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하면서 개봉 성적이 18만 명이 넘은 건 <국제시장>이 처음이에요. 제작비가 100억이 넘거나 상영관이 900개 이상 잡힌 것도 <국제시장>이 처음이고요. 솔직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얼떨떨해요(웃음). 이런 게 큰 영화의 재미인가, 생각도 들어요.
개봉 성적이 좋은 만큼 흥행이 기대될 것 같아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매 작품마다 기대는 했어요(웃음). 각각의 작품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하는 영화잖아요. 어떻게 허투루 날려 보낼 수 있겠어요. 모두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웃음).
부모님도 <국제시장>을 관람했나요?
보셨어요. 그런데 부모님 모두 경상도 분이라 아무런 말씀 없으셨어요. 그분들의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은 지구가 멸망해도 남아있을 거예요(웃음).
<국제시장>은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요. 기존 작품과 비교해서 캐릭터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었나요?
보통은 캐릭터를 분석할 때 인물의 일대기를 생각하면서 접근해요. 대부분의 경우 시나리오는 인물의 현재를 이야기하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서 지금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 유추하면서 캐릭터를 잡아요. 그런데 <국제시장>은 덕수의 20대 모습이 이미 시나리오에 나와 있기 때문에 작품에 접근하는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었어요.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을 한 명의 인간이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국제시장>은 한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영화에요. 영화 속 사건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일들이고요. 그런 사건들을 관통하는 덕수가 특정 인물로 도드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덕수에게 색깔을 입히지 않아야 관객들이 덕수를 통해 순간적으로나마 각자의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이 그런 순간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제가 <국제시장>에 참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덕수는 기존 방식과는 반대로 오히려 철저하게 색깔을 빼서 무채색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죠. 색깔을 입히는 건 쉬운데 색깔을 빼는 작업은 어렵고 힘들어요. 연기를 하다보면 시선이 좁아지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덕수가 영화에서 조금이라도 부각되거나 어딘가 과하다는 느낌이 들면 빨리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래서 제가 물러설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기존 이미지가 있잖아요. 촬영하면서 덕수를 관객들이 잘 모르는 배우가 연기한다면 감동이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항상 작업을 시작할 때 시나리오에 큰 글자로 ‘왜’라고 써요. 왜 내가 이 작품을 이 사람들과 이 시기에 하는지 고민하면서 작업해요. 그리고 그런 이유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하면 얽혀 있던 고리들이 실타래처럼 풀려요. 그러면서 캐릭터를 잡아가는 거죠. 관객들이 덕수를 보고 아주 잠깐이라도 아버지를 떠올려서 감정이 무장해제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는 영화와 같은 배를 타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덕수 캐릭터를 평범하게 잡아서 여러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는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을 때는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관객들이 <국제시장>을 보면서 그런 순간을 느끼는 것이 중요했어요.
설명대로 <국제시장>은 캐릭터의 색깔을 빼야하는 작품이라 캐릭터 표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국제시장>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버지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버지와 관계가 서먹서먹해요(웃음). 서로 말없이 지낸지 꽤 오래 됐거든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저도 아버지가 되니 문득 아버지를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예쁘고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워요. 그래서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는 어떻게 그토록 말 한마디 없이 무뚝뚝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가도 아버지도 분명 내가 내 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예뻐하고 사랑스럽게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이런 감정은 <국제시장> 때문이 아니라 결혼과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느낀 거예요. 굉장히 아이러니하잖아요. 아버지를 늘 큰 산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존경하지만 불편함은 분명 느끼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윤제균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재작년에 감독님이 아버지 이야기라며 같이 작업하자고 해서 선뜻 승낙했어요. 아마 배우가 아닌 인간 황정민으로 살면서 느꼈던 것들이 무의식중에 작용한 것 같아요. 만약 <국제시장>이 아버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부터 읽고 말씀드린다고 했겠죠.
덕수의 20대에서 70대까지의 모습을 연기했는데 어떤 시기를 연기할 때 가장 신경이 쓰였나요?
살아보지 않았으니 70대가 가장 신경 쓰였죠. 70대는 덕수의 현재이기도 하고 <국제시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현재의 덕수는 초라하고 까다로운 70대 노인이잖아요. 덕수가 수많은 상인들의 멸시와 눈치를 받으면서 집안사정의 부담을 이겨내 외골수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아버지와의 약속과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환경 때문이에요. 그런 것들을 1차원 적으로 생각했어요. 우선 내가 덕수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느껴야 했어요. 덕수라는 인물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확장됐을 때는 2차적으로 노인 시절의 덕수를 어떤 식으로 디테일하게 표현할지 고민했어요. 30대에 다리를 다쳤으니 40년이 지난 70대에는 덕수가 절뚝이기는 해도 처음 다쳤을 때와는 분명히 걸음걸이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친 다리도 이제는 익숙해져 있을 테니까요. 그런 디테일들을 살리면서 연기했어요. 어쨌든 70대가 가장 중요한 시퀀스였어요. 70대 덕수의 모습을 정확히 뿌리내리지 못하면 2~30대의 덕수 인생이 허용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너무 어려웠어요. 감독님에게 <국제시장>은 공포영화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어요(웃음). 만일 감정을 수치로 환산한다면 공포는 온전히 100이라 나누기가 힘드니까요. 소리를 지르거나 놀랄 때 10만큼의 공포만 느꼈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감정이 계속해서 100으로 일직선처럼 연결되면 이야기가 재미없거든요. 그래서 공포영화는 처음에는 무섭지만 나중에는 소리만 지르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간혹 생기는 것 같아요. 평소 공포영화는 정말 힘들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는데 <국제시장>에서 감정의 굴곡변화가 거의 공포영화 같은 거예요(웃음). 100이라는 감정이 계속해서 반복되잖아요.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하고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죠. 대본을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쑥쑥 넘어갔는데 막상 촬영하니 감정의 굴곡이 느껴지지 않을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이더라고요.
다양한 연령층을 연기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텐데요.
한 가지 믿음을 갖고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덕수의 20대, 30대, 40대가 시나리오에 분명하게 나와 있었기 때문이에요. 분장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연기하는 톤에 변화를 주면서 표현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눈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덕수가 20대일 때의 눈과, 40대일 때의 눈과, 70대일 때의 눈은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스스로 제 눈을 보면서 연기할 수는 없으니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지만요. 하지만 제가 인물을 연구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덕수의 눈빛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독일에서 첫 촬영을 마치고 감독님에게 내가 감정적으로 직접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없으니 알아서 편집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덕수를 영화적으로 잘 제어해 달라고 했어요.
독일에서 크랭크인 한 건가요?
체코에서 촬영한 독일 장면이 가장 먼저 촬영한 장면이에요. 그 장면을 촬영하고 덕수 연기를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촬영 전에도 감독님과 수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첫 촬영이 끝나자 이야기의 모든 것들이 눈에 확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테스트 촬영할 때나 의상을 입을 때 드는 경우가 있고 촬영하면서도 계속 안 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어떨 때는 일주일이 지나도 안 들어올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히말라야> 같은 경우는 촬영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뭔가 너무 복잡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느낌이 어느 순간 확 들어올 때가 있어요. 시나리오를 수없이 읽어도 그때서야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는 거죠.
그런 순간이 오면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이 좋겠어요.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이걸 놓치고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안도감이죠.
전체적인 맥락을 잡는 감독을 많이 믿고 갈 수 밖에 없는 영화였겠어요.
감독뿐만 아니라 촬영감독, 미술감독 모두 중요하죠. <국제시장> 스탭들은 모두 아는 스탭들이라 조금 더 편했던 면은 있어요. 특히 촬영감독은 <베테랑>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 여러 작품을 같이 작업해서 잘 알고 있는 사이였어요.
그 장면은 용두산 공원에서 찍었어요. 모든 상황을 알지만 본인 뜻대로 살 수 없는 게 덕수잖아요. 덕수도 당연히 본인의 삶을 너무 살고 싶죠(웃음). 그런데 그럴 수가 없으니 안타깝고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던 거예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울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했어요. 옆에서 김윤진이 계속 울면서 연기하는데 아무리 안 울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치게 되더라고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연기했어요.
배우들과의 호흡이 좋아 보여요.
김윤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개인적으로 김윤진이라는 배우에게 고마움이 커요. <국제시장>은 따지고 보면 덕수의 영화인데 김윤진이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 같았고요. 좋은 작품을 할 때는 비중을 떠나 어떤 역할이든 차이가 없어요. 역할의 크기보다는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역할은 이야기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거잖아요. 너무 재밌고 좋은 영화를 보면 주인공도 좋지만 단역들도 다 예뻐 보이고 좋아 보여요. 지나가는 사람으로라도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영화들이 있어요. 그래서 김윤진이 <국제시장>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고마웠어요. <쉬리>에서 저는 단역이었어요. 김윤진은 최고의 스타였고요(웃음). 그런 배우와 함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설레고 영광이었어요. 제가 매우 좋아하는 배우거든요.
김윤진과는 <쉬리> 때부터 친분이 있었나요?
아니요, 몰랐어요. 김윤진은 제가 <쉬리>에 출연한 것도 몰라요. <국제시장> 촬영이 끝날 때까지 제가 이야기를 안했거든요. 지방으로 무대 인사를 하러 다닐 때 김윤진에게 그 이야기를 했죠. 미국식 억양이 섞인 말투로 ‘허? 정말?’ 이러면서 놀라더라고요(웃음).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겠어요.
많이 친해졌죠. 작업하면서 동료들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주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어요. 예를 들어 제가 1을 가지고 연기했을 때 상대방이 2, 3, 4의 연기를 해주면 나도 모르게 4, 5, 6이 나오거든요. 느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게 있어요(웃음). 오달수형과는 워낙 친해요. 달수형이 양반이에요. 평소에는 말도 없이 조용하고 말을 들어주기만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희한하게 카메라만 돌아가면 그렇게 웃기게 변하더라고요. 저와는 성격이 반대에요. 저는 수다도 많이 떨고 성격도 급한 편인데 형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잘 맞는 것 같아요. <베테랑>에도 함께 출연했어요.
10대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냈어요(웃음). 예고에 가면서 연극을 알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어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때 비로소 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예술사와 미학을 조금씩 배우면서 집에 먼지가 쌓여있던 고전 문학들도 그제야 읽기 시작했어요. 마치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였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것 같아요. 그 힘으로 지금까지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아요.
2~30대는 어땠나요?
20대도 아무 생각 없이 지냈죠(웃음). 군대 갔다 오고 연극하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그러다 오디션을 통해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처음 영화에 발을 들였어요. 그래서 30대에는 정말 미친 듯이 연기만 한 것 같아요. 연기 잘해야 된다, 이게 기회다, 내 인생의 한 방은 이거다, 이런 일념으로 10년을 버텼어요. 그래서 제 자신을 굉장히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지치게 되더라고요. 한 발짝 물러나서 스스로를 돌아보니 열심히 하고 있지만 즐기지는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즐겨보자, 라는 마음으로 40대를 시작했어요.
40대는 충분히 즐기고 있는 중인가요?
40대가 굉장히 재밌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단적인 예로 30대에는 관계자 이외의 사람은 불편해서 절대 현장에 못 나오게 했어요. 연기에만 집중해야 됐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집사람, 아버지, 어머니, 모두 가끔씩 보러 와요(웃음). 물론 30대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즐기는 기분을 몰랐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어깨의 벽돌들을 조금 내려놓고 모든 작품과 인물들을 대하다보니 오히려 인물을 대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관객들도 제가 연기하는 인물을 받아들이기가 조금 더 편해진 것 같고요. 30대에는 어딘가 쪼들려 있는 느낌이었는데 40대에는 연기가 좋고 재밌어요(웃음).
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