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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시대에 대한 작은 매혹
모노노케 히메 | 2003년 8월 16일 토요일 | 유령 이메일

<모노노케 히메>는 다 알다시피 <원령공주>라는 한글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뒤늦게 올 봄 개봉하면서 <모노노케 히메>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일찍 종영할까 두려워 부랴부랴 극장에서 보고 나온 것이 세 달 전이었는데 이제 다시 한 번 비디오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유치한 질문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궁금한 것은 들개신인 모로에 관한 것이었다. 모로 신을 연기한 배우는 니시무라 마사히코라는 남성 배우이며 모로의 목소리도 확실한 남성의 것이었다. 그런데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산(원령공주)은 모로를 엄마라고 부른다. 무슨 곡절이 있는 건지…

훗날 사람들에게 원령공주라 불리게 되는 산은 숲을 침범한 사람들이 모로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바친 아이다. 모로는 아이를 죽이는 대신 자신의 딸 삼아 걷는 방법과 언어, 고대인의 문화를 가르친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모로 일족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증오하게 된다. 그들의 증오는 특히 제철을 업으로 살아가는 타타라 마을과 마을의 수장인 여성 에보시 고젠에게 향한다. 당시 제철 작업을 위해서는 삼림의 파괴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숲속에 살아가는 신들과 제철마을은 양립할 수 없는 사이. 이들의 대립 사이에 오지로 밀려난 고대 부족 에미시족의 후예 아시타카가 끼어들고, 왕명을 받들어 시시신의 목을 노리는 지코의 무리, 제철마을을 노리는 사무라이들이 등장한다. 주된 사건은 재앙신의 저주에 걸린 아시타카가 저주를 풀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면서 일어나지만 작품의 큰 축은 에보시 고젠과 타타라 마을이 대표하는 인간과 문명, 그 반대편에 서있는 신들과 자연의 대립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거장인 동시에 한 사람의 사상가로 불러도 무방한 인물이다. 그의 여러 작품 중 특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논하는 그의 사상이 강하게 투영된 작품이며 <모노노케 히메>를 보는 평자들도 이런 해석에 대해 별 이의가 없는 듯 하다. 물론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 식상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렇게 단정짓기엔 <모노노케 히메>의 곳곳에 깔려있는 설정들이 너무 흥미롭다. 특히 제철마을인 타타라의 수장인 에보시 고젠은, 비록 구성상 주인공과 적대하지만 그녀를 악역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강인하고 현명한 모습을 보여주는 뛰어난 지도자인 그녀가 다스리는 제철 마을 타타라는 인간 사회의 여러 모습 중 한 가지 모범답안으로 볼 수 있을 만치 매력적인 곳이다. 타타라의 여성들은 노동에 참가하고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나병 환자들도 타타라에서는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사회 구성원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이 곳을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제철마을과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는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었으며, <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은 실제 제철마을이 존재하던 곳을 모델로 삼았다. 실제 제철마을의 모습이 영화가 그린 바와 조금 달랐다고 할지라도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다스리는 이상적인 마을의 모습은 한 번쯤 꿈꿔볼 만 하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 영화 중간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중국에는 명(明)왕조가 있고 작품에는 신무기인 수파강총(手把鋼銃. 포르투갈에서 화승총이 전래되기 이전의 총기)이 등장한다. 이제 일본은 곧 전국시대로 접어들어 오다 노부나가, 우리들이 좋아할 수 없는 이름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영웅들과 무사들이 활개치고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잠시나마 희미하게 빛난 여성들의 모습은 이미 죽은 신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진다. 작품을 통해 몇몇 관객들을 매료시켰을 여성성, 아울러 모계 사회에 대한 매혹은 잠시 날개를 접어 때를 기다린다. 그러고 보면 산이 모로를 엄마라 부르는 것도, 자연은 본질적으로 여성성에 가깝다는 작은 은유 아니었을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보우,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 <미래소년 코난>의 포비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여러 애니메이션에는 이른바 감초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잔재미가 쏠쏠하지만 <모노노케 히메>는 워낙 선이 굵은 관계로 그런 맛은 없는 편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작은 토토로의 종종걸음 같은 작은 아름다움 대신 아시타카가 날리는 한 화살의 무사의 목이 떨어져나가고 병사의 두 팔이 잘려나가는 장면이나 멧돼지 무리와 인간의 장렬한 전투 등 강력한 이미지로 관객을 이끌어나간다. 영화에서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들의 우두머리로 묘사된 시시신은 특이하게도 걸을 때마다 발자국에서 풀잎이 피어나는데, 거장들의 존재도 아마 그럴 것이다. 발걸음마다 걸작이 피어나는…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왕명을 받들어 시시신을 잡으려 간계를 꾸미는 지코의 존재인데, 그는 <무사 쥬베이>의 다쿠앙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결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강인한 아시타카와 산은 서로 어울리는 짝이라고 볼 수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들을 맺어주는 대신 서로 가까이서 지낼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이 아마 그들이 선택한 길에 대한 최상의 배려가 아닌가 한다.

2 )
ejin4rang
색감이 뛰어나다   
2008-10-16 09:48
js7keien
자연에 대해 인간이 정복논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코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수 없다   
2006-10-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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