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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과 단점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오락성 6 작품성 6)
혈투 | 2011년 2월 22일 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출연 배우로 인해 관심 받는 영화는 많다. 유명 감독의 이름으로 주목받는 작품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신인 감독의 작품이 이슈를 끄는 일은 드물다. <혈투>는 그 드문, 세 번째에 해당하는 영화다. <혈투>로 데뷔하는 박훈정 감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를 불러 올 필요가 있다. 작년,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악마를 보았다>와 ‘류승완의 터닝포인트’라 평가받은 <부당거래> 모두 박훈정의 시나리오에서 탄생한 영화들. 그에게 붙은 ‘2010 충무로 블루칩’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혈투>에 대한 관심지수를 자연스럽게 높여 놓았다.

명나라의 강압으로 청나라와의 전쟁에 파병된 조선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패배하다. 그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조선군 장군 헌명(박희순)과 도영(진구)은 만주벌판 한 가운데 객잔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조선군 탈영병 두수(고창석)를 만난다. 폭설로 객잔에 고립된 세 사람. 그런데 이상하다. 서로 도와도 모자를 판에, 견제하느라 바쁘다. 두수는 자신의 탈영사실이 발각될까 노심초사하고, 죽마고우인 헌명과 도영은 둘 사이의 숨겨둔 과거를 알아가며 점점 더 엇갈리기 시작한다.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훈정 감독의 관심은 이번에도 남성들 간의 물고 물리는 대결이다. <혈투>가 앞선 두 영화와 다른 게 있다면, 그 대결이 계급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무관이라는 자격지심으로 평생 2인자의 설움을 겪은 헌명, 몰락한 양반가의 자제 도영, 부패한 양반들로 인해 억울한 군역을 치러야 하는 두수는 개인인 동시에, 그 시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당파싸움에 이용당한 시대의 희생자들이기도하다. <혈투>의 세 남자들에게서 이라크 아르빌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 군인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등 돌렸다 다시 손잡는 게, 정치야”라고 눙치는 대북파 실권자 ‘노신(김갑수)’의 모습은, <혈투>가 그리려는 혈투가 단순한 혈투를 넘어 ‘계급과의 혈투’로 확장 돼 있음을 암시한다.

박훈정 감독은 시대의 수레바퀴 속에 함몰된 세 사람을 좁은 객잔 속에 가둬놓고, 과거 회상을 통해 이들의 ‘어찌 할 수 없는’ 관계를 벗겨낸다.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관계를 역추적 하는 구성은 극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한다.(귀곡 산장을 연상케 하는 객잔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미스터리함을 살린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회상 씬을 썩 매끄럽게 다루지 못한다. 지나친 시점 변경이 극의 흐름을 적지 않게 방해하고, 의도된 편집이라고 보기에는 급작스럽고 투박한 장면 전환이 자주 눈에 띈다. 잦은 시점 변경과 함께 아쉬운 건, 과한 사운드, 넘치는 대사다. 특히 영화 마지막 적군이 세 사람이 싸우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장면은, 관객의 수준을 너무 낮게 잡았다는 인상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에서 특기할 말한 건, 언어다. 이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헌명이 정통적인 사극말투를, 도영이 일상어에 가까운 구어체를, 두수가 <평양성>에 나올법한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식인데, 여기에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 된다. 일단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기 위함이었다’는 감독의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각각의 개성이 잘 섞였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이는 가깝게 <방자전>의 송새벽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방자전>에서 송새벽의 독특한 언어는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을망정, 영화의 호흡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개성이 영화를 감칠맛 나게 한다는 평도 받았다. 하지만 <혈투> 속,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언어 톤은 도드라지는 동시에, 관계의 호흡마저도 튀게 한다.

결과적으로 <혈투>는 장점과 단점을 동전의 양면처럼 이식한 영화다. 박훈정이라는 이름 때문에 영화는 기대를 받지만, 동시에 높은 기대치를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영화의 특징인 잦은 과거회상과, 대사 톤 역시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안고 있다. 관객들이 어느 쪽 편에 조금 더 손을 들어주느냐가, <혈투>의 성패를 가르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시나리오 작가의 감독 데뷔작!
-<부당거래>의 사극버전이 궁금하다면?
-조선시대에도 자이툰 부대가 있었어?
-잦은 회상씬, 과도한 음악, 넘치는 대사
-제목 <혈투>만 두고 영화 이미지를 상상하면, 안 된다. 호흡 참, 느린 영화
2 )
cdhunter
리뷰 중 이 말이 가장 공감된다.

배우들의 연기에서 특기할 말한 건, 언어다. 이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헌명이 정통적인 사극말투를, 도영이 일상어에 가까운 구어체를, 두수가 <평양성>에 나올법한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식.   
2011-02-26 00:57
mizniharasi
정말 잘 표현한 리뷰네요. :) 제가 느낀 생각과 감정들이 이곳에 ㅋㅋㅋ
  
2011-02-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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