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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하고 또 수상한 이웃들
2011년 5월 8일 일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수상한 이웃들>에 관한 단상

2000년대 초반 경상북도 칠곡군 너머의 시골마을에서 한 동안 지낸 적이 있다. 일 때문에 한시적으로 머물렀던 것인데, 서울을 떠나본 적 없는 내게 시골은 동경과 호기심이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남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날부터 동네에서 가장 젊다는-그래도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남정네가 다짜고짜 관사로 들어와서는 어디서 왔고 이곳에 온 용건은 무언지 얼마나 있을 건지 등을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하루에 버스 10번 다니는 동네에 나라고 좋아서 왔겠나. 이후로 마을 어른들의 불시 방문은 다반사이고 동네행사라도 있을라치면 꼭두새벽부터 문을 두드려 괴롭히곤 했다. 그건 사람 사는 정이 아니라 엄연한 프라이버시 침해였다. 정작 골치 아픈 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지역신문 기자를 응대하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치도곤을 치르게 하고 싶지만 언제나 좋은 낯으로 상대의 비위를 맞추면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소도시에서 지역신문은 토호이고 권력이니까.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찾아와 광고와 구독을 요구하는 지방지 기자들이 줄잡아 세 명쯤 되었다. 속으로 되뇌었다. ‘하이에나 같은 놈들, 평생 킁킁거리면서 쓰레기나 뒤지고 살아’ 사정이 이러니 어찌 시골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 있을까.

시골을 목가적 풍경 아래 후덕한 인심을 가진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아직 많고, 틀린 얘기도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정확히 말해서 사람이 변했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양촌리 사람들은 극히 드문 사례일지도 모른다. 전원과 농촌의 뉘앙스 차이로 간단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본 영화 <수상한 이웃들>이 마음에 쏙 와 닿은 이유도 시골에서 보낸 한 때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수상한 이웃들>의 배경이 되는 소읍 봉계마을은, 목가적 풍경과 넉넉한 인심 따위와는 거리가 먼 얄팍한 속물스러움으로 채워진 공간이다. 인터뷰를 빌미로 광고를 강매하는 지역신문의 전지적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시종 유쾌한 소동극을 시골 특유의 공기와 정서로 담아낸다.

시골사람의 특징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사건의 확대 재해석 및 유통 능력일 것이다. 즉 대도시에선 가십거리도 안 될 사소한 사건도 시골에서라면 사정이 달라지기 마련이고, 일단 말이 돌기 시작하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기사 하나로 신세 망쳤다고 믿는 개장수는 시도 때도 없이 기자를 괴롭히고, 교사는 보신주의에 익숙한 교감과 동료를 위해 억울함을 참아야하며, 곱상한 옆집 여자에게 눈길을 줘 봐야 남는 건 허망함 뿐이다. 악다구니가 횡횡하고 패륜이 펄럭이며, 야구방망이와 유치한 문신 따위로 무장한 인물들이 토박이라는 푯말을 달고 활보하는 공간이, 바로 영화 속 시골의 풍경이다. 느리고 무료하다 여겨졌던 시골의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시종 즐거울 수밖에. 이처럼 말랑말랑하고 정 넘치는 소읍의 삶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은 야합과 부도덕한 일들의 중심인물이 교사와 신문사기자라는 사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제까지 당신은 밀짚모자 쓰고 굵은 땀방울 흘리며 검게 탄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짓는 농부를 시골과 동격으로 생각했던 거다. 직접체험 없이도 부지불식간에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편견이거나 막연한 환상, 예컨대 시골사람은 순박하며 시골은 인심 좋고 조용하다. 장애인은 순수하고 착하다. 등등 말이다. 오래 전에 폐기됐어야 할 옛날 고리짝 이야기를, 쉽사리 대놓고 반격하지 못했던 비이성적 논리를, 잘못했다간 몰매 맞기에 십상인 예민한 사안을, 영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 아주 멀리 날려버린다. 웬만한 서스펜스스릴러 뺨치는 사건이 종종 터지고 은폐된 욕망이 비릿한 점액질처럼 흘러내리는 공간이 지방소도시요, 이것이 진짜 시골 사람의 모습일 거란 느낌이 와 닿는 순간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 했다. 이거, 정말 멋지잖아! 소읍 신문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극 <수상한 이웃>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 영화는 마지막 에피소드 ‘좋은 이웃들’로 마무리되지만 나는 여전히 뒷이야기가 궁금하고 마을사람들도 수상하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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