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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와 현빈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1941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미국 브루클린에 스티브 로저스라는 약골 청년이 살고 있었다. 이 청년의 앉으나 서나 군입대를 생각했다. 그는 ‘남자란 자고로 군대에 가야 한다’고 믿는 고지식한 남자였다. 아니, 애국심 불타는 사나이였다. 하지만 스티브는 군대로부터 번번이 퇴자를 맞는다. 피골이 상접한 체격이 문제였다. 천식도 있었다. 류마티즘도 달고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면제 혹은 공익근무요원 감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법 전입신고까지 불사하며 지원서를 냈다. 10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신통방통하게도 통했다. 그를 눈여겨 본 과학자에게 발탁된 스티브는 미 국방부 비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인간병기로 거듭난다. 그가 바로, 마블의 첫 번째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다. 스티브의 초월적 능력은 신문 1면을 장식한다. 인기가 뒤따른다. 하지만 인기에 발목 잡힌다. 정치인들은 그의 인기를 선전도구로 사용했다. 스티브는 쫄쫄이 스판덱스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다. 히틀러 배역을 맡은 배우를 향해 강펀지 날리는 시늉을 했다. 홍보 영상도 찍었다. 정신차려보니 스티브는 징병을 장려하는 국가의 홍보 도우미로 전락해 있었다. 그건 바라던 군대 생활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전장에서 싸우고 싶었다.

2011년 초, 대한민국 서울에 김태평이 있었다. 현빈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김태평은 유명세를 뒤로하고 군대에 가야 했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군대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짊어진 운명이었다.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끝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했다. 현빈은 ‘꼼수’따윈 부리지 않았다. 그냥 현역으로 입대해도 박수 받았을 일이었다. 홍보병으로 가도 뭐라 할 사람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대에 지원했다. 현빈은 그곳에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보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고도 했다. 연예인 특혜 없이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군복무를 하기에, 외부로부터의 과도한 관심을 차단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해병대가 나을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태평 이병의 기대는 군입대 순간부터 어그러졌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은 마치 현빈 연예 기획사인냥 움직였다. 외부 활동 스케줄이 짜여졌다. 현빈은 해병대 생활을 담은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해병대 홍보 서적 얼굴 마담도 됐다. 9월 25일엔 ‘서울수복기념해병대마라톤대회’에 차출됐다. 30일에는 해병군악대 정기 연주회 사회자로, 10월 5일엔 국방홍보 특사로. 그렇게 백령도로 여의도로 인도네시아로, 마치 밤무대 가수처럼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그곳은, 그가 생각한 군대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그에게, ‘캡틴 코리아’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캡틴 아메리카와 현빈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예민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스티브에게 군대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홍보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를 영창에 넣을 사람은 없다. 원한다면, 일상생활로의 복귀도 가능하다. 반면 현빈에게 해병대는 선택이지만, 군대는 의무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현빈의 시간은 국가에 예속된다. 대한민국 군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곳이 군대’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근 일부 연예인들은 군대를 이미지 재정립을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착실하게 군복무 하는 모습은 대중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군필자’라는 수식어가 인기 보증수표처럼 사용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현빈과 같은 톱스타의 경우,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현빈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군의 명령에 착실하게 따르는 게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만, 이는 동시의 그가 이제까지 쌓아올린 이미지를 위협한다. 현빈은 사생활 노출을 꺼려온 스타다. 신비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작품 이외의 활동이 본인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아무 광고에나 출연하지 않았다. 시나리오 선택에서도 흥행만을 쫓지 않았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과 연예 기획사의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기획사는 현빈의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스케줄을 짠다. 군대는 행사를 중심에 두고 현빈을 쓴다. 국가의 이익을 들먹이며, 해외 출장까지 내보낸다. 시쳇말로 굴린다. 어렵게 쌓아온 이미지가 아무렇게나 소비되는 건 현빈으로서나, 그의 소속사로서나 답답할 일이다.

다행히 스티브 로저스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는 홍보 요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스스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원하는 자리에서, 원하는 싸움을 했다. 하지만 현빈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다. 최근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현빈의 상병 진급 때, 자대를 해병대 사령부로 바꾸고 모병 홍보병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투병을 홍보병처럼 대한다’는 논란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캡틴 아메리카를 시대착오적인 영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현재 대한민국에 득실거린다. 한 개인의 선택과 의지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거야 말로 얼마나 시대를 역행하는 일인가. <시크릿가든> 속 주원(현빈)의 말을 떠올려야 할 때다.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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