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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를 놈의 행동 관찰기
질투는 나의 힘 | 2003년 4월 18일 금요일 | 서대원 이메일

만약에 이런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이 사귀던 여친이 갑작스럽게 노땅의 중년남자를 사랑하게 돼 헤어지자고 선언한다면 또 그러고 나서 자신이 새롭게 알게 되어 마음을 주게 된 연상의 여인이 동일한 놈 그 아저씨한테 여지없이 혹 하고 넘어가 자신의 처지가 낙동강 오리알 꽥!꽥! 신세가 된다면.

아마도, 호떡집에 불난 것과 같은 이런 대 참사를 맞닥뜨린다면 십중팔구 그 끓어오르는 분을 삼키지 못하고 내가 죽던가 그 노땅이 죽던가 양단간 결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난처한 상황에 교착돼 있는 영화의 이원상(박해일)은 불구대천지 원수이자 연적인 그를 향해 이상한 방식으로 그 질투를 발산한다. 상당히 의뭉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투는 나의 힘>은 그들의 촘촘한 관계와 알 듯 모를 듯 숨바꼭질을 벌이는 원상의 내면의 변화 과정 속으로 우리를 자꾸 채근하며 불러들이는 기묘한 울림이 있는 영화다. 주인공들이 처해 있는 입장에 자신을 호명해 위치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에 영화 속 인물들을 소환시켜 대입시켜 보기도 하고. 이처럼 알쏭달쏭 한 함수관계에서 결국 도출되는 것은 영화 안에서 가시적으로 형형하게 보이진 않지만 거세게 흐르고 있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의 흐름들이다. 공간과 공간 사이의 흐름을 보여주지 않고 바로 점핑하는 생경한 영화의 형식 속에서도 이 욕망과 감정의 격랑은 차단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기번식을 하며 그 닫힌 공간 속으로 스며든다.

더더욱 이 영화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것은 이 같은 사람 속내의 움직임들이 아주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생명력 있게 꿈틀거린다는 사실이다. 이원상, 박성연(배종옥), 한윤식(문성근)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와 원상을 끔찍이도 짝사랑하는 혜옥(서영희), 이 네 사람이 쳐 놓은 그물망에서. 그러기에 <질투는 나의 힘>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튀어나올 수가 없다. 낯설고 별다른 것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 자신의 내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원상의 정의할 수 없는 행동방식이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자신의 매혹의 대상인 여자를 앗아간 윤식의 휘하로 들어가 불타오르는 적개심을 펼쳐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향해 선망 어린 경외심을 헌사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심지어는 그 두 남자가 동성애로 나아갈 것 같은 기분마저 드니 말이다. 그래서 종국에 이르면, 원상과 윤식 이 두 사람은 동거 아닌 동거에 접어들게 되고 이내 성연과 혜옥의 설자리는 암암리에 유명무실하게 된다. 대신, 영화는 그녀들이 부재한 자리에 소소하게나마 윤식의 딸을 마지막에 데려다 놓는다. 원상은 필시, 그 소녀의 곁에 머무르면서 또 다른 수수께끼와 같은 관계로 불안한 청춘의 욕망의 매듭을 엮어 나갈 것이다.

낯익은 또는 통속적인 일상이라는 화두 속에서 낯선 화법을 거침없이 내지르며 때로는 실없는 웃음을 유발하고 때로는 신경세포를 민감하게 자극시키며 보는 이들로부터 저항감을 유발시키는 영화는, 우리가 흔히 겪어왔던 인간 맺기의 방식의 틀을 매번 벗어난다. 그럼으로써, 보는 이들은 내심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경계 허물기의 인간 관찰기를 통해 자신이 지각하지 못한 사이 덧없이 소멸해간 그 무엇을 다시금 복기하며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것도 따뜻하게 보듬어 안으면서 말이다.

때문에 지금 한국 영화의 주류 코드로 최전선에 말뚝 박은 코미디 장르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질투는 나의 힘>이 특별해 보이는 것이며 특별해 보이는 것만큼의 힘도 존재하는 것이다.

2 )
gaeddorai
2번 보니까 더 좋드라   
2009-02-22 16:36
ejin4rang
질투는 너의 힘   
2008-10-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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