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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테이너, 영화계에서 정계로 가는 길
2008년 4월 8일 화요일 | 유지이 기자 이메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말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신조어 하나. 정치인을 뜻하는 “Politician”과 연예인을 뜻하는 “Entertainer”를 합친 “폴리테이너Politainer”다. 합성어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연예인 출신 정치인을 뜻하는 단어. 오랫동안 배우로 지내다 문화부 장관으로 내각에 들어오고, 축구광 인연으로 유력 대선주자 선거 참모를 한 방송인이 신문 정치면에 나오는 지금을 생각하면 정교하게 만든 한국제 영문 합성어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말.

기억해보면 연예인 출신으로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배출한 한국에 비해, 이미 대통령(제40대 로널드 레이건)을 배출한 미국에서 먼저 나왔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단어이긴 하다. 어쨌건 법조인 출신 정치인, 기업가 출신 정치인에 대한 합성어는 없어도 연예인 출신 합성어가 한국이나 미국에서 쓰이는 것을 보면 무언가 별난 효과가 있기는 하는 모양.

헐리웃에서 워싱턴까지

지구로 쳐들어온 외계인을 상대로 직접 전투기를 모는 전직 공군 파일럿 출신 대통령이라던가, 대통령 전용기를 탈취한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맞짱 뜨는 대통령, 미모의 로비스트와 애틋한 로맨스를 가지는 대통령 혹은 절대적인 권력을 개인 비리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대통령까지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예전부터 많은 곳이 헐리웃이었다. 더불어 그 역마저 해당되는 드문 곳 역시 워싱턴이다. 배우 출신으로 배우 조합장을 맡아 정치에 대한 재능을 깨달은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 행보는 공화당에 입당해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대통령에 근접한다. 지나친 보수주의자라는 비판과 과도한 지출로 유명했던 경제 정책 레이거노믹스로 논란이 심한 대통령이긴 했지만, 탁월한 언변과 리더십으로 공화당원들이 좋아하는 역대 순위에 꼬박 이름을 올리는 대통령이 되었다. 여러모로 80년대 냉전 체제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

기묘하게도 머리 속에 한 배우가 겹쳐지는 것도 당연하겠다. 공화당 소속으로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있는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바로 그 사람. 울퉁불퉁한 인상과는 다르게 대학에서 경영 및 국제 경제학을 전공한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1986년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했을 때도, 미국 정치 명문가 케네디 가 일원인 부인의 경력이 화제가 되었었다. 동시대 액션배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깔끔한 주변 관리와 적극적인 정치 의사 표현으로 정계 진출이 예측되던 상황이나 199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가 되려 했을 때 부인은 말렸다는 소문. 그러나 재선에 성공하고 몇 번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한 지금의 아놀드 슈왈츠네거 주지사는 같은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조지 부시 마저도 쉽게 약속을 잡기 힘든 거물로 성장했다.

비슷한 경력을 밟고 있는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대권 입문은 시간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롤 모델 격인 로널드 레이건보다는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진정한 “폴리테이너”라는 면에서 두 정치인의 차이는 분명하다. 로널드 레이건이 가진 배우 출신이라는 이력은 대통령 활동 당시 유명했던 탁월한 대중연설 능력과 잘 생긴 외모라는 형식으로 남았지만 실상 배우 경력이 대통령 당선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헐리웃 배우 시절 그리 잘나가지는 못했던 까닭에 ‘무명배우’가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식의 마이너스 요소가 많았던 것이 사실. 그러나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자타가 공인하는 헐리웃 거물이다. 근 20년 사이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는 액션스타였고, 헐리웃을 쥐락펴락하는 거물이었다. 아놀드 슈왈츠네거 부부가 늦어지기 때문에 세계 최초 공개 VIP 시사가 지연된 사건은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입지를 알 수 있는 단순한 예가 될 법하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 강력한 〈터미네이터〉의 이미지를 가진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얼마나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폴리테이너, 강력한 영향력의 자장을 펼치다

수퍼스타 출신에게 “폴리테이너”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여기서 출발한다. 널리 알려진 스타의 이미지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기 쉽다는 것. 미국에서 폴리테이너란 단어를 유행시킨 사람 역시 전직 스타 레슬러 출신 주지사 제시 제임스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숨기지 않는 수많은 스타부터 적극적인 행동으로 유명한 스타까지 오랜 세월동안 이미지를 벗어나 행동가로 정치에 참여했던 역사가 있었다. 대표적인 좌파 활동가로 일인 시위 중에 체포된 배우 수잔 새런든이나 빈민 국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주장하여 세계 경제 회의 다보스 포럼까지 초청되어 연사로 활동하는 U2의 보컬리스트 보노가 대표적인 경우다. 심지어 빈민 지역 아동 구제활동으로 유명한 안젤리나 졸리의 탁월한 정치적 존재감은 카리스마 넘치는 섹시스타 이미지와 합쳐져 누가 봐도 분명한 브래드 피트 사이의 불법적인 애정 관계를 대중적으로 무마시키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아직 헐리웃처럼 대담하게 대통령을 주역으로 등장시킨 영화를 찾기 힘들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그리 좋지 않은 결과로 남은 경우가 많은 한국 연예계 역시 고전적인 정치 공포를 벗어나 정치성이 양성화 되는 중이다. 특정 후보와 정당을 공개지지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노사모 핵심 멤버로 활동했던 명계남과 문성근 콤비 이후 지난 대선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이순재처럼 대중에게 각인된 경우도 많은 편이다.

지난 정부의 이창동 감독이나 이번 정부의 유인촌 장관 같은 행정가는 드물지만,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이라면 한국도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3선 국회의원에 현재 성남시장을 하고 있는 영화배우 출신 이대엽이나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故 최무룡, 14대 총선에서 배지를 단 故 이주일, 최불암, 강부자에 이번 총선에 나선 스타 아나운서 출신 유정현까지 연예인의 정계 진출은 활발한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에서 폴리테이너가 된다는 것

연예인에서 국회에 입성한 폴리테이너의 성과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정계에서 성공적인 입지를 다진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다시 연예계로 돌아왔다. 전문성을 키우거나 정치적 역량을 펼치기 보다는 널리 알려진 연예인의 지명도를 정치적으로 소모하고 주저앉았다. 신성일, 최불암, 이순재, 정한용 등 국회에 얼굴 만 빌려주고 돌아온 경우가 부지기수다.

너무 흔한 해답이라 재미없지만, 해결책은 다시 헐리웃과 유럽 영화계에 있다. 이미지를 소모하는데 끝나는 ‘폴리테이너’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당찬 연예인이 많아지는 것, 튼튼한 기반이 없는 곳에 정치적 전문성을 갖춘 ‘폴리테이너’를 바라기 힘들다. 아놀드 슈왈츠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전문 정치인으로 자신의 위치를 갖는 이면에는 락스타 본 조비나 배우 워렌 비티처럼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면서도 정치활동을 지속해 해당 정치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스타가 존재한다. 그 뒤에는 ‘그린피스’ 지원으로 유명한 행동파 환경주의자 (올해 〈라비앙 로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나 말년을 극빈국 어린이 봉사로 살다 죽은 명배우 오드리 햅번 같은 행동가들이 있다. 지난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노감독 엘리야 카잔이 평생공로상을 받았을 때, 평소와 달리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배우 에드 해리스 같은 이는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워터프론트〉로 유명한 명감독이지만 엘리야 카잔이 매카시 열풍 때 동료를 팔아 넘긴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반대하는 후보자에게 야밤 뒷골목에서 저질스런 욕설을 하다 다음 날 포털 뉴스에 특집으로 실리는 배우가 존재하는 지금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기품이 필요하다.

권위주의적인 국가권력의 공포에서 벗어난 지금은 연예인의 정치적 기품에 대한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다 후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등의 뒷소문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리수 문소리 김부선 같은 배우들이나 박찬욱 임순례 같은 감독들의 진보신당 공개 지지 같은 사례는 여전히 반갑다. 지난 대선 때부터 현 대통령을 지지한 연예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신당 지지 연예인들이라면 정치권력이 서슬 퍼렇던 과거에는 볼 수 없었을 경우기 때문이다. 정치적 존재감이 다소 부족한 지지 선언일 뿐이지만, 한국은 이제 연예인의 기품 있는 정치 활동이 싹을 틔웠다.

대중이 가진 이미지로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연예인은 닮았을 지도 모르겠다. 대중이 가진 좋은 이미지만큼, 되도록 그보다 높은 성과를 얻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2008년 4월 8일 화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

18 )
sasimi167
아직 눈길이 곱진 않죠.   
2008-12-30 13:30
kyikyiyi
연예인들 정치판에 자꾸 뛰어드는데 알고 하려는 건지...   
2008-05-07 16:47
fatimayes
최고의 시리즈물 중 하나   
2008-05-07 15:47
callyoungsin
정치로 가는 연예인들 많아요ㅠ   
2008-05-06 10:48
iwannahot
정치학도로서.... 이런 상황 너무 싫다..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되면 4년동안 무얼 할까...   
2008-04-27 14:20
dbwkck35
정치판..........   
2008-04-26 21:44
ksy2202
제발 제대로 된 정치..ㅠㅠ   
2008-04-25 18:03
wjswoghd
현실은 너무 달라요   
2008-04-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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