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죠. 그동안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캐릭터를 못 만났어요. 드라마에서는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캐릭터를 만났고요. 작년에 ‘굿 닥터’를 끝내고 2014년에는 꼭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사람들과 함께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드는 작업이 그립더라고요. <최종병기 활> 홍보 할 때는 ‘공주의 남자’ 촬영 때문에 일체 참여를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어요. <최종병기 활>이 잘됐음에도 크랭크업 후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못 느껴봤어요. 그래서 영화 작업을 다시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만난 거죠. 하고 싶은 역할, 할 수 있는 역할이 인연이 돼서 저에게 왔어요.
첫 스크린 주연작이라 흥행 부담이 있지는 않나요?
별로 크진 않아요. 타고난 성격이 약간 무덤덤하고 감정 기복이 큰 편은 아니에요. 감사함을 모른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일을 하면서 일희일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반응을 크게 안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시사회 당일에도 긴장이 많이 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필모그래피가 쌓이고 흥행 여부의 결과들이 쌓이면 더 긴장될 것 같아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웃음).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민우씨 오는 날>은 강제규 감독님이 함께 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드라마에서 남자를 지고지순하게 좋아하고 기다리는 제 이미지가 연상이 됐는지 불러주셨어요. 강제규 감독님이 연출을 한다는 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저는 단편이나 독립영화가 들어오는 것 자체가 반가웠어요. 이야기가 재밌고 캐릭터가 좋으면 감독님이 누구건 어디에 출품을 하건 상관없이 하고 싶은데, 오히려 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는 배우들에게는 오지 않는 거죠. 그런데 그런 제안이 와서 반가웠고 강제규 감독님과 인연이 돼서 하게 됐죠.
<오늘의 연애> 들어가기 전 <민우씨 오는 날>로 몸 풀기가 되던가요?
사실 1월은 평소 같으면 너무 쉬고 싶은 달이거든요. 드라마를 11월까지 하고나면 연말 시상식까지는 실질적으로 쉬지 못해요. 인터뷰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1월은 쉬는 타이밍인데 이번에는 별로 쉬고 싶지 않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단편영화가 워밍업하는 의미로 좋다는 말씀들을 했어요. 그런데 <민우씨 오는 날>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반가웠어요. 짧지만 홍콩도 같이 갔고요(웃음).
<오늘의 연애>에서 현우의 방에 걸린 그림이 독특해요.
현우는 야한 옷을 입고 방송에 나와도 개의치 않잖아요. 그런 액자나 전등이 현우의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대사에도 나오잖아요. 사람들에게 적당한 관음이 되는 것도 즐거운 거라고요. 그런데 저는 실제로 그렇지 않거든요.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그런 소품들인 것 같아요.
닮은 지점은 별로 없어요. 승기는 캐릭터와 80% 닮았다고 하는데 저는 20%도 안 닮았어요. 그렇다고 다른 부분을 연기만으로 다 채웠다, 그것도 아니에요. 내면에 극히 미량으로 있는 것들을 증폭시키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현우라는 캐릭터를 만난 거죠.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해가 없는데, 저를 잘 모르는 관객들은 ‘어머, 쟤가 원래 저랬나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웃음).
실제 성격과 닮지 않은 현우가 답답하지는 않던가요?
그래도 초반에는 주사를 부리면서 감정표현도 하고 자유로웠으니까요(웃음). 답답함도 물론 느끼는 지점이 있었죠. 영화 중반부터 동진과 이별하고 가라앉는 분위기는 의도했어요. 그렇게 감정을 주지 않으면 너무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잖아요. 특히 현우는 처음부터 준수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정을 느끼다가 받아들이는 입장이에요. 이런 이야기에 관객들이 공감하려면 현우가 아무리 톡톡 튀는 캐릭터라도 수동적으로 변해야 될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현우가 주체가 돼서 능동적으로 뭔가를 하기에는 현우와 동진의 이별과 만남의 시퀀스가 너무 짧았어요. 만약 드라마라면 많은걸 보여줬겠죠. 동진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더 깊이 보여줬겠지만 영화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감독님과 함께 고민했어요. 매번 사람이 슬프거나 기쁘지만은 않잖아요. 때로는 감정을 눌러줘야 뒤에 웃기는 장면이 나와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사람하고 연애를 정리해야 그 다음 사람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마음에서 떠나보내기 전에 다른 사람이 와서 처음 그 사람을 잊는 과정이 더 비일비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 중반부터 현우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제가 현우에게 넣고 싶었던 감정은 외로움이었어요. 현우가 남자에게 여지를 주는 여자라고 홍보되는데, 잘못하면 밉상이 될 수도 있잖아요(웃음). 연기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호감을 못살까봐 걱정했죠. 현우가 왜 하필 유부남에게 끌리는지, 왜 동성친구는 없고 이성친구에게만 의지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자꾸 읽다보니 시나리오에 다 있더라고요. 홀어머니 밑에서 형제도 없이 자랐고 어릴 때부터 친구 집에서 얹혀살다가 독립한지 얼마 안됐어요. 그런 요소들 때문에 현우가 정이 많이 고프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 마음 놓고 현우를 수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죠.
영화를 촬영하면서 현우를 이해하게 된 것 같네요.
초반에 현우 입장에서 아직 사랑하는 사람은 동진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준수를 받아들이게 될지 몰랐어요. 그런데 자꾸 정의 내리려는 것 자체가 계산적이더라고요.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도 꼭 이 사람이어야 한다며 연애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확신이 없거나 외로워서 연애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요. 초반에 이해가 안됐던 현우나 준수가 영화를 다 촬영하고 나니 이해가됐어요. 돌이켜보니 현우는 외로운 아이, 준수는 뚝심이 있고 좋은 아이였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다른 복잡한 마음은 다 접어두고 엔딩에서 고백을 받은 여자의 행복과 새로 시작하는 설렘을 표현했어요. 현우가 동진 앞에서는 늘 여성스럽게 말하고 현우답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현우가 어느 순간부터 준수 앞에서만큼은 편하다는 것을 깨닫는 설렘이었어요. 만남이란 그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찾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엔딩이 마음에 들어요. 번지점프가 영화의 첫 장면이었어요. 현우가 혼자 번지점프하면서 방송을 하는 설정인데, 그걸 현우가 다시금 자신을 찾는 장면으로 바꿨어요. 저는 그게 시원하더라고요.
상상을 많이 해요. 실제로 없는 일이고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더 많으니까요. 얼추 비슷한 경험을 했어도 드라마는 상황을 심화시키니 저도 제 상상을 극대화하죠. 상상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료들을 많이 봐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어떤 사람이 연상되면 그 모습에서 느낌을 받으려고 해요. 그리고 음악을 많이 들어요. 감정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음악이 좋더라고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테니 양질의 문화를 많이 접하려고 노력해요. 평소 워낙 말이 느리고 중저음이라 사람들이 연기할 때 목소리 톤을 바꾸는 등의 일이 어렵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 부분은 생각보다 크게 어려움이 없어요. 맡은 역할에 심이 있다면 제가 어떤 톤으로 말을 해도 전달이 된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역할에 따라 목소리를 변조했던 경험도 없고요. 다만 심을 만들려고 간접경험을 통해 노력하죠.
캐릭터에 접근하면서 고민도 많고 준비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며칠 전 스무 살에 썼던 일기를 우연히 봤어요. 그맘때 일을 하면서 써놓은 글귀를 보니 제가 정말 간절했구나 싶었어요. 연기를 할 때 학구적으로 접근해요.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연기할 때만큼은 대본을 공부하는 편이에요. 한때는 모든 것을 담쌓고 연기만 했던 적도 있어요. ‘공주의 남자’ 때는 스탭들과 다 함께 호프집에서 마지막 회를 보면서 처음으로 숨다운 숨을 쉬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매 작품을 하면 제가 나동그라질 것 같더라고요. 과정이 힘들어서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너무 벅찼어요. 그래서 일을 좀 더 즐겁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결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통할 때의 힘이 연기하는데 은근히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캐릭터와 만나는 시간이 늦는 편인데,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기를 공부하듯이 생각 안하니 <오늘의 연애>에서는 이전보다 캐릭터와 만나는 시간이 빨랐어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작품들을 참 운 좋게 잘 해온 것 같아요. <오늘의 연애>라는 로맨틱 코미디도 20대에 하게 된 거죠(웃음). 30대보다는 뭔가 풋풋하잖아요. 만약 <오늘의 연애>를 2015년에 찍었다면, 30대가 되어서 연하남과 로맨틱 코미디를 한 소감이 어땠냐고 누군가 짓궂게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웃음). <오늘의 연애>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정점을 찍고 싶었던 해에 만났던 친구 같은 작품이이에요.
<최종병기 활>의 전반적인 모습도 그렇고 특히 <오늘의 연애>에서 번지점프를 할 때는 나는 망가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배우라는 선전포고 같았어요(웃음).
(웃음) 영화는 그런 점이 좋은 것 같아요. 더 큰 화면에서 자세히 등장인물들을 보고 관찰할 수 있어요. <최종병기 활>에서 더럽고 술에 취한 분장 같은 모습들이 그래요. 저는 제가 완성돼서 있는 것보다 어딘가 빈틈이 있는 것이 좋아요. 주변에서도 저는 완성됐을 때 예쁜 사람이 아니래요. 그래서 여러 모습들을 열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바쁘고 꾸준하게 20대를 지나왔어요. 배우로서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요.
똑같아요. 좋은 느낌을 주고 싶다는 것.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 관객들을 웃기고 안 웃기고를 떠나서 우선 좋은 느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다시 보고 싶고 무언가 한다고 했을 때 덜 밉잖아요. 저에게는 그런 점이 배우로서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느낌을 주려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저것 하다 보면 마음에 안들 수도 있고 다른 이야기들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예능프로그램에 나갈 때는 좋은 느낌을 해칠까봐 겁도 많이 나고 조심스러워요. 사람들은 저마다 기호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연기할 때는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 좋은 느낌을 주고 싶어요.
2015년 1월 19일 월요일 | 글_안석현 기자(무비스트)
인터뷰_서정환, 안석현 기자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