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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다크 서티>와 <홈랜드> 그리고 미국, 끝나지 않을 전쟁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 민용준 이메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패이보릿 미드로 알려진 <홈랜드>는 이라크 파병 중에 실종되어 사망 처리된 미군 병사 니콜라스 브로디 하사(데미안 루이스)가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미군들에게 발견되어 8년 만에 고국에 귀환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건은 세 개의 축으로 나뉜다. 갑작스럽게 구조된 브로디의 정체를 의심하는 CIA의 정보원 캐리 매티슨(클레어 데인즈)이 그를 감시하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큰 줄기를 이루는 가운데, 브로디가 자신의 죽음에 익숙한 삶을 살아오게 된 아내와 자녀들과 겪게 되는 충돌과 갈등,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브로디 자신의 혼란이 주변부의 줄기를 이룬다.

무엇보다도 <홈랜드>에서 가장 큰 흥미를 유발하는 건 브로디의 정체다. 알 카에다 조직의 수장 아부 나지르를 추적하는 캐리는 테러리스트 조직인 알 카에다에게 납치된 뒤, 8년 만에 생환하며 미국의 자랑스러운 영웅으로 추앙 받는 그의 기적적인 생환을 기이한 징후로 지목하며 불법적인 도청과 감시 행위까지 불사한다. <홈랜드>의 묘미는 거기 있다. 캐리의 의심스러운 시선과 함께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선명해지다가도 흐릿해지길 반복하는 브로디의 정체로 인해서 혼선을 거듭하는 상황이 흥미를 자아낸다. 가장 큰 백미는 캐리와 브로디의 관계에 있다. 완벽하게 괴리돼 있던 두 인물의 관계가 우연한 접점을 통해서 급속하게 근접해지는 과정을 통해서 <홈랜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떠밀려간다.

<홈랜드>로 인해서 <제로 다크 서티>를 떠올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가장 좋은 자정 이후 즉 ‘00시 30분’을 지칭한다는 의미의 <제로 다크 서티>는 네이비 씰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이 펼쳐지기까지의 과정을 다루는 팩션이다. 사실 빈 라덴의 사살 이전에 픽션으로 기획됐다가 제작 도중 빈 라덴이 사살당하자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과정을 겪었던 <제로 다크 서티>는 러닝 타임의 팔 할을 빈 라덴을 찾아내기 위한 CIA 요원들의 분투를 다룬다. <제로 다크 서티>의 하이라이트인 결말부의 빈 라덴 사살작전 신을 보기 위해선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보이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적의 몸통을 찾고자 불법적인 고문까지 자행하는 CIA 요원들과 끊임없이 꼬리를 끊고 몸통을 감추는 빈 라덴의 숨바꼭질을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실패의 연속 안에서도 끝까지 빈 라덴의 실체를 쫓는 마야(제시카 차스테인)의 피로감과 좌절감은 되레 병적인 집착으로 이어진다.
<홈랜드> 전쟁 영웅을 의심하는 CIA 요원 매티슨
<홈랜드> 전쟁 영웅을 의심하는 CIA 요원 매티슨
9.11은 미국인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공포처럼 보인다. 아론 소킨의 각본으로 유명했던 미국 케이블 채널 뉴스 보도국의 뉴스 제작기를 그린 미드 <뉴스룸>은 7번째 에피소드에서 빈 라덴 사살 작전에 관한 첩보를 보도하는 과정을 다룬다. 흥미로운 건 그 끝무렵이다. 결국 그 첩보가 팩트로 확인되자 그 이성적인 보도국 일원 전체가 환호하는 광경에서 확인되는 건 뼛속까지 깊게 서린 9.11에 대한 체증이다. 빈 라덴의 사살은 그야말로 미국인 전체를 위한 살풀이였던 셈이다. 포스트 9.11에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어떤 소재거리 이상의 현실성을 환기시키는 것도 그것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심리를 품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홈랜드>와 <제로 다크 서티>는 미국인들에게 최고의 안전지대라고 여겨졌던 미국의 심장부가 타격 당한 이후로 겪은 공황을 다룬다. 세계인들에겐 영화를 뛰어넘는 현실이었던 9.11 테러의 이미지는 미국인들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 이상의 질환이 됐다. 두 작품은 바로 현재 미국의 심리를 대변하는 바로미터에 가깝다.

그런 현실 속에서 미국에 뿌리 깊은 공포를 주입한 테러리즘의 수장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마야와 캐리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공포와 그로 인해 축적된 피로에 시달린 미국 사회의 잠재된 심리를 대변하는 육체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두 작품이 그 심리의 그릇으로 여성의 육체를 빌리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두 여성은 각자 알 카에다의 수장인 빈 라덴과 아부 나지르를 쫓으며 병리학적인 강박 증세를 드러낸다. 그리고 강인하고 단단한 남성적인 심리보단 섬세하고 예민한 심리로 보다 첨예하게 날을 세운 심리를 묘사하는데 더욱 효과적인 여성의 육체는 첨예해진 미국의 심리를 담아내기 좋은 그릇으로서 손색이 없다.

캐리가 쫓는 아부 나지르는 포스트 ‘빈 라덴’에 가깝게 설정된 알 카에다의 수장이다. <홈랜드>는 완전한 픽션이고, <제로 다크 서티>는 현실에 기반한 팩션이란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두 작품의 현실성은 거의 흡사해 보인다. 9.11 테러 장면에서 시작되어 빈 라덴을 추적하는 <제로 다크 서티>만큼이나 아부 나지르를 쫓는 <홈랜드> 역시 여전히 테러에 대한 공포와 피로가 적지 않은, 현재진행형인 미국 사회의 포스트 9.11 증후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까닭이다. 브로디의 정체를 의심하는 캐리가 상부의 허가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그의 신변을 감시하는 과정은 점차 그녀를 궁지로 몰아간다. 그 과정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의심스럽게 비춰지기 마련인데 그녀의 추측이 대단히 얕은 단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9.11 테러 이후로 미국인들의 심리에 깊게 내려앉은 공포와 방어적인 심리를 극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점차 그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그 불안한 심리에 대한 어떤 비판 의식도 수용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든 미궁에 갇힌 것처럼 그렇다.
 <제로 다크 서티> 빈 라덴의 실체를 쫓는 CIA 요원 마야
<제로 다크 서티> 빈 라덴의 실체를 쫓는 CIA 요원 마야
<제로 다크 서티>는 허무에 가까운 물음을 남긴 채 마무리된다. 결국 빈 라덴을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마야는 그 성과 앞에서 환호를 지르기 보단 길 잃은 표정을 짓고 끝내 눈물을 흘린다. <홈랜드>는 <제로 다크 서티>가 주지 않은 답변 혹은 닿을 수 없었던 결론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끝내 아부 나지르를 찾아내고 사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빈 라덴은 죽었지만 미국의 전쟁은 여전히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다.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여전히 공격받고 있다. 공격받을 것만 같다. 불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결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그 복잡한 미로를 헤쳐 나왔던 캐리는 다시 출구라고 믿었던 곳이 입구임을 깨달았고, 브로디의 여정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들어섰거나 어쩌면 다시 원점으로 끌려온 것만 같다.

미국의 전쟁은 이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돼버렸다.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은 더 이상 누가 먼저 시작한 전쟁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찌됐건 막아야 하고, 멈출 수 없는 싸움이 된 것이다. 빈 라덴의 주검을 확인한 마야는 사실 누구보다 명확하게 자신이 돌아갈 곳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지난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을 것이다. 그 허무가 지난 날의 고통을 되레 명징하게 되살렸을 것이다. 그녀의 눈물은 여전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포스트 9.11 시대의 나침반과 같다. 그리고 <홈랜드>는 올해 9월에 시즌 3로 되돌아온다. 이 피로와 공포는 보다 오래갈 것이다. 앞으로도 현실의 브라운관이나 영화 속 스크린으로 그들의 전쟁을 계속 지켜볼 가능성이 여전히 다분하다는 이야기다. 혹은 그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하거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 글_민용준 ELLE KOREA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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