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다른 이유라기보다 간단해요. 하려고 하던 작품이 있었어요.
<26년>?
그 전에 멜로가 있었어요. 10개월 정도 기다렸어요. 잘 안됐고, 그러고 나서 <26년>을 선택했고 8~9개월이 지났어요. 한 작품은 아예 제작에 못 들어갔고, 한 작품은 인연이 안 되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훅 지나가더라고요. 그때는 많이 괴로웠죠. 사람들은 <미녀는 괴로워> 한 작품으로 너무 안주하는 거 아니냐, 광고로만 이미지로 소비하는 거 아니냐, 생각이 많아서 작품을 선택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 이야기들이 많았죠.
2년 동안 두 작품이 불발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네요.
생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 너무 목매고 기다렸던 것 같아요.
<미녀는 괴로워>로 한창 주가가 올랐고 그 기대치에 비하면 이후 출연한 작품수가 많지 않다보니 세간에 여러 이야기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영화가 가장 하고 싶었죠.
오랜만에 <나의 PS 파트너>를 작업해보니 어떻던가요?
오랜만에 하다 보니 긴장도 많이 했고요, 좀 예민해지기도 했어요. 촬영하면서 한 컷 한 컷 잘하고 싶었고, 개봉 앞두고는 걱정도 많이 됐고요. 손익분기점을 넘겨서 안도했어요(웃음). 완성되고 나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었고, 개인 성격도 그렇고 배우로서도 그렇고 많이 편해졌어요. 그동안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나봐요. 너무 오래간만에 영화로 인사를 드리는 거였으니까요.
영화에서는 너무 로맨틱 코미디 장르만 선택하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크게 신경을 안 썼거든요. 같은 장르지만 이야기나 캐릭터가 너무 다르고, 톤 앤 매너도 너무 달라서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 할 수만 있으면 나이 들어서도 하고 싶고요. 사실 다른 장르를 하는 게 연기 변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작품 자체에 목적을 두면 제가 잘 쓰일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걱정은 안 하고 했어요.
로맨틱 코미디는 보통 초반에 남녀 주인공 캐릭터 설명이 전면으로 다 드러난 다음 러브스토리가 진행되잖아요. <캐치미>는 남자 주인공 시점으로 극의 전개에 따라 점차 하나씩 베일이 벗겨지듯이 여자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나더라고요. 그러면서 오히려 러브스토리를 방해하는, 감정에 딜레마가 생기고 긴장도 불어넣는 그런 진행이 매력적이고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또 감독님의 재기발랄한 유머가 전반에 흐르고 있고, 첫사랑의 기억에 허덕이면서 어수룩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도 사랑스러웠어요. 이런 저런 것들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이유였던 것 같아요.
진숙 캐릭터 설정에서는 어떤 면에 중점을 뒀나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주원씨와 이런 얘기를 했어요. ‘관객의 감정을 끌어당기고 공감을 얻는 캐릭터는 너인 것 같아. 나는 너를 자극시키려고 노력할 테니 너는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가고 설득하기위해 노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서 내 연기에 대해서 리액션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 개인적으로 연기할 때는 진숙의 설정이 세서 너무 만화적으로 연기하면 안 되겠다, 설정이 세니까 오히려 연기는 편안하게 해야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건 전설의 대도, 트러블메이커임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이 원하는 첫사랑 이미지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런 것들이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 워낙 반대되는 이미지니까요.
감독님이 원하는 첫사랑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나요?
친절하고 여성스럽고, 특히 과거의 진숙은 긴 생머리에 하얀 옷을 주로 입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느낌? (웃음)
로망처럼 생각하는 첫사랑의 이미지일 뿐 실제 첫사랑의 이미지는 안 그렇죠(웃음).
아, 그래요?
지나고 나서 포장하는 거죠. 그때 느낌에 내 첫사랑은 마치 김아중 같은 여자였어(웃음), 그런 이미지를 덧씌우는 거죠. 실제 데려다 앉혀놓으면 첫사랑이나 두 번째 사랑이나 세 번째 사랑이나 별다를 건 없어요. 애틋함, 그런 감정적인 것들이 있긴 하지만요. 영화적 설정에 가깝게 그런 이미지들을 강조한 것 같아요.
제스처나 행동이 강해진다거나 그러면 감독님이 NG를 외치셨던 것 같아요. 감독님 마음에는 첫사랑 이미지가 강력하게 있더라고요.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 모든 남자 스탭들이 그 이미지에 다 동의가 되던걸요(웃음).
여자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남자들의 첫사랑 이미지가 동의되는 부분이 있나요? 아니면 연기하면서 거북하던가요?
왜 남자들 첫사랑은 죄다 이렇지, 왜 털털하고 생활력 강하고 혼자서도 세상에 우뚝 설 것 같은 여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거지, 뭐 그런 느낌? (웃음) 그런데 여자들한테도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청바지나 면바지에 단화 신고 체크남방 입고 그런 첫사랑 오빠 같은 이미지 있잖아요. 교회에 다니고(웃음). 남자나 여자나 다 그런 것 같아요.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사진기자를 가리키며) 실제 교회 오빠는 이런 느낌인데.
(일동 폭소)
명확하게 남자들의 로망 역할은 처음이에요.
그런 역할이 아니어도 로망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해서 그럴까요?
예를 들어 좋은 몸매로 섹시한 이미지가 부각될 때는 선이 굵고 도도할 것 같았는데,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차분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도 보이니까 여러 가지 매력으로 다가와 남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아요.
보기와 다르게 소심하죠(웃음).
첫사랑의 로망을 보여줘야 하는 과거, 베일에 싸여 어떤 모습이 튀어나올지 예측 불가한 현재, 그 차이들은 어떻게 잡아갔나요.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어야 하잖아요.
캐릭터의 성장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되도록 어떤 일관성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편집됐지만, 과거에도 미술관에서 그림 가격만 꼬치꼬치 물어보는 그런 장면들이 있었어요.
코믹한 연기에서 능청스럽게 툭툭 던지는 게, 과도한 코믹 설정이 아닌데도 완숙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요. 이제는 연기도 즐기면서 하고, 적절한 타이밍도 알고 그렇게 되지 않았나요?
모르겠어요. 이때쯤이면 이렇게 해야지, 그런 계산은 없어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할 때 유독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거나, 현장에서 춤을 추고 다녀요. 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기분을 많이 업시키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이제는 로맨틱 코미디 연기가 쉽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냥 그런 생각은 하는 것 같아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너무 생각하다보면 장르적인 연기를 펼치려하고, 연기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고, 때로는 그 안에 갇힐 수도 있기 때문에 장르를 인식하지 않고 연기하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30대에 접어들고, 연기나 삶에 있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마음이 점점 편해지는 것 같아요. 작품을 할 때 긴장하고 준비한대로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생기는 것들을 연기에 더 담으려 노력하고, 마음을 더 열어놓는 것 같아요.
부담감이 전보다 많이 사라졌나보네요.
그런 것 같아요. <나의 PS 파트너> 끝나고 부담감이 확실히 없어지고, 소소하게 기쁨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나쁜 점들을 고쳐서 전작보다 연기가 조금 괜찮아졌다거나, 이번에는 최소한 이런 것들을 해봤다, 예를 들어 <캐치미>에서는 연하 배우와 호흡을 맞춰봤다, 이런 것들 있잖아요(웃음). 작은 것들에 의미를 두면서 즐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좀 편해졌고요. 사람들 만나는 것도 더 편해지는 것 같아요. 전에는 많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26살에 열심히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관심이 집중될지 몰랐을 때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아서 허둥지둥 댔던 것 같아요.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먹어도 되는데 그러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좋았을 때 마음껏 누리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안 그런 것 같아요.
제가요? 어, 나 왜 그랬지? 왜요?
본인은 그렇지 않다면서요(웃음).
정말요? (웃음)
당혹스러웠죠(웃음). 동시에 이런 내면의 소유자구나, 다시 보게 된 계기도 됐고요.
그때 워낙 여러 가지 힘들었던 것들이 많았어요. 작품은 잘됐는데 소속사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것들이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터뷰 기사 제목도 ‘착한 배우, 섬세한 배우’ 뭐 이렇게 뽑았던 기억이(웃음).
(웃음) 정말요? ‘욕망 아중’인데(웃음). 욕심 많죠.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작품을 하나둘씩 해나가면서 필모그래피가 쌓이든 시간이 쌓이든 그만큼 더 나아지려는 욕심? 그런 것들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좀 전에 이야기한 부담감 중에 그런 것들도 있었나요? 대중이나 영화, 방송 관계자들이 김아중에게 기대하는 모습, 이미지들을 충족시켜야한다는 부담감.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서 칭찬도 많이 듣고 잘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경력이 많은 배우가 아니다보니 다음 작품에서 이만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다음 작품에서 연기적으로 실망을 시키면 혹시 나에 대한 실망감이 두 배로 커지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은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자신도 위축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미녀는 괴로워>는 영화도 재밌고, 연출도 좋고, 연기도 잘했고, 노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섹시한 이미지도 부각됐고, 어떤 한 가지가 충족돼서 반응이 일어난 건 아니잖아요. 많은 것들을 동시에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에 반응도 컸던 건데, 그런 작품을 또 만나기가 쉽지 않다보니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오로지 연기로 관심을 받았거나, 외적 이미지만으로 집중을 받거나 했다면 그 부분을 더 개발하고 활용하면 될 텐데, 복합적으로 여러 가지가 작용한 거였으니까요.
<미녀는 괴로워>의 캐릭터, 노래, 연예인이나 성형이라는 소재, 폰섹스 신도 그렇고 다른 작품들이 그중에 하나는 꼭 겹쳐요(웃음). 무엇 하나 완전하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통 멜로를 선택하고 1년을 기다렸는데, 안됐죠(웃음).
‘그저 바라보다가’도 그렇고 ‘싸인’도 그렇고 운 좋게 드라마에서 좋은 작품을 만났는데 연기적으로 아쉬워요. 다음에 어떤 작품이건 연기로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보다 환경적으로 촉박한 시간에 많은 양을 연기해야 하는데 드라마 경험은 적다보니 스스로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저 바라보다가’는 캐릭터 자체가 대중들이 원하는 김아중의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온 작품이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싸인’은 장르도 그렇고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나쁘지는 않았어요.
사실 연기는 그렇게 잘하지 않았어요. 장르가 다르니까 신선하게 봐주신 것뿐이죠.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웃음). <캐치미>를 작업하며 배우로서 얻은 것이 있다면요.
현장인 것 같아요. 현장감. 작품 간의 텀을 오래두지 않고 계속 현장에서 지내는 게 익숙하게 몸을 만들어야하는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좋은 현장이었어요. 또 연하 배우랑 하면서 상대 연기를 좀 더 관찰하게 됐어요. 혹시 나도 모르게 내가 요만큼 더 많이 안다고 그만큼 잔소리하게 될까봐 걱정했어요. 그래서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내가 노력해서 같이 맞춰가야겠다는 생각이 컸고요. 물론 주원씨도 묵묵히 저에게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선배님들과 연기할 때는 앙상블이 맞거나 말거나 내 맘대로 하면 선배님들이 알아서 맞춰주는 그런 것들이 있거든요. 맘 놓고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이번에는 서로 맞추려는 배려나 서로 바라보는 것들을 스스로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늘 작품 하는 것 자체로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현장에서 소통해나가는지, 그런 것들을 배운 것 같아요.
앞으로 활동 계획이 궁금하네요. 차기작은 결정된 게 있나요?
보고 있는 작품들이 좀 있고요, 정확하게 계약을 한 건 아닌데 영화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하반기에는 드라마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아직 작품이 없고요(웃음).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아니고 신인 감독이 아닌 기존 감독님들과도 맞춰보고 싶어서 그런 것들을 중점으로 보고 있어요.
배우로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다면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관객들과 점점 관계가 쌓여갔으면 좋겠어요. 믿고 보는 배우. 신뢰가 쌓여서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