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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소설보다 얕은, 그러나 아름다운 멜로의 향기 | 2003년 10월 9일 목요일 | 심수진 이메일

냉정과 열정사이
냉정과 열정사이
첫사랑,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첫. 사.랑. 첫사랑은 어떤 추억이 깃들어 있든, 언제나 묘한 아름다움으로 탈색되고 변형된 채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쓴 『냉정과 열정사이』만큼 그것을 매력적으로 그린 릴레이 소설도 없지 않을까. 순애보에 대해 유난히 중독적인 편애를 보여서인지, 아니면 그 독특한 형식 때문인지 몰라도,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집단적으로 환호를 받는 대상물에는 의식적인 냉대로써 하찮은 자존심을 내보이는 나. 하지만 그 열풍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소설의 희생자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면서, 나는 작가들이 쓴 일종의 작품 후기집 『황무지에서 사랑하다』까지 읽으며 소설에 빠져있었다. 이 장황한 사설의 결론은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영화화되었을 때, 필자도 수많은 애독자들 중 한 명으로서 과연 어떻게 영화로 주조되었을지 몹시 궁금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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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른 살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만나. 어때?”. 소설처럼 이 가슴아릿한 명대사(싫어진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고 헤어질 수 있는 멋진(?) 방법일 것 같다!)가 등장할 영화에서,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배우에 대한 것이었다. 우울하면서도 사색적인 남자 주인공 쥰세이, 삶에 근본적으로 매달릴 수 없는 불안한 영혼을 지닌 여자 주인공 아오이를, 과연 누가 어떻게 연기했을 것인가. 쥰세이와 아오이로 타케노우치 유타카와 진혜림을 각각 선택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아쉽게도 그러한 필자의 기대를 살짝 비켜갔다. ‘일본에서 가장 멋진 남자 배우’ 중의 한 명이라는 타케노우치 유타카는 바로 그 조각같이 생긴 탁월한 미남자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의 꽃미남이라면 침을 흘리며 좋아하던 필자였지만, 츠지 히토나리가 형상화시킨 쥰세이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대리 만족하는 환상 속의 이미지가 아니라, 내겐 거리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고독한 눈매가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 그런 현실 속의 인물이어야 했다.

물론 개인적인 불만을 떠나 타케노우치 유타카는 <냉정과 열정사이>가 영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용모에 꽤 안정적인 연기까지 밀도있게 조화시켜 소설보다 꽤 ‘근사한’ 쥰세이를 보여 주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오이로서의 진혜림에게는 도무지 빠져들 수 없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은 홍콩 배우라는 그녀는 영화 속 캐릭터로서도, 본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배우로서의 매력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영화의 줄거리만을 그저 무의미하게 좇고 있다. 아오이의 캐릭터로서는 적격인, 어두운 그늘이 배어 있는 그녀의 타고난 눈동자도, 마치 이 영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항변하는 듯 시종일관 불안하게 깜박거린다. 진혜림에 못지 않게 겉돌고 있는 것은 ‘메미’와 ‘마빈’ 역을 맡은 배우들. 그들은 소설과 달리 충분히 형상화되지 못한 캐릭터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불운한 인물들의 면모를 다만 히스테릭한 몸짓으로 표현해 내기 바쁘다.

나카에 이사무 감독은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를 효과적으로 압축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간결해진 내러티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캐릭터들이 영화의 적잖은 장면들에 서 만드는 왠지 모를 어색함과 균열까지 막아 내진 못한다. 그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그나마 쥰세이와 아오이가 사는 이탈리아 곳곳을 비추고 있는 이 영화의 탐미적인 화면들. 갈색톤이 입혀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들은 장면 장면에 엔야의 밝은 뉴에이지 음악이 깔리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한 화면들과 음악은 감독이 소설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했고, 무엇을 새로이 덧입혔는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장치들이다. 그는 소설의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삶과 사랑에 대한 멜랑콜리하고 철학적인 천착들은 포기하고, 남녀 주인공들의 그 10년 동안에 걸친 사랑의 엇갈림과 감격스런 재회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소설에서는 모호하게 처리되었던 두 사람의 결합마저, 단호하게 해피엔딩으로 바꾸면서까지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이루어지는’첫사랑에 대한 神話. 쉽게 사랑의 대상이 바뀌고, 사랑에 대해 뒤틀린 냉소를 던지는 우리들에게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순수하고 한곁같은 사랑에 대한 다소 고전적이고 순진한 믿음을 예쁘게 포장하여 드러낸다.

‘나는 우메가오카에 있는 쥰세이의 아파트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어지러울 정도로 즐겁고, 모든 감정이 응축된 농밀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우리는 둘 다 열 아홉 살이었고, 아직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야만적인 사랑을 했다. 야만적인, 자신의 전 존재로 서로에게 부딪치는, 과거도 미래도 미련없이 내던지는 그런 사랑을….’

다시 들춰본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의 이런 구절을 보고 문득 나는 생각한다. 내게 도 그런 사랑이 있었던가를.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았던 것도 같은 몽롱한 회상을 중단하며 다시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간에 사랑에 있어서 만큼 이제 나도 심플한 것이 좋다. 심플한 남자, 심플한 방법…. 복잡한 것은 정말, 정말로 싫다.

4 )
gaeddorai
솔직히 지루하다   
2009-02-21 21:51
ejin4rang
원작에 비해 별로   
2008-10-16 09:40
callyoungsin
소설로 먼저 큰 감흥을 받아서 그런지 영화는 좀 아쉬웠는데 그래도 좋았다   
2008-05-22 15:49
ldk209
일본영화.. 참.. 애잔한 느낌...   
2007-01-2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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