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나온 것 같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 김상진 감독님은 워낙 많은 코미디 작품을 했다. 그래서 감독님을 많이 믿고 의지했다. 대본에 없던 장면들이 갑자기 생기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을 믿고 따랐다.
어떤 장면이 갑자기 생겼나?
비키니 장면. 현장에서 갑자기 생겼다. 모두가 처음엔 의아해 했는데 결과물을 보고 나서야 어떻게 활용되는지 파악했다.
왜 갑자기 추가됐나?
달수의 상상이 확장돼서 만들어졌다. ‘정말로 비키니를 입고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나?’
<쓰리 썸머 나잇>의 출연 계기가 궁금하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재밌는 만화책처럼 읽었다. 그래서 감독님께 하고 싶다고 했다.
많이 배운다. 임원희 선배님이 워낙 코믹물을 많이 했다. 선배님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코믹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많이 잡았다. 임원희 선배님은 대본에 있지 않은 장면들도 준비해오더라. 동욱 형도 연기를 워낙 잘한다. 동욱 형은 절제된 웃음이 있다.
다른 두 캐릭터와 차별화를 둔 지점이 있나?
처음에 세 명이 모였을 때 리허설을 한 번 했는데, 각자 너무 달라서 굳이 캐릭터를 더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웃음).
노출이나 배드 신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손호준이 거기 있는 건 아니니까. 관객들도 해구를 영화의 한 인물로 생각하지, 손호준으로 보진 않을 거다.
우리 사촌 형도 해구처럼 제약회사 영업직이다. 심지어 생김새도 닮았다(웃음). 술자리도 많고 외근도 많다고 들었다. 제약회사 직원을 실감나게 연기하기 위해 참조한 주변인이 있나.
나도 항상 ‘을’로 사는 입장이다(웃음). 내 또래의 친한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다. 꼭 제약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딘가 소속돼 있는 사람들이라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생활, 군대 생활도 작은 사회다. 계급이 낮을 때는 서럽지만 올라 갈수록 밑에 사람도 생기고, 다 비슷비슷하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분들에 대해서는 조사를 못해 봤지만 친구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회사에 갓 입사한 친구들도 굉장히 많고, 보험 일하는 친구도 있다. 보험 일도 영업이기 때문에 친구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해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릎을 꿇는 인물이다.
해구가 허세도 있고, 애인에게 잘 보이려고 부잣집 아들이라고 거짓말도 한다. 그래도 세 인물 중 감정에 가장 솔직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명석이 차가 도난당했을 때도 웃을 수 있는 친구다. 친구가 사고를 당했는데 괜찮냐고 물어보진 못할망정 상황이 너무 웃겨서 웃고 보는 캐릭터. 그래서 무릎도 쉽게 꿇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선 내가 잘못했고, 꿇어야할 때는 꿇는 마인드.
개불 집 여자 유선(이도은)에게도 무릎을 꿇는다.
남자가 무릎을 쉽게 꿇을 수 있는 상황들이 많지는 않다. 그만큼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실성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해구는 항상 허세를 떨면서 거짓말로 여러 상황을 해결하지만, 유선 앞에서는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준다. 무릎을 꿇는 게 가장 진실된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부분이 정말 많지만 비슷한 구석도 있다. 가령, 차가 도난을 당했을 때 웃는 모습이 그렇다. 나도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웃음이 먼저 날 것 같다(웃음). 물론 옆에 친구가 걱정되지만... 어차피 보험 처리는 될 거고, 어떻게 그렇게 차를 털어갈 수 있는지 너무 웃겨서(웃음).
해구가 집착하는 개불과 과도한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는?
왜 해구가 개불을 보고 그러는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이해가 안될 때는 믿는 수밖에 없다. 감독님을 믿고 했다.
해구처럼 일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나.
정말로 그냥 편하게 있고 싶다. 지금은 내일을 걱정하고 내일은 그 다음날 걱정을 한다. 그러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제약된 일들이 많다.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내일 얼굴이 붓고 사진이 잘 안 나올까봐 걱정한다(웃음). 그런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 먹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싶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다. 그럼에도 무대에 서겠다는 마음을 가진 계기가 궁금하다.
교회에서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연극제 행사가 있었다. 아버지가 학생회 부장 집사였는데, 그 해에는 청소년들의 연극을 담당하셨다. 아빠가 담당인데 아들이 안 하면 되겠냐며, 잠깐이라도 나오라고 했다. 출연을 안 하면 용돈을 끊겠다는, 아버지의 자그마한 협박이 있었다(웃음). 그래서 연출을 맡은 누나에게 조그마한 역할을 달라고 했다. 그땐 무대에 올라가는 게 너무 창피했다. 내 역할은 대사 한마디 던지며 지나가는 행인이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연극에서 너무 웃긴 대사였다. 한마디 던지고 나왔는데 관객들이 빵 터지더라. 그 연극이 계기가 됐고, 그 후로 연출하는 누나를 통해 연극의 매력에 점점 더 빠지게 됐다.
배우로서의 첫 희열을 희극에서 느낀 셈이다.
그렇다. 예수님에 관한 내용을 현대를 배경으로 재밌게 각색한 희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년 연극제에서 상도 받았더라.
열아홉, 스무 살 때 전국연극제에서 ‘몽연’이라는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 작품에 출연을 했지, 내가 받은 상은 아니다(웃음).
처음 서울에 올라온 건 극단에 들어가고 싶어서다. 서울의 큰 극단에 들어가려고 올라왔는데,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낙담을 하고 있을 때 윤호가 방송 쪽 매니저를 소개시켜 줬다. 매니저 형하고 같이 다니면서 방송 연기를 준비하느라 그 이후로 연극과 멀어졌다. 방송 일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다.
오디션을 본 극단 이름은?
오태석 선생님이 있는 ‘목화’다. 예전에는 엄청 유명했다. 지방에 있다 보니 극단에 대한 정보에 무지했다. 우연히 비디오 테잎을 하나 봤는데, 오태석 선생님이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연출했는지 그 어린 나이에 감동을 받았다.
나중에 연극 무대에서도 볼 수 있겠다.
생각은 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기가 오면 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뮤지컬은 했다(웃음).
‘응답하라 1994’ 이후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는 분위기에 힘 입어 숟가락을 얹었다(웃음).
예전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 한 이력도 있다.
드라마에서 조그마한 역할을 하던 와중에 기획사 매니저가 제안을 했다. 내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배우는 전문성을 갖고 뭐든 다 잘 할 필요는 없지만 다 할 줄은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그게 맞다 생각했다. 연기를 하면서 언젠가 가수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뭐든 적응을 잘하는 인상이다. 정글과 섬에서의 적응력도 뛰어나더라(웃음).
어떤 환경이든 적응을 잘하는 편이다. 큰 욕심이 없다. 만약 아무것도 없는 환경이면 바라는 게 크게 없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웃음). 적응은 쉽게 하는 편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어렵다. 상대방의 생각과 성향을 파악하기 전까지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나도 상대방으로부터 상처와 불편함을 겪어봤기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다. 아무리 한참 어린 동생이라고 해도 갑자기 말을 놓으면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다.
방송을 많이 하며 성격적으로 변한 부분이 있나?
우선 방송을 많이 하면서 나 자신의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혼자서만 답답하면 상관없는데, 보는 분들도 답답해 하더라. 앞에 있는 선배님이나 친구분, 후배 분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밥 백선생’이 그 변화의 조짐인가.
그렇다. ‘집밥 백선생’을 할 때도 김구라 선배님이 많이 챙겨준다. 대화가 흘러가는 도중에 ‘어, 지금 이런 얘기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해도 선배님의 말을 끊고 들어가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기다리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웃음). 그래서 놓친 이야기가 많은데, 김구라 선배님이 네가 할 말 있으면 바로 바로 얘기해도 된다며 걱정 말라고 하더라. 여하간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줘서 요즘 말이 많이 늘었다(웃음).
그렇다. 한 번도 부모님께 매를 맞아본 적이 없다. 게다가 어머니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무조건 엄마 편이었다. 이건 누가 들어도 엄마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아빠는 무조건 엄마 옆에 섰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를 보면서 나도 빨리 내 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부모님이 알콩달콩 사는 걸 부러워하며 어릴 때부터 일찍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웃음).
아버님이 직업 군인이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아버지가 군인인 걸 알고 놀러 오면 긴장을 많이 했다. 밥 먹을 때도 90도로 숟가락질 하고 그랬다(웃음). 지금은 그때 친구들이 아빠, 엄마라고 부르면서 잘 따른다. 내가 어버이날 때 못 내려가면 대신 찾아 뵙고 부모님과 술도 같이 먹는다. 한 번은 친구들과 아버지가 술을 먹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네가 빨리 아빠에게 얘기 좀 해라, 아빠가 자꾸 비싸고 맛있는 술 먹고 더치페이 하신단다!’ 아버지는 내 친구들과 친구처럼 지내신다(웃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밝은데 방송에서는 어둡다(웃음). 평상시 얘기를 들어보니 본래 성격이 밝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모습이 진짜인가.
방송에 나오는 사람은 손호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은 캐릭터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가 더 편하다. 드라마나 영화 안에서는 내가 어떤 얘기를 했을 때 어떻게든 피드백이 오도록 짜여져 있다. 그래서 오히려 작품에서는 답답함이 해소된다.
코미디 장르가 처음이라고 했지만 ‘응답하라 1994’를 통해 희극적인 캐릭터의 이미지가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캐릭터가 한정될 수도 있다는 답답함은 없는가?
전혀 없다. ‘응답하라 1994’ 이후로 코믹한 캐릭터가 많이 들어왔다. 많은 분들이 해태의 모습을 사랑해줘서 그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은 거라 생각한다. 어떤 역할에 대한 걱정이나 욕심은 없다. 지금 나는 내 자신을 배우, 정확히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신기한 것은 내가 아무리 혼자 배우라고 얘기해봤자 소용 없다는 거다. 배우는 많은 분들이 배우라고 인정을 해 줘야만 비로소 배우가 된다. 지금은 배우로서 인정을 받고 싶은 시기일 뿐, 어떤 역할이냐는 걱정은 없다.
10월 쯤 방영하는 드라마 ‘조이’에서는 아예 다른 캐릭터를 맡았다. 무게가 있고 아픔이 있는 형사 역할이다. 어둠을 담당하고 있고,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친구다.
배우로서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대중 분들에게 배우로 인정 받는 게 첫 번째다. 향후 계획은 인정을 받았을 때! 그때! 생각해볼 것 같다.
롤 모델로 삼는 배우가 있나.
특정 배우가 롤 모델은 아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 배우 분들이 모두 롤 모델이다. 연기를 하다 보면 아역 배우들에게도 배울게 정말 많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진 모든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나는 배우로 인정을 받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누구 한 분을 롤 모델로 삼아 놓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도 그분들과 비슷한 선상에 서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쓰리 썸머 나잇>을 통해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코미디인 만큼 재밌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재밌는 영화로 기억되고 싶다.
2015년 7월 17일 금요일 | 글_안석현 기자(ash@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