이 있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정말로 <아름답다>의 여주인공도 혼자 큰 집에 살고 있고, <풍산개>의 윤계상 캐릭터도 혼자 살고, <살인재능>의 민수도 혼자 살더라. 의도치 않은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 신기하다. 또 한 번은 어느 조감독이 나더러 무슨 낙으로 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술도 담배도 안하고 사람도 잘 안 만나는 내 인생에 낙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더라(웃음). 솔직히 그때 그 이야기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웃음). 카페에 가서 시나리오도 쓰고 혼자 산책도 하고 갤러리도 가면서 나름대로는 굉장히 재미있고 신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볼 때는 그렇지 않았나 보더라. 그런데 내 영화에 나처럼 혼자만의 상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파멸하는 인간을 많이 다룬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나도 파멸당하고 있으니까(웃음).
이거야 말로 기사에 나오면 안될 말인 것 같다(웃음).
난 행복하지 않다. 솔직히 말해 내 인생은 끔찍하다. 감독이란 직업이 그렇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정말 누구에게도 내 인생을 권하지 않는다(웃음). 종이컵처럼 언젠가는 버려질 수 있는 게 감독이니까.
끔찍한 직업이기는 하지만 가장 좋은 직업이기도 하다면서.
감독은 절대 갑이 될 수 없다. 언제나 고용되는 을의 입장이다. 권력자가 아니라 항상 평가받는 직업이다. 트랜드에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월 전에 감독 지망생 친구 하나가 감독이 어떤 직업이냐고 질문하더라. 그래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할 때 탱크 안에 갇힌 병사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이 감독 데뷔 전의 모습과 같다고 말해줬다. 탱크 문이 열리면 사방에서 총알이 날라오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무조건 뛰는 게 감독이라고(웃음). 난 아직까지 심장과 뇌에 총알을 맞지 않았기 때문에 뛰고 있을 뿐이다. 정말 그 어느 누구도 감독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주지 않는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서 뛰고 있는 게 감독인 것 같다.
말만 들어서는 감독이 된 걸 굉장히 후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가고 싶었다(웃음). 그런데 어찌 됐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느 직업이건 다 힘들거다. 감독이 되기 전에는 감독만 되면 세상이 밝아질 줄 알았다. 큰 저택에 페라리를 몰 줄 알았는데 삶이 더 힘들어지더라(웃음). 데뷔 전에는 메이킹을 찍어서 먹고 살았는데 감독이 되고 나니까 그런 아르바이트 거리가 모두 없어지더라. 영화 이외의 아르바이트를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내가 왜 감독이 돼서 이렇게 힘들게 살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영화가 개봉해서 인터뷰하고 나면 그때 느끼는 희열감은 최고다(웃음).
왜 영화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느꼈나?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다 (웃음). 어렸을 때 그림을 그렸고, 성악을 했고,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때까지 공부한 것들을 모두 모아 할 수 있는 것이 영화였다. 또 힘들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재밌게 할 수 있는 일, 내 삶에 가장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살인재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웃음). 영화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
다양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당시엔 사람을 많이 죽일 수 있는 잔인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웃음). 할리우드에서는 <셰임>이나 <언더 더 스킨> 같은 영화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영화가 나오기 어렵고 설령 나오더라도 ‘예술영화’라고 특별 분류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 때는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찍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재홍 표 영화를 찍고 싶어 <살인재능>을 시작하게 된 거다.
살인이 재능이라는 설정은 예전부터 염두에 뒀던 건가?
전혀 아니다. 사실 좀비가 등장하는 단편영화를 하나 찍으려 했다. 그런데 아는 PD님이 전재홍 감독은 싸이코라서 싸이코 영화를 찍어야 된다는 조언을 주더라(웃음). 그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정화를 보고 같이 작업을 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좀비영화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더니 시놉시스가 조금 약한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얼른 싸이코물이 하나 더 있다고 말했다. 배정화가 싸이코영화는 내용이 뭐냐고 묻길래 그 자리에서 5초 만에 <살인재능>의 시놉시스를 생각해냈다(웃음).
정말인가?
그렇다. 그랬더니 배정화가 만일 그 싸이코 영화를 찍는다면 출연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전화를 끊고 김범준을 불렀다. 범준씨, 이런이런 영화가 있는데 할 생각 있느냐, 라고 물으니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맞다(웃음).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해 완성했다(웃음). 솔직히 배우들에게 미안한 것이 섭외를 해 놓고 시나리오를 한동안 안 썼었다. 시나리오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쉬지 않고 쓰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아예 손을 놓는다. 나에게 두 가지 모습이 있다(웃음). 배우들이 감독님, 시나리오 쓰고 있나요? 라고 물으면 쓰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거짓말을 했다. 지금 쓰고 있는데 마지막 챕터가 잘 안 풀린다면서(웃음). 그러다 촬영하기 보름 전 3일만에 급하게 썼던 시나리오다.
촬영 들어가기 보름 전? 그럼 시나리오 없이 촬영 준비를 진행했다는 건가?
그렇다. 배우도 섭외했고(웃음).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배우들에게는 집에서 밤을 세며 열심히 쓰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촬영 들어가기 보름 전에는 정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때부터 2~3일 안에 썼다.
거의 기사 마감일 맞추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썼다.
나를 강박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웃음). 지인들은 내가 굉장히 게으르면서도 굉장히 부지런하다고 한다.
그런 작업 방식은 혹시 김기덕 감독에게서 배운 건가?(웃음)
어휴, 감독님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웃음). 감독님은 무언가를 뚝딱 만드는 데 재주가 있으시다. 그런데 나는 영감을 찾는 걸 좋아한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시나리오를 아예 안 쓰다.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방에서 8시간 동안 음악을 듣는다. 지금 당장 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데 사람들을 만나 영화 이야기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웃음). 다른 영화도 안 보고 그저 음악만 듣거나 운동을 한다. 뛰다가 순간적으로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 시나리오를 쓴다.
사전제작 기간이 짧은 만큼 현장에서 배우들과의 호흡이 더 중요했을 것 같다.
배우를 괴롭히는 영화를 찍고 싶다(웃음). 배우들이 가진 이미지를 깨고 싶은 욕망이 있다. <아름답다> 때 주인공인 수연도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거식증, 폭식증에 마구 뛰어다녀야 했으니까(웃음). 하지만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풍산개> 같은 경우는 윤계상에게 보이는 액션배우의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윤계상은 정말 훌륭한 배우다. <살인재능>도 배정화와 김범준이 많이 힘들었을 거다(웃음). 뛰고 점프하고 사람을 죽여야 되니까(웃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와 일하는 것이 즐겁다. 나의 광기를 따라올 수 있는 배우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데 이제까지는 그런 배우들과 일할 수 있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살인재능>은 예상만큼 잔인하지 않더라.
관객을 무시할 수 없다. 나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지 않나. <풍산개>를 만들 때 특히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여성 관객이 봐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살인재능>도 여성 관객이 봤을 때 거부감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아름답다> 때도 베드신을 제한적으로 찍었다. 행위 자체를 보여줘서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풍산개>도 수위 조절을 많이 했다. <살인재능>에서도 관객들이 살인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이해하기 바랐지 살인 자체를 고어영화처럼 직접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가 그런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영화 속 사건을 담담하게 봐 줬으면 했다.
<살인재능>은 영상은 거부감이 덜해도 설정 자체가 정서적으로 불편할 수 있는 영화다.
만약 내가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상상을 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살인재능>을 찍을 당시에는 워낙 고민이 많을 때였다.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결혼할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 힘든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백만장자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찍을 수 없다 (웃음).
민수의 꿈을 담은 오프닝 신이 인상 깊다. 영화 중간에 오프닝 신이 다시 한 번 변형되어 보여지는데 그 장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직접 영화를 설명하는 건 재미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돈과 쾌락이 뗄 수 없는 관계 같다.
돈과 쾌락의 관계가 불가분이라는 건가 아니면 삶이 돈, 쾌락과 뗄 수 없는 거라는 건가?
두 가지 모두를 말한다. 우리는 돈과 쾌락을 추구한다. 많은 돈을 갖고 싶고 쾌락적인 삶을 살고 싶다. 돈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쾌락은 정신적인 거다. 우리는 항상 겉으로는 돈과 쾌락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본능적으로는 그것들에 이끌린다. 민수의 꿈 장면은 민수가 항상 돈에 대한 압박감이 있다고 생각해 그의 본능을 꿈으로 표출하고 싶었다.
<살인재능>은 우리사회의 병폐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돋보이지만 결국 민수의 비극을 한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회부시킨 채 마무리된다는 점에서는 아쉬웠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해 볼 생각은 없었나?
아직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지금도 사회를 경험하는 중이다. <살인재능>에서 보여진 것보다 더 큰 사회 문제를 이야기 한다는 건 어린 아이가 아버지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업률, 직장, 돈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한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은 누구나 고민하는 사회 문제일 거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지 않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사회에 대한 경험이 더 많이 생기면 그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외국 생활이 아니더라도 항상 혼자였다는 점이 영향을 준 것 같다. 유치원 때 말을 더듬어 친구가 없었다. 그때부터 항상 혼자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 같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피부 색깔도 다른 동양인 이민자이지 않나. 그 사회에서 또 외톨이였다. 한국에 왔더니 외국에서 온 비영화전공인이라 영화인들 사이에서 다시 외톨이더라. 항상 외톨이 생활을 했다. 어렸을 때 말을 더듬어 입었던 상처가 굉장히 큰데 지금은 독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 같아 감사하다. 남들을 따라가지 않고 내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그때의 외톨이 경험 때문에 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전재홍 그 자체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살인재능>은 영화라는 재능에 대한 당신의 애증이 담긴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럴 수도 있다.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전재홍, 넌 과연 영화감독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 그런데 감독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최면을 걸어야 되는 직업인 것 같다. 전재홍, 넌 재능이 있어. 영화감독으로서 잘 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되새긴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작품을 계속해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삶 자체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 일이 많지 않나. 누구나 직장 생활은 힘들다. 그런 경험이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본인의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 못하고 힘들어 하는 2~30대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래도 영화에 대한 재능을 발견한 건 행운이지 않나.
영화를 29살에 시작했다. 힘들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한다. 결말이 어떻게 되든 현재는 행복하다. 하지만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돈에 대한 걱정, 결혼에 대한 걱정, 가끔씩은 다른 감독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할 때도 있다. 늦게 데뷔해 연출부 막내생활을 많이 하지 않아서 더 궁금하다. 스타 감독님 말고도 많은 감독님이 있는데 그 분들의 생활이 궁금하다.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힘든 여건을 버틸 수 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돈을 위해 이 직업을 선택한 게 아니니까. 그런데 이런 고민이 나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배우 지망생이나 가수 지망생들도 돈을 포기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좇아 달려가고 있다. 난 그중 한 명이다.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지더라.
영화의 규모와 상관없이 한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다. 영화는 혼자서 찍는 게 아니다. 다른 스탭들과 같이 움직여야 되는데 선장이 되어 돗대를 잡는다는 건 영광이다. 난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팀 플레이어다. 배우들도 작은 영화건 큰 영화건 주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주연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 돈을 들여서라도 좋은 배우들과 일하고 싶다.
김범준은 잘 몰랐던 배우인데 <살인재능>에서 눈에 띄더라.
김범준은 나와 거의 10년지기로 조, 단역을 많이 한 친구다. 모든 배우들이 한 번쯤은 주연을 꿈꿀거다. 그런데 범준이가 이제 주연을 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해서 같이 작업하게 됐다. 배정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영화를 같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강인함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살인재능>을 만들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한 지인은 내가 머리에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생각을 잘 못한다고 하더라(웃음). 또 다른 지인은 <살인재능> 제작비로 1년이라도 버텨야되지 않겠냐고 걱정도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1년을 버티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죽더라도 영화를 찍는 게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살인재능>이 잘 돼서 배우들과 여행 한 번 가 보고 싶은 게 다였다. 그런데 이번에 <살인재능>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스탭들과 함께 다녀오니까 정말 여행갔다 온 느낌이더라. 원하는 건 이뤘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재능>을 만들기 전 2013년에 방문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나에게 최악의 기억이었다. 그때 다른 감독들은 열심히 영화를 찍고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빨리 컴백해서 영화를 찍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3일 동안 쓴 시나리오가 <살인재능>이다. 그때 이후 1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 영화를 상영할 수 있어 영광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감독에게 꿈 같은 곳이다. 1년 만에 내 영화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살인재능>이 어떤 영화인지 관객에게 직접 소개한다면?
난 싸이코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살인재능>은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영화가 아닌 현재 우리사회에 대해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관객들과 조금 공유하고 싶어 만든 영화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그래, 사회가 이렇다면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겠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어, 라고 느낄 수 있다면 만족한다. 하지만 마지막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다. 내 영화가 너무 훌륭하니 봐 주세요! 라고 할 수는 없다(웃음). 봐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가 개봉한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평이 좋은 편이라 너무 감사하다. <살인재능>으로 이룰 건 다 이뤘다. <살인재능>을 만들기 전에 영화를 다시 만들어야 되는지 고민했는데 다시 영화를 하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살인재능>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영화를 찍으면 겁부터 났다. 적은 예산인데 이런 식으로 촬영하다가는 내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떨었다(웃음). 그런데 지금은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내 직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이렇게라도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영화,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살인재능>처럼 또다시 돈을 모아 나만의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신인배우와 스탭과 함께 일한다는 건 정말 재미난 경험이다. 나는 영화를 계속해서 찍을 수 있기 위해 영화를 찍는 사람이다. 취미도 없고 영화 밖에 좋아하는 것이 없다(웃음). 영화로 계속 먹고 살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내 자신을 찾아가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한 마디로 영화는 나에게 사회와 같다. 남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아를 찾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부딪히면서 사회를 경험한다.
2015년 7월 29일 수요일 | 글_최정인 기자(jeongin@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