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거대한 게 등장해야 액션이 만들어진다. 그 거대한 게 무엇인가 하면 비행기, 고층빌딩, 넓은 평원 등등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다 맞는 말이다. 달리 말해, 영화가 성공하려면 익숙한 재료들을 가지고 더 독특한 래시피로 관객의 입맛을 땡겨야 한다. 존 무어 감독의 <피닉스>도 비행기 어드벤쳐라는 평범한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했지만 특이하게도 '사막'을 데코레이션으로 이용한 영화다.
켈리 일행은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유전을 찾는 석유회사의 직원들이다. 그러나 뿜어져 나오라는 석유는 못 찾고 어느 날, 버려진 사막 시설을 회수하고 철수시키는 건방진 프랭크(데니스 퀘이드)와 그의 동료의 방문을 받는다. 뻔하다. 그들이 왔다면. 회사는 켈리일행을 철수시키고 유전 검사지역을 폐쇄 시킬 계획을 실천에 옮길 것이다. 서둘러 떠나는 여행인만큼 일행은 자신만의 징크스를 말하면서 은근히 이번 철수 여행의 불행을 암시한다. 배경이 사막이니 곧 거대한 토네이도와 함께 모래 폭풍은 'c-119'호를 집어 삼킨다. 이때부터 '사막에서 살아남기'라는 특강이 주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비행기를 집어 삼키는 첫번째 모래폭풍의 위합은 생각보다 드세지 않았다. 은근히 다음 모래폭풍장면에서 더 리얼리티하게 더 긴박감 넘치게 하려고 그러나 보다 기대해 봤건만 결론은 더 이상은 없다는 냉정한 외면뿐이다. <피닉스>는 사막에서 가장 무서운 자연 재앙으로 알려진 모래폭풍을 주소재로 다룬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양념일 뿐이고, 사막의 더위와 고립감을 이겨내는 인간 의지의 시험이 기본 골격을 이룬다.
이것을 미리 숙지하지 않고 본다면 사막어드벤쳐 영화를 표방한 <피닉스>의 현란한 광고 문구에 감출 수 없는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이기적이고 오만했던 프랭크가 켈리 일행과 한 팀을 이루면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잃었던 인간애를 되찾는 과정에 영화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 사이에 거짓과 불신의 감정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그러나 기대했던 모래폭풍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리기에는 인간 군상들의 드라마도 부진을 면치 못한다.
살갗을 태우는 태양빛의 공포도 피부로 와닿지 않고 고립된 인간들이 느끼는 절망감도 디테일하지 못한 데, 상황 상황마다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는 팀웍도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도 <피닉스>의 주제는 외부와 차단 된 공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며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서로를 믿는 것이라는 고전적인 조언 안에 있다. 그렇다면 <피닉스>는 정말 '꽝'인 영화일까? 이런 의문에 답을 바로 말한다면 '아니다'다.
CF와 영화 <에너미 라인스>로 할리우드의 영화 크기에 기죽지 않을 만큼의 경험을 쌓은 존 무어 감독은 영화 곳곳에 이미지로 승부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험적인 장면들을 삽입했다. '점프컷'과 비스무리한 화면처리도 눈에 띌 뿐더러, 마치 싸구려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실종 장면처리도 언발란스 하지만 묘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재미'를 위해 영화를 만들어겠지만 감독의 '장난끼'와 '재능'을 감추지 않은 장치 때문에 <피닉스>는 기존의 재난 영화와는 '보송보송'한 그 느낌이 다르다.
비행기와 사막 그리고 감독의 실험정신이 어루러져 한껏 맛을 뽐내볼려고 했지만, <피닉스>는 적응되지 않은 독특한 맛 때문에 관객의 군침을 돌게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입맛 따라 볼 수 있는 무수한 영화들이 다양하다 못해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가끔 새로운 영화에 자신의 혀를 대보는 것도 그리 손해 볼일 아니다. 그래야 진짜 알짜배기 영화를 구분할 줄 아는 '심미안'도 생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