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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Edition)의 미로, 어느 극장판 지상주자의 푸념!
2007년 12월 11일 화요일 | 김시광 이메일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를 짐작하고 이 글을 읽으시려는 분이라면
우선 죄송하다는 말을 드려야겠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어떤 영화 - 영화가 아니라 다른 어떠한 것이라도 - 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본 것으로 생각하고 대화하게 된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내가 본 것 - 혹은 내가 보았던 것들 - 이 다른 이가 본 것과 같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늘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내가 극장이나 시네마테크를 열심히 돌기보다는, 닥치는대로 비디오를 보아온 비디오키드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내 성향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서, 극장보다는 집에서 DVD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내가 본 것은 영화를 보고 말하는 누군가가 본 영화가 아니다. 매체와 환경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화가 달라진 경우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꼭 집어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판(Edition)의 미로이다.

1. 비디오

내가 루치오 풀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어내는 감독이었고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독이었다. (물론 지금은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감독이다.) 소위 그의 베스트에 꼽히는 작품들에 있어서도. 물론 많은 부분은 그의 정평이 난 가학성의 삭제 때문이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구체적으로 [비욘드]를 예로 들어보자. [비욘드]의 첫 부분에 어떤 기괴한 남자가 나온다. 생긴 것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감잡게 해줄 법한 이 남자는 호텔방에서 혼자 황량한 지옥을 그리고 있다가, 횃불을 들고 나타난 많은 사람들에게 잡혀간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못박히고, 채찍에 맞아 죽는다. 과거의 일임을 알려주기 위해 영화의 색채는 그 이후의 색감과는 전혀 다르게 그려낸다. 관객의 모든 흥미를 잡아둘만큼 인상적이었던, 그와 동시에 과거 호텔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단서를 던지던 그 10여분의 시퀀스는 비디오판에서는 완전히 들어내져있다. 오프닝이 지나간 후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1981 루이지애나'라는 문구가 딱 뜨더니, 미국에서 낡은 호텔을 재개장하려는 여인의 등장(천연색으로 그려진)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만약 첫 시퀀스가 있었더라면 호텔을 다시 만드려는 일이 무척이나 위험한 무엇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될테고, 기대감도 만들어낼 수 있었을게다(그 기대감에 부응하느냐 못하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후반부 그 호텔의 지하에서 못이 박혀있는 부분을 찾아냈을 때 시체(혹은 백골)가 있겠구나라는 짐작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비디오판에서는 그 부분이 없으므로 왜 저래 혹은 저게 왜 튀어나와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앞 시퀀스의 제거로 인해 궁금증이 점차 증폭되는 효과도 있을 수 있을테고 영화의 결말부에 비슷한 추론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감독의 의도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삭제는 영화를 다른 영화로 만든다.

내가 보아온 수없이 많은 영화가 이 범주에 놓여있다. "그 장면 죽이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 - 삭제 없이 감상한 녀석들 - 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게 나왔었나?" 책임은 삭제한 누군가가 아닌, 애꿎은 기억력 탓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이렇게도 말한다. "그 영화 정말 좋던데." "지루하던데?" 물론 같은 영화를 본다해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이지만, 다른 영화를 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앞서 말한 [비욘드] 원판을 처음 봤을 때, 내 감정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DVD의 경우에도 삭제의 문제는 여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또 다른 다름을 만들어낸다.

2. DVD

요즘 하나의 추세는 바로 Director's cut, 그러니까 감독판이다. 이러한 형태의 버전은 감독의 의도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조금은 솔깃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영화를 본질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공백으로 두어 미묘한 감정을 만들어냈던 극장 버전과는 다른 친절한 - 때로는 '유치한'과 같은 뜻이다 - 장면에 영화의 맛이 팍 꺾여버리는 예가 다반수다. [시네마 천국]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감독판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을게다. 극장판보다 더 좋아하는 경우까지도) 물론 영화를 총 책임하는 것은 감독이겠지만, 영화라는게 편집의 예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찍은 장면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감독에게는 고통일게다. 자신이 만든 것에 애착을 갖지 않는 창작인은 거의 없을테니.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 그 장면이 오히려 작품성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 그 부분을 제거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사람들이. 가끔씩은 저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경험상) 적지 않은 경우에는 없는게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감독판이라는 저 명칭이 그저 DVD를 더 팔아먹기 위해 의례적으로 만드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남는 필름 아까우니 편집 한 번 다시 해서 우려먹어볼까라는. 때로는 극장에서 본 사람이라면 뭔가 달라야 사지 않겠어라는 생각. 감독의 철저한 의도를 알려주고 싶다는 그 명분은 상술에 의해 변질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감독 코멘터리와 삭제장면이라는 서플 메뉴의 결합을 더욱 추천한다. 삭제장면 이어보기 메뉴가 있으면 더 나을 수도 있겠지. 극장에서 한 번 본 관객에게 DVD를 사게 하기 위해서 얼터너티브 엔딩을 포함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극장판과 다른 결말만을 수록한 버전도 돌아다닌다. 2개 판본을 함께 수록한 채로만 판매하는 - 그럼으로서 단가를 높이는 - 경우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1408]의 예를 보자. 별 기대없이 DVD를 감상했다가 의외로 괜찮네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 남들은 어떻게 느꼈나를 찾아봤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영화와 관련한 덧글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체가 비디오라거나, 감독판이라는 구체적 명칭을 달고 있는 DVD라면 그나마 낫다. 그렇거니 하면 되니까. 더 큰 문제는 소리소문없이 이루어지는 삭제와 편집이다. [페노미나]의 비디오 출시판은 영화의 가학성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삭제 정도가 작다. 비디오 커버와 imdb의 러닝타임이 틀리길래 순전한 호기심에서 둘을 동시에 틀어놓고 감상한 적이 있었는데,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그런데 재미있는게 병원이 나오는 시퀀스가 서로 다르게 붙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알고 보는 것과, 나중에 알고 보게 되는 것. 어차피 중간에 나오니까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언가가 바뀌었는데 뭐가 바뀌었는지 어지간해서는 알아챌 수 없다. (그거 알아낼 시간이면 나는 영화를 한 편 더 보겠다.) 알고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알고 있으면 감안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나는 앵커베이의 조금은 어두운 듯한 색감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르젠토 영화의 경우 적잖은 이들이 메두사의 판본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DVD는 제작사의 판본에 따라 색감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메두사'와 '앵커베이'의 색감은 꽤나 다르다. 영화를 보고 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색감이 정말 좋았다라고 말했는데, 누군가는 색감이 별로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게다. 다른 작품을 봤는데 단순히 취향 차이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색의 풍부함, 음질의 풍부함. 모두 영화를 다른 작품으로 만드는 것들이다. 물론 화면비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금 더 엄격해지자면 원어를 수록하지 않은 더빙 역시 문제일 수 있다. 이러한 예는 국내보다는 더빙천국 미국의 경우 자주 나타나더라.

3. 판의 미로

간단한 내용의 글이 무척 길어졌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본 영화에 대해 글을 종종 쓰게 되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이 본 작품이 아니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최근 들어 부쩍 커졌다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혼자 떠드는 기분을 많이 느끼고 있는데, 남들이 본 것과 다른걸 같은 것처럼 떠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혹시라도 판이 엇갈릴 때 그 기준점이 되는 것은 극장이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 충무로 영화제의 [서스페리아]였지만, 나는 그것을 보면서 가슴이 쿵쿵 뛰고 즐겁기 짝이 없었다. 아르젠토의 가장 큰 협력자였던 클라우디오 시모네티의 음향을 집에서 그 크기로 들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겠는가. 비록 색감은 집에서 보는 앵커베이 것이 더 나았을지라도(선명도의 향상에 때로 내가 본 영화들의 추억을 빼앗기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열악한 비디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부하고 화사한 색감에 심지어 나는 당혹감을 느끼기도 한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와 같은 것 - 물리적으로 - 을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극장은 상영 시간 동안 외부와 차단시켜 영화에만 몰두있게 해주기도 하고, 음악과 커다란 영상, 화면비 등에 있어 최적의 관람환경을 제공할 뿐더러 내가 말한 판의 미로에서의 하나의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음에도) 극장판 지상주의자에 가까운 것이다.

판의 미로는 한 작품을 사랑하는 이에게 하나의 즐거움 - 보다 많은 관람의 다양함 - 을 제공함과 동시에 두통을 일으킬 정도의 곤란함 - 이걸 또 사야하나 - 에 봉착하게 만든다. 그리고 판의 미로는 영화를 봄에 있어 취향의 차이를 넘어서는 본질적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글은 영화에 관한 글을 읽는 이에게 좀 더 많은 이해를 당부하는 글이기도 하다.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도저히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나와 다른 것을 보았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훨씬 용인하기가 쉬울 것이다.

글_김시광(네오이마주 필진)
18 )
moviepan
판의미로라   
2009-11-16 14:18
sasimi167
사진..무섭다   
2008-12-30 12:37
mvgirl
정통 헐리웃 환타지는 아닌 영화   
2008-01-07 23:57
firstgun
정말 제목이 참..   
2008-01-07 13:42
joynwe
영화 판의미로 이야기인 줄 알았다...   
2008-01-03 14:31
rcy09
판의미로 엄청잘만들었죠.   
2008-01-01 17:58
qsay11tem
무서운 영화에여   
2007-12-27 14:25
chdk57
낚였군요,ㅎㅎ   
2007-12-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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