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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기억하는 감성의 주술
밀레니엄 맘보 | 2003년 5월 30일 금요일 | 박우진 이메일

그 곳은 온통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넘실대는 긴 터널이다. 머리카락을 펄럭이며 종종 걷는 한 여자를 카메라가 뒤따른다. 슬로우 모션으로 부드러워진 움직임의 리듬감. 공간과 인물이 뒤엉켜 문득 하나의 흐름처럼 보인다. 그녀가 굽이치는 시간 속을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나직이 흐르는 독백. “...이것은 막 밀레니엄을 맞아 세계가 축제로 들떠 있던 2001년, 10년 전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지극히 감성적인 오프닝.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접했다면 이 영화의 감독이 허우 샤오시엔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거리를 두고 머물러 잠잠히 지켜보곤 했던 그의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흔들리고 다가가고 멍멍해진다. 때론 생뚱맞은 전자음이 귀를 거스른다. 분명히 변했다.

그는 이전과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역시. 2000년대 갓 스무 살 무렵의 여자아이, 그것도 16살 때 마약을 시작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남자친구와 동거에 들어간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우기에 예순에 가까운 그의 나이가 좀 버거운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영화에는 '호기심'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요즘 애들이 궁금한 나머지 그들의 삶에 밀착하는.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처럼 군다. 바에서 파티에서 애들과 어울려 복닥거리고 신기한 눈치로 마법을 구경한다. 비키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다툴 때는 고개를 휘휘 돌려 그들을 번갈아 주시한다. 가끔은 너무 가까워서 초점이 흐려진다. 이 풍경이 너무 낯설다, 도대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지 모르겠다는 듯.

몇 번이고 허탕을 치면서도 이 노장 감독이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광경에 집착하는 건, 비키가 대만의 현재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대만은 변했고, 변하는 중이다. 중요한 건 이해라는 '결과'가 아니라 호기심이라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밀레니엄 맘보>는 허우 샤오시엔의 과거 영화 작업에서 훌쩍 동떨어진 변화가 아닌 일종의 변주로써 이어진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늘 맥락 속에 있다. <펑쿠이에서 온 소년>에서 <연연풍진>에 이르는 ‘성장기 4부작’, <희몽인생>에서 <남국재견>에 이르는 ‘대만현대사 3부작’ 등 그의 전작들은 마치 시리즈처럼 일련의 흐름을 갖고 있었다. 영화들의 내부적 연속성은 외부로 확장되며 좀 더 풍부한 함의를 포괄한다. <비정성시>의 가족이 2차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역사와 사회적 상황이 개인사에 스며드는 것이다. 거시사와 미시사는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 영향을 미쳐왔다. 등장 인물들은 개인이었지만 역사를 대표했다. 그리하여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그것을 잉태한 채 자체적인 맥락을 형성하며 스스로 ‘역사’가 되어 왔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진부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사실 술과 마약이 찌들어 방황하는 젊음은 그다지 신선한 발상이 못 된다. 그러나 이 닳고닳은 이야기는 감독의 “이 영화가 ‘현대 3부작’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한마디와 맞물려 특별해진다. 앞으로 10년 동안 일어날 또 다른 역사의 출발이다.

영화를 끌어가는 비키의 나레이션은 젊음을 '기억'한다. 기억은 멀다. 비키는 종종 자신을 '그녀'로 지칭한다. 그건 거리감이다. 현재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비키로 나타나는, 한 사람의 내면적 거리일 수도 있고 다투고 헤어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비키와 하오하오의 관계로 나타나는, 좀처럼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간의 거리일 수도 있고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으로 나타나는, 세대간의 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기억은 아득하지만 명료하다. 젊은이들을 감싸고도는 몽환적이고 강렬한 색채처럼. 이제는 조각난 기억의 단편들이 순서도 없이 불쑥불쑥 섬광 같이 스쳐 간다. 이렇게 영화는 너무나 인간적인 방식으로 젊음의 기억을 다룬다. 그리하여 <밀레니엄 맘보>는 영화 속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영화가 기억할 때, 우리 역시 기억한다. 또 다른 기억을 부르며 암전될 때, 우리 안의 젊음 역시 함께 깜박인다. 불안하고 순진하고 막막한, 못내 아름다운 젊음이 거기 있다.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이며, 고집 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시선이 거기 있다. 비틀거리는 젊음은 영화 속에서 되풀이되어 왔고, 영원히 되풀이 될 것이다. 그것이 역사가 순환하고 변주되는 이치이자 어쩌면 진부하고 타당한 진리다.

1 )
ejin4rang
이쁘다   
2008-10-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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