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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 You 월드의 이니드
판타스틱 소녀백서 | 2003년 3월 22일 토요일 | 유령 이메일

오래전부터 <판타스틱 소녀백서>를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개봉했을 때는 미적대다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쳤고, 비디오 가게에서도 이 영화를 찾기는 어려웠다. 고작 컴퓨터 본체 앞에 판타스틱한(그렇게 생각했던) 두 주인공 이니드와 레베카의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만 필자는 <판타스틱 소녀백서>를 소비했고, 결국 개봉한지 정확히 아홉 달 하루가 지난 뒤에야 비디오로 아쉬우나마 관람을 완수할 수 있었다.

영화 앞부분, 고교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 학사모를 짓밟고, 학교를 향해 Fuck You를 먹이는 이니드의 모습을 보고, 필자는 그녀를 Fuck You 월드의 이니드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하지만 앨리스와 달리 출처가 불분명한 그녀는 영화 내내 Fuck You 월드에서 고군분투한다. 알기 쉽도록 설명을 덧붙이자면, Fuck You 월드엔 두 종족이 존재한다. 하나는 얼간이, 다른 하나는 패배자. 두 종족은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얼간이들은 패배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능하면 그들을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 반면 예민한 감수성과 여린 마음을 지닌 패배자들은 얼간이들을 능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Fuck You 월드는 얼간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패배자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얼간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취향 뒤에 숨어 세상 바깥으로 틀어박힌다. 이게 없는 패배자들은 얼간이들이 내뿜는 독소에 자신을 소진시킬 수밖에 없다.

패배자 종족의 유저인 영화의 주인공 이니드는 멋지게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한다. 인도 록음악의 고색창연한, 쿵짝 리듬에 몸을 맡기고 거침없이 머리를 흔드는 모습은 정말, 그렇게 춤추고 싶어질 정도였다. 곧이어 단짝 레베카와 함께 거침없이 얼간이들을 비웃는 이니드의 재기 발랄함은 이 영화가 Fuck You 월드의 평범한 얼간이들의 뒤통수를 후리는 멋진 영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니드와 레베카는 짝을 이뤄 구인광고보고 장난전화를 걸거나 순진한 조쉬를 놀려먹는다. 그러나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두 주인공의 발랄한 일탈 따위를 그린 영화가 아니었다. 두 주인공은 처음부터 얼간이였던 적이 없어서 일탈이란 가능할 수 없으며, 그래서 해방감의 정서 또한 영화에는 없었다. 혹시 <델마와 루이스>를 기대하신 분은 안계셨겠지?

이 영화, 오히려 슬프다.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이니드와 다른 패배자 종족들의 고달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패배자 종족의 운명은 세상에서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면 얼간이들 사이에서 시드는 것 뿐이다. 벤치에 앉은 노먼은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고 시모어는 싫어하면서도 레코드 수집에 매달린다. 반면 취직한 레베카는 차츰 시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니드는 재능과 아울러 변덕스러움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고, 고슴도치처럼 끊임없이 상대방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자기 본심을 숨긴다. 그러면서 그녀는 끝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그리고 절대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얼간이들의 세상에서 재능과 생을 소진시켜간다. 그런 이니드의 사랑과 우정은 때론 답답하고 출구가 없어 보이지만 결코 구접스럽거나 상투적이지 않다. 시모어를 자신의 영웅으로 간직하는 이니드의 모습에서 어찌 식상한 해피엔딩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는 패배자들을 위한 영화다. 정상에서 1mm라도 벗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거나 인생의 성공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비록 패배자 유저보다 얼간이 유저에 가까울지라도, 배트맨 가면을 쓴 이니드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당돌함에 반했고 레베카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의 자존심 강해 보이는 턱과 입술을 사랑하며 영화 속 시모어가 소장한 레코드 넘버들과 허리에 몰래 두르고 다니는 복대를 훔치고 싶었다. 제목만 빌리자면 스티븐 프리어즈의 더티 프리티 싱즈(Dirty Pretty Things)를 빌리고 싶다. 더럽지는 않고, 괴팍하지만 예쁜 것들이라고. 이 영화와 주인공들은.

PS. 이니드가 쓰고 있는 배트맨 가면이 사실 성인용품점에서 산 것임을 알고 좀 당황스러웠다. 조쉬 역을 맡은 브래드 렌프로는, 다들 아시겠지만 <굿바이 마이 프렌드>에 출연한 배우다. 지금으로서는 그리 귀여워 보이지도, 멋있어 보이지도 않지만... 어쨌든 여기서도 하는 짓은 귀여웠으니까.

2 )
gaeddorai
진짜 보고싶은데 볼 방법이 없다   
2009-02-22 20:48
ejin4rang
판타스틱한 소녀   
2008-10-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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