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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더 이상 칭찬이 아니다 (오락성 5 작품성 5)
서서 자는 나무 | 2010년 12월 3일 금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서서 자는 나무>는 한 소방관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그린 ‘착한’ 영화다. 어린 싹으로부터 시작해서 다 늙어 밑둥까지 사랑하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주었던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이 남자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은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

뇌에 종양이 자라고 있는 소방관 구상(송창의)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하지만 구상이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건, 자신이 죽고 나면 남겨질 아내 순영(서지혜)과 어린 딸 슬기(주혜린)의 앞날이다. 특히 7년 전 사고로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순영은, 세상물정 모를 어린 나이에 구상에게 시집와 살림만 하며 산 철부지 주부. 그런 아내를 생각하니 구상의 걱정은 더 커진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병을 숨기며 투병 생활을 하던 구상은 우연히 동생처럼 아끼는 동료 소방관 석우(여현수)가 순영을 오래전부터 짝사랑해 왔음을 알게 된다. ‘석우라면 순영과 슬기를 가족처럼 지켜 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에 구상은 석우에게 자신이 죽으면 아내와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화재가 발생하고 석우는 화재 현장으로 뛰어든다.

콩쥐보다 팥쥐가 더 조명 받는 이 시대에, ‘착하다’는 말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니다. “난 나쁜 남자”라고 버젓이 노래 부르는 가수가 있고, 제목부터 <나쁜남자>를 표방한 드라마도 있다. 이 시점에 나온 <서서 자는 나무>는 좋게 말하면 고집이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현 시류를 타지 않은(?) 게을러도 한참 게으른 영화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착하더라도 극 구성이 전형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한다면, 이 영화의 ‘고집’은 ‘자신만의 주관’으로 정정 평가받을 테니 말이다. <서서 자는 나무>의 진짜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영화는 신파 멜로의 공식만 고루하게 답습할 뿐, 그 만의 개성을 보이는데 실패한다. 마지막 대형 화제씬은 감동을 위해 급조한 인상이 역력하고, 반대로 이별을 앞 둔 부부의 모습은 애절함을 느끼기엔 너무 밋밋하다.

주인공 송창의는 이 영화 촬영을 모두 마치고,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작업에 들어갔다. 영화로서는 후반 작업 기간 동안 <인생은 아름다워>로 스타덤에 오른 송창의의 인기가 반가울 거다. 하지만 드라마를 발판삼아 더 높게 도약 하고자 했을 송창의로서는 뒤늦은 이 영화의 개봉이 그리 큰 도움은 못 될 듯하다. 고뇌하는 남자의 심리를 표출해 보겠다는 연기 의욕이, 안일한 연출에 묻혀 버렸다. 서지혜의 경우, 아쉬움은 더 크다. 주위에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처럼 떼쓰는 게 공항장애 증상은 아닐 게다. 인공적인 연기가 내내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서서 자는 나무>는 소방방재산업도시로 선정된 강원도 삼척시와 강원소방본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촬영됐다. 삼척시로서는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는 자신들의 도시를 홍보하겠다는 목표가 있는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이 영화의 성취도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대형 화제씬에서 드러나는 구상의 희생적인 모습은 그가 (미련할 정도로)착한 남자라는 걸 부각할 뿐, 그것이 소방관들의 고뇌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결국 <서서 자는 나무>는 홍보영화로도, 영화적으로도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그나마 의미를 찾는다면, 각박한 시대에 나온 가슴 따뜻한 착한 영화라는 건데, 앞에서도 말했듯 착한 게 칭찬받는 시대는 지났다.

2010년 12월 3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송창의의 또 한 번의 슬픈 사랑?
-제주도와 삼척시의 시원한 풍광
-애가 둘 나온다. 딸로 나온 어린이 한 명, 공항장애를 귀여움으로 표현한 서지혜 어린이 한 명.
-착하고 착하고 착하고 또 착한 신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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