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무라카미 류를 좋아한다’라고 사석에서 밝히기 시작한 건 최근 들어서다. 책 좀 읽는다 하는 대학생들이나 조숙한 척 하는 고등학생들이 모두들 ‘무라카미 하루키’만을 외쳐 댈 때, ‘난 하루키 정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다 읽었다’고 잰 척 하던 건방진 학생이었기에 스무살 시절 책 제목부터 해맑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우연히 읽고 ‘무라카미 류=변태 작가’라는 공식만 기억하고 있었다. 밤이고 낮이고 고대하는 하루키는 한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잊을만하면 방한하는 류의 소식을 들으며 다시 읽게 된 그의 소설과 에세이는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의 에너지 넘치는 문체에 흠뻑 빠져 그의 한국방문만 학수 고대 하고 있었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이번 방문은 무라카미 류가 메이져 영화사의 제작 방식에 불만을 품고 사제를 털어 제작한 <도쿄 데카당스> 때문이다. 성적으로 개방된 일본에서도 개봉하기가 힘들었던 문제작을 13년 만에 본다는 일념 하에 디빅으로 나돌고 있는 자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터라 6번의 심의 끝에 개봉이 확정되고 무라카미 류의 방한이 결정되고 나서는 직업적인 의식을 앞세워 심도 있고 수준 있는 질문을 준비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개봉한다 안 한다고 말이 많았던 류의 스케줄은 다 차있었고, 정작 개별 인터뷰는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날 이메일 인터뷰로 진행 되었다. 한 템포 쉬고 진행된 인터뷰지는 한껏 무게를 빼고 편한 마음으로 사심이 들어간 질문지로 바뀌었다. 그렇게 ‘기자’가 아닌 한 사람의 ‘팬’으로서 던진 소소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작성했다는 말과 함께 이틀 뒤 도착했다. 무라카미 류가 인생의 선배로서 던진 화끈한 인생 조언이 담겨있는 인터뷰를 공개한다.
단편집[토파즈]를 쓰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입니다. 당시, 일본은 2번의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고도 성장 단계로부터 성숙화 단계를 향하는,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순조로운 경제의 발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에즈라 보우겔의 [JAPAN AS NO.1]이라는 책이 당시의 일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시대가 아주 싫습니다. 극적인 변화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이대로 일본적인 사회 시스템이나 가치관이 계속되어갈지도 모른다는 패 쇄감이 있었고, [토파즈]의 단편은 그러한 짜증 속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 지상주의'라든가, '배금주의'라고 하는 상식적인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저는 일본 사회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 변화가 없는 사회에의 짜증, 그리고 일종의 포기와, 그리고 새로운 시대 상황에의 대응과 서바이벌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사회는 계속해서 성숙해나가면서, 이런저런 페이스로 퇴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퇴폐의 정 중심에서, 국가적인 희망이 아니라, 개인적인 희망을 '무 자각으로' (자각하지 않은 채) 찾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들은 고독하고, SM 콜걸이라고 하는 반윤리적인 방법으로 생활의 양식을 얻고 있으나, 자립의 길을 무 자각으로 모색하며, 억압된 사회적인 규율로부터 자유로 울려고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좀더 그녀들 편에 서려고 하였습니다. 단편집 '토파즈'로부터 4편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식으로 해서, 우선 각본을 썼습니다.
2. 아시다시피 ‘작가’라는 이미지보다 ‘엔터테이너’라는 이미지가 강한 게 사실입니다. 공통분모로 묶이기 보다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또 그 부분에 해설자로 나서기도 하시고 낯을 가리는 성향이 있는 소설가들과는 달리 CF도 하셨는데요, 그런 경험들이 소설이나 에세이로 거듭날 때 플러스적인 요소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장단 점이 있는지, 또 그런 일들 중에서 여전히 ‘소설가’의 의미는 어떤지 알려주세요.
쿠바음악의 프로듀서나, JMM이라는 메일 매거진의 편집 발행, 거기에다 매일 매일 생활하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소설의 씨앗(소재)이나 힌트를 얻고 있습니다. 소설을 쓸 때에는 , 집필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소설가로 있는 의미를 말한다면, 내게 있어서의 소설은,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와 가족의 생활을 지탱해주고, 리플레쉬(refresh) 나 국내, 국외의 여행 비용을 생성하며, 그리고 프라이드를 지켜주며, 충실감과 성취감을 전해줍니다.
3. 한국 기자 회견 때 <도쿄 데카당스>는 ‘메이져 영화사에 맞지 않은 부분에서 과감히 탈피 사제를 들여 카메라를 구입하고 젊은 스텝들을 구성으로 영화화 한 작품’ 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당시 제작 환경에서도 무척이나 참신한 제작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스템에서 이 영화를 찍을 때 즐거웠던 점과 생각보다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영화 '토파즈'의 촬영은 모두 무척이나 어려웠으나, 스릴만점에다가 심장을 춤추게 하였습니다. 적은 인원의 젊은 촬영 스텝들을 편성하여, 슈퍼 16m/m 카메라 2대를 샀습니다. 예전에 '소설은 다시 고쳐 쓰는 것이 가능하지만, 영화는 다시 찍을 수 없다'라는 얘기를 어느 영화감독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찍을 수 있는 그런 촬영 시스템을 채용하고, 스스로 카메라를 산 것입니다. 단지, 신중히 퇴고한 각본을 쓰고, 배우들과 카메라 스텝을 위하여 몇 번이고 리허설을 하며, 스토리 보드를 그리고, 엄밀하게 로케 장소를 선택하여, 용이 주도하게 준비에 신경 썼기 때문에, 다시 찍는 일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4.배우들의 캐스팅 과정을 알려주세요. 꽤 많은 지원자들이 몰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소설의 소재를 봐서는 무척 도전적인 역할과 배역이었는데 극 중 ‘아이’와 ‘스도 부인’, ‘점술사’ 역을 캐스팅할 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그 세 명의 존재가 영화상으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의상이나 역할 자체가^^)
프로로써의 경험이 적은 젊은 촬영 스탭을 채용함과 더불어, 배우도 일본의 영화계 밖에서 선택하였습니다. 작가인 시마다 마사히코(아이에게 주사를 놓았던 오페라를 부르는 변태남), 국제적인 화가 쿠사마 야요이(점쟁이), 유명 사진가인 카노 텐메이(야쿠자 이시오카), 가수인 미카미 칸(후지산 남자)과 세마 치에(스도 부인:오페라여자), 그리고 주역에는 완전히 무명인 신인 니카이도 미호를 기용했습니다. 사키역의 아마노 사요꼬는 SM계에서 유명한 진짜 '여왕님'입니다. 저는 기성 일본영화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스크린에 등장시키고 싶었습니다.
5. 무엇보다 마지막 아이가 수화를 하고 나서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정말로 ‘댄서’ 출신답게 잘 추더군요. 마지막 장면의 의미가 어떤 건지 한국 관객들에게 설명해 주신다면?마지막 장면은 모든 촬영과 편집이 끝난 후, 문득 떠올라 추가 촬영한 것입니다. 아이가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에서 수화의 연기를 한 후에 춤을 춘다, 라는 설정입니다. 그 씬으로, 아이의 변화를 명확하게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벌써 끝났다고 생각하여, 그 장면을 보지 않은 사람이 꽤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6. 당신은 미식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때 자주 가는 게장 집을 들리셨는지요? 또 이번 한국 방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게장을 먹으러 갔었습니다. 역시 맛있었습니다. 한국의 미디어와의 인터뷰가 가장 자극적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미디어와의 문답은 무척 흥미 깊은 것입니다.
7. 어렸을 때 히피문화와 록음악을 들으며 프리(free)한 정신세계를 탐독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버라이어티 한 삶을 살게 될 거란 생각을 하셨는지? 왠지 일본 학생들은 학원입시와 명문 학교에 대한 열망이 남달라(한국도 마찬가지 지만)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는 느낌이 강한데 무라카미 류씨는 엄격한 교사를 부모로 두셨지만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하신 것 같다. 학창 시절을 얘기해주신다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나요?
그것은 길고 긴 이야기입니다. 즐겁고 원했던 인생을 보냈다기 보다는, 싫어하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는 자세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8. 쿠바음악에 대한 당신의 애정은 숨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쿠바음악에 매료된 이유와 여러 음악장르 중 쿠바음악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려주세요.
이것 역시 길고 긴 이야기가 됩니다. 언제가는, 쿠바의 トップオルケスタ(쿠바 최고의 밴드들을 일컫는 말)의 공연을 한국에서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9. 한국 팬들은 무라카미씨의 작품에 열광하는 부류와 성향차이를 들어 기피하는 부류로 정확하게 둘로 나뉩니다. 사실 저도 스무 살 때 처음 무라카미 류의 작품(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읽고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계속 외면하다 음식에 대한 글을 적어놓은 (달콤한 악마가 내게 들어왔다) 발랄한 문제가 돋보이는 (69)를 읽고 다시 좋아하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될 독자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특별히 독자나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없습니다만, 마음을 오픈하여, 여태까지의 상식이나 기성개념을 벗어버리고, 나의 작품에 접해주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0. 무라카미 씨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다 하고야 마는 인생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바로 그 점이 한국 관객과 독자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인생선배로 한국 팬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50이 넘은 작가의 조언같은 건 필요없다, 라는 느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여 취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