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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록큰롤 소년의 성장영화 (오락성 5 작품성 6)
존레논 비긴즈 : 노웨어 보이 |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 양현주 이메일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의 넘버는?’ 전세계인 누구에게도 물어봐도 자기 나름의 넘버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틀즈란 우리에게 그런 밴드다. 시대의 아이콘이자, 청춘의 책갈피이고, 음악과 영화, 심지어 문학의 뮤즈다. 그래서 비틀즈는 영화 속에서 음악으로, 소재로 꾸준히 재생산된다. 드라마틱한 성장기, 멤버들 사이의 불화, 고공행진한 명반들, 보이 밴드의 사회참여, 정치적 발언, 그리고 암살 사건까지. 태풍의 눈과 같았던 비틀즈의 삶은 영화화하기에 매혹적인 소재가 넘쳐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존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이하 ‘<노웨어 보이>’)는 비포 존 레논의 이야기다.

<노웨어 보이>는 리버풀의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라난 존 레논의 청소년기를 비춘다. 존 레논은 바흐와 차이코프스키만을 음악으로 인정하는 이모 미미의 손에서 부모의 부재와 상실이라는 아픔을 품고 여린 감성을 반항으로 덧칠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록앤롤은 당시 젊음이들에게는 해방이자 자유를 상징하는 패션이나 다름없었다. 영화는 그가 구레나룻을 기르고 벤조를 연주하게 되는 과정과 어머니에 관한 애증에 집중한다. 그러니까 한국 개봉명이 시사하듯 존 레논 프리퀄이 되는 셈이다.

‘Imagine’을 통한 평화에 대한 염원, ‘Love’의 멜랑콜리한 시적 감성에서 감히 상상이 안 가지만 존 레논이 리버풀 시절 꽤나 문제아였단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비틀즈의 전기영화들이 하나 같이 명성 위에 스러져갔던 화양연화를 필름에 새겨 넣었다면 <노웨어 보이>는 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바로 직전에 집중한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웨어 보이>는 비틀즈 전기 영화같지만 본격적인 비틀즈 영화도 아니고 음악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존 레논이라는 인물의 청소년기에 뿌리를 내린 성장영화다. 여기서 존이라는 이름을 빼면 한 록큰롤 청년의 가족 애증사 한 페이지라고 함축할 수도 있다.

특히 영화가 집중하는 순간은 어린 존이 어머니 줄리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음악에 물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모부의 장례식 이후로 지척에 살고 있던 줄리아와 조우하고 제2의 유년기를 맞이하듯 함께 어울려 다니며 로큰롤의 수혜를 받는 과정은 영화 속에 흥겹게 살아있다. 어머니를 향한 노래 ‘Julia’를 떠올리지 않아도 고아나 다름없이 커온 그의 성장기를 떠올려보면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넘겨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존 레논이 주인공이지만 그와 비틀즈의 유명 넘버들은 교묘하게 비껴나 있다는 것이다. 러닝타임 내내 비틀즈라는 단어도, 오프닝을 제외하면 비틀즈의 음악 한 자락도 나오지 않는 영화다. 대신 그 자리를 엘비스 프레슬리와 당시를 풍미했던 스트리밍 제이 호킨스, 버디 홀리 등의 초기 로큰롤 넘버들이 채운다. 그리고 존 레논 가족 애증사가 8할을 차지한다. 이것은 비틀즈 영화로서는 특이한 변주다. 그래서 어쩌면 평범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언 소프틀리의 <백비트>가 비틀즈 주요멤버가 아닌 베이스 주자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를 주인공으로 삼아 교묘히 전형성을 비껴갔던 것처럼, <노웨어 보이>도 모두가 알고 있던 비틀즈의 명성기 이전으로 우회한다.

영화는 존의 이부동생인 줄리아 베어드가 쓴 책을 기본으로 한 시나리오를 영국 포스트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리더 이안 커티스 전기영화 <컨트롤>을 집필했던 맷 그린할프가 맡았고, 영국 여성감독 샘 타일러 우드가 장편 데뷔로 메가폰을 잡았다. <킥 애스: 영웅의 탄생>에서 B급 컬트 코미디 루저로 얼굴을 알린 아론 존슨이 시니컬한 십대 소년 존 레논의 현신이 되었고, 아역배우 토마스 생스터가 섬세한 소년 폴 매카트니로 보조를 맞췄다.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성장영화의 외피를 입고 있는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구절은 사실 주인공 존 레논보다는 어머니인 줄리아에게서 드러난다. 앤 마리 더프의 연기는 존의 음악적 고통이자 원천이 되는 어머니 줄리아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채색한다. 쾌락주의자이지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복잡다단한 여성성으로 존 레논 프리퀄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이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런던 비평가협회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으로 보상받았다.

<노웨어 보이>는 마지막까지 비틀즈에 관한 드라마틱한 설정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폴과 존의 운명적인 만남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록큰롤 멜로디 위에 태어난 리버풀 보이들의 고뇌도 담겨 있지 않다. 한편 존과 줄리아 사이의 불편한 긴장감은 <세비지 그레이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급진적이기도 하다. 사실은 감독이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부분은 존 레논보다는 줄리아라는 숨겨져 있는 어머니의 존재와 여성성에 대한 탐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스크린에서 울려 퍼지는 비틀즈의 유명 넘버들을 기대하고 간 음악 팬들에게는 적지 않은 당혹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비틀즈 아니 존 레논 최초의 성장영화인 것이다.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비틀즈의 팬이라면...(많이 봐온 관람가라면 그것은 기분 탓)
-'I Wanna Hold your hand'도 'Let It Be'도 들을 수 없는 과감한 비틀즈 영화
-아론 존슨보다는 앤 마리 더프의 발견(제임스 맥어보이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덤)
-음악영화도 전기영화도 아닌 모호한 지점에 서 있다
-우리가 흔히 비틀즈 영화에게 기대하는 어떤 것을 뺀 나머지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인 ‘비포 존 레논’이라는 강렬한 캐릭터 구현에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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