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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지 못한다 (오락성 5 작품성 5)
가비 |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고종(박희순)의 아관파천으로 나라가 뒤숭숭하던 1896년. 러시아에서 커피와 금괴를 훔치던 따냐(김소연)와 일리치(주진모)는 러시아 군에게 잡혀 총살 위기에 놓인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건, 조선계 일본인 사다코(유선). 사다코는 따냐와 일리치에게 고종 암살 작전에 가담할 것을 종용하고, 두 사람은 생명 부지를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후 따냐는 고종의 바리스타로, 일리치는 일본 장교 사카모토 유스케로 변신한다.

<가비>의 출발은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다. 각색을 거치면서 원작의 느낌은 많은 부분 탈색됐다. 김탁환의 소설을 미리 접한 이들에겐 반갑지 않을 일이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간극은, 여주인공 따냐 캐릭터다. 소설 속 따냐는 <타짜>의 정마담(김혜수) 뺨치는 희대의 사기꾼이다. 반면 스크린 속 따냐는 역사 현장에 위태롭게 내몰린 비극의 여인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이건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2007년 개봉한 <황진이>다. <가비>는 장윤현 감독의 5년 전 작품 <황진이>와 닮아있다. ‘16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여인 황진이’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영화가 내놓은 ‘지고지순 순정녀 황진이’는 아쉬운 캐릭터였다. 이 아쉬움이 <가비>로 이어진다.

물론 감독의 재해석이 허락된 세계에서 원작의 흔적만 찾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소설을 지우고 바라보는데, 이 역시 만족스럽진 않다. <가비>에는 사건은 즐비한데, 감정은 안 보인다. 인물들의 심리변화가 충분한 납득을 구하지 못한 채 달리면서 극 몰입도를 현격하게 떨어뜨린다. <가비>가 잘못 사용한 또 하나의 재료는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다코가 (조국이었던) 조선에 품은 분노, 고종이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겠다며 찾아온) 일리치에게 느낀 감정, 일리치의 고종을 향한 질투. 이 많은 감정들이 씬과 씬의 유기적인 흐름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사 하나로 너무나 쉽게 툭 던져진다. 이 가운데 따냐와 일리치의 애달픈 사랑은 절정에 오르지 못한 채 식어버린다. 따냐-일리치-고종의 삼각관계도 끓는점 아래에서 미지근하게 머문다.

김소연, 주진모, 박희순은 각자에게 할당된 임무를 무리 없이 소화한 느낌이다. 그러나 삐걱거리는 작법 안에서 빛날 기회를 잃었다. 반면 일부 조연들의 국어책 읽는 듯한 연기는 아쉬움이다. 외국 배우들의 연기 또한 지적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흉내내기(혹은 재연)에 가깝다. 영화가 흡사 <서프라이즈> 같다는 말들이 나오는 데에는, 이들의 공(?)이 크다. 시대 배경상 외국인들이 많이 등장해야하고, 이를 완벽하게 소화할 배우가 부족한 건 이해하지만 그것이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배우의 연기가 안 된다면, 디렉팅을 더 강하게 몰아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설픈 연기가 낳은 몰입방해의 피해는 관객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지고 말았다.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따나의 의상을 보는 재미 솔솔
-연기 잘하는 조연들 다 어디 간 거야~
-영화를 보고나서, 커피가 생각나지 않았다. 흠...
2 )
tprk20
개봉날 어머니랑 보고 왔습니다..다 좋은데...정작 중요한 것을 잃은 느낌..
진수성찬 밥상에서 중요한 밥은 설익은 밥..그래서 그 맛있는 반찬과 국들은 소용없네~~....
  
2012-03-19 01:15
lim5196
왠지 그냥 묻힐거 같네요;..   
2012-03-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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