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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연애행각] 위대해서 허망한 순애보! <위대한 개츠비>
2013년 6월 4일 화요일 | 앨리스 이메일


1차 대전에서 승리한 직후 미국이 맞이한 1920년대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대였다. 자동차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차를 몰고 교외로 여행을 떠났고, 유성영화가 만들어졌으며, 스포츠스타가 탄생했고, 재즈의 유행을 타고 밤이면 밤마다 환락의 파티가 넘쳐났다.

바야흐로 문화 소비가 정점을 찍은 경제 대호황의 시대.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신화와 함께 축포처럼 터지는 샴폐인의 화려한 거품이 넘쳐 흐르는 도시에는 점점 더 높은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올랐고, 그 사이로 금주법을 피해 밀주를 만들어 팔며 큰 돈을 챙긴 악당들과 부자들이 넘쳐났다.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며 산미증식계획으로 일본이 쌀을 빼앗아가고, 공부해서 나라를 되찾자며 민립대학설립운동이 일어났으며, 독립군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 죽어나가던 대한민국의 20년대를 떠올리면 씁쓸하기까지 할 정도로 떠들썩한데, 이렇게 터질 듯이 팽창하는 미국의 20년대를 빼놓고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하여 설명할 수가 없다. 개츠비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것은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적 배경이 없었다면 절대로 탄생하지 못했을 로맨스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의 기억을 굳이 더듬지 않고 극장을 찾았다. 스토리가 어떻게 재구성됐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미국의 20년대가 바즈 루어만 감독을 통해 얼마나 화려하게 재현됐는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상징적 인물 개츠비는 내 기억 속에서 미안하지만 불확실한 실체를 잡으려고 애쓰는 '위대한 호구'로 자리잡았을 뿐이기에 그렇다.

물론 그가 가진 재능이 바로 긍정적인 성격 자체라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데 이견을 달 수 없긴 하다. 그러나 바닥에서 최상류층 꼭대기까지 올라간 그의 성공에 대한 근성이 타고난 기질과 노력도 있었지만 사실은 가난한 자신을 버린 첫사랑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했다는 건 상당한 연민을 넘어서 찌질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집착을 순애보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로맨스영화의 미덕이지만, 애초에 데이지는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속물적인 근성을 모두 갖춘 여자였고 언제라도 더 화려하고 더 매혹적인 눈 앞의 남자를 따라 떠날 수 있는 인물이기에 첫사랑은 반드시 비극으로 끝난다는 명제만 더욱 공고히 해줄 뿐, 이 둘의 사랑 자체로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면서 <건축학개론>을 잠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 있다. 남자들이 주인공 승민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시작하는 순간 서연은 정말 나쁜 년이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1개월짜리 군복무도 아니고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한 남자친구를 기다리지 못한 데이지(캐리 멀리건)는 정말 그렇게까지 나쁜 년일까? 데이지가 자신의 미모와 속물 근성을 굳이 감추지 않고도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여자라는 건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말인데, 5년 동안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집 맞은 편에 집을 지어 놓고 주말마다 파티를 열며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린 남자는 과연 낭만적이기만 할까?

물론 개츠비는 잘 생겼고 그의 집은 근사하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바로 여기서 또 한번 데이지의 놀라운 처세 감각을 배우게 된다. 오직 나만을 위해 화려하게 차려진 밥상을 일단 맛있게 먹고 보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적 남성의 시선에서 나쁜 년으로 해석되는 ‘난 년’들의 장점이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삶의 가르침이 이미 각인되어서 다 먹은 뒤에 밥값을 반드시 지불해야 할 거라는 부담감에 숟가락조차 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지는 밥값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혼을 하지도 않고 그의 장례식에 오지도 않는다. 그녀의 삶은 지속되고 그는 ‘내 첫사랑은 정말 나에게 모든 걸 바쳤지’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개츠비의 위대한 순애보는 보일 듯 말듯 감추고 숨기는 여자의 마음이 밀당을 멈추고 돌아 앉는 순간 집착의 면모를 드러낸다. 사랑스럽고 이기적인 여자란 마실수록 갈증 나는 바닷물 같은 존재라서 갈구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힐 뿐인데 안타까운 개츠비는 이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안다고 해도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또 동서고금을 막론한 어린 남자들의 순정이다. 어쨌거나 화려한 미국의 전성시대는, 위자료로 제주도에 집 한 채 정도 받는 한국의 나쁜 년에 비해, 선물 받은 진주목걸이로 자동차 몇 천대를 살 수 있을 만큼 스케일부터 남다른 데이지를 탄생시켰고, 이에 따라 남자의 순애보 역시 위대하리만큼 공허한 울림을 남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개츠비가 어떤 유년기를 보냈으며, 가난했던 장교 시절에 데이지를 만나 그 둘이 어떻게 빠져들었고 이후 5년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묘사하지 않고 생략한다. 또한 성공 이후 첫사랑을 되찾으려는 개츠비의 욕망만을 조명하고, 캐리 멀리건의 귀여운 얼굴 탓이겠지만 데이지라는 캐릭터 자체도 소설에서 봐 왔던 통속적이면서도 요염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자 보다는 현실과 이상 앞에 갈팡질팡하는 철부지처럼 그린다.

이처럼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 모로 아쉬움을 남기지만, <위대한 개츠비>가 통속의 사랑과 지고지순한 순애보가 결국 하나의 모습으로 만나 사람들의 마음 속을 어떻게 관통하는지를 담아낸 위대한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2013년 6월 4일 화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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