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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마요 <보석비빔밥> <고사 2> 최아진
고사 2 |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새침할 줄 알았다. 당찰 것이란 생각도 했다. <보석비빔밥>의 끝순이처럼 목소리 크고, 당돌하고, 통통 튀는 말괄량이 아가씨일 거라 짐작했다.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음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리여리한 체구와 그에 어울리는 조근 조근한 말투, 순정만화에서 톡 떼어 온 듯한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최아진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배우였다. 질문 하나하나를 임금님 어명 받들듯 진지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묻어났고, “혼자 살다보니 알뜰해 져서 물건 살 때 미친 듯이 깎기도 한다”는 생활담 속에서는 일찍이 세상에 뛰어든 이의 어른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눈시울을 붉히다가, 볼에 빨간 봉숭아물을 들이다가, 화들짝 놀라다가, 손사래를 치다가, ‘호호호’ 웃는 이 모든 액션이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인터뷰 동안 그녀 안에서 나왔다. 결코 지루할 수 없는 인터뷰였다.

이미영이 아닌, 최아진으로

최아진이 이미영이었을 때, 그러니까 그녀가 대구에 사는 평범한 여고생이었을 때, 미니홈피에 올린 사진을 본 연예 기획사로부터 “TV에 출연시켜 줄 테니 서울로 오라”는 깜짝 연락을 받았다. 눈 뜨고도 코 베어 가는 곳이 서울이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반대했다. 사람 잘 믿는 소녀를 “사기 당할 위험 1순위”로 지목해 온 친구들도 “사기일 거”라며 겁을 줬다. 하지만 소녀는 잃을 게 없었다. 아니, 발도 담궈 보기 전에 체념하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연기자에 대한 열망이 너무도 컸다. 결국 소녀는 서울에 혈혈단신으로 상경했다. 그 때 나이 17세. 이미영이 아닌, 연기자 최아진으로의 시작이었다.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트레이닝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드라마 <나도 잘 모르지만>에 캐스팅 됐다. 훗날 <꽃보다 남자>로 대한민국 모든 누나들의 로망이 된 이민호와 함께였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일이 터졌다. 최아진을 아이스크림 CF에 출연한 아역 모델 최아라(본명 최아진)로 착각한 언론이 ‘아이스크림 케이크 소녀 최아진, 드라마로 복귀’라는 오보 기사를 낸 것이다. “고향 친구들의 전화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그녀는 웬만한 인기 배우도 하기 힘들다는 “네이버 검색 순위 1위”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때 아닌 주목이 부담되고, 본의 아니게 최아라 양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데뷔전에서 이런 주목을 받았으니, “한편으로는 굉장히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걸음은 빨랐다. TV에 출연하기 무섭게, 장편영화 <가벼운 잠>의 주인공으로 스크린 데뷔전도 치렀다.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고 “능력이 없는 나를 감독님이 잘 봐 주신 것 같다”고 수줍게 말하다가도 “오디션이 4차까지 있었는데, 되게 치열했어요”를 살짝 섞는 화술에서, 겸손함 속에 자신감을 녹여내는 밉지 않은 영리함이 포착됐다. “책에서 봤는데, 눈물이 없는 기쁨은 진짜 기쁨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의 첫 영화가 상영되는 시사회장에서 최아진은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진정한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쁨의 눈물은 이내 말랐다. <내사랑 금지옥엽> 이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오디션에서 줄줄이 낙방했고, 동시에 생활고가 밀려왔다.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틈틈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PC방, 호텔 뷔페, 패스트푸드 점, 식당, 편의점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혼자의 힘으로 세상과 마주한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반년. 고향으로의 낙향을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도전한 게, 바로 <보석비빔밥>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에 일찍 사회에 나온 거잖아요? 혼자서 생활하니까 힘든 게 있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일찍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끝순이처럼 살았을지 모르잖아요.”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여리게 떨리는 음성에서 진심이 반짝 빛난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자!
“<보석비빔밥>은 너무 고마운 작품이에요. 저를 사람들에게 알려줬고, 서울에서 버틸 수 있는 생활비를 마련해 줬고, 다음 작품으로도 이어질 수 있게 해 줬죠.” 최아진이라는 이름대신 ‘끝순이’로 불리고, ‘아이스크림 소녀’로 오해 받는 게 서운하기도 하련만, 이 순둥이 같은 숙녀는 “최아진은 몰라도 끝순이는 기억하듯이 다음 작품에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나이 많은 분들이 들으면 건방져 보일 수 있는데, 빨리 삼십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외모나 말투 때문에 아직 어린 역할밖에 못하고 있거든요.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도 서른쯤에는 그렇게 연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멋진 삼십대를 위해 최아진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배우이기 때문에 평범한 대학 생활을 못할 수도 있다고 살짝 겁을 주자, “그런 걸 보면, 톱클래스 배우들은 정말 외로울 것 같아요”라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러고는 이내 “그런데 그 분들은 남자 친구를 어떻게 사겨요?”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다들 은밀하게 알아서 사귀니 몰래 만나라고 조언해 주자, 마음은 벌써 미래의 남자친구에게 가 있는지 눈에 반달을 그리며 배시시 웃는다. 이 무공해 소녀의 순수함과 열정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10년 후의 최아진이 지금의 최아진에게 보내는 한마디를 부탁했다. “아진아, 지금까지 어떻게 잘 버텨왔구나. 아직 끝이 아닌 거 알지? 끝이라고 생각할 때 네 인생도 끝나는 거야. 끝까지, 죽을 때까지 연기하자!” 언젠가 힘든 순간이 올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지금 이 순간의 각오를 다시 꺼내 보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말기를.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51 )
cyddream
최아진... 언제나 기대되는 배우 입니다......   
2010-05-20 19:23
loop1434
기대   
2010-05-20 19:12
700won
올챙이 적을 잊지 않길~   
2010-05-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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