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마블 코믹스의 역작 『데어데블』이 영화화 되었을때, 데어데블의 파트너 '엘렉트라'가 가진 흡입력은 예상외의 성과였을 것이다. 그녀가 쌍칼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색다른 섹시미가 어른거렸고 잠깐 구술로 등장하는 그녀의 과거사에 풍부한 사연과 상상력이 존재함을 알았다.
할리우드에서 상업적인 가능성은 결코 상상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롭 바우만 감독은 <데어데블>에서 엘렉트라를 연기했던 제니퍼 가너를 고대로 캐스팅 해 그녀만의 <엘렉트라>를 만든다. 엘렉트라를 한번이라도 연기해 봤기에 그녀를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제니퍼 가너의 엘렉트라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상술에 의거한 결론이다.
‘엘렉트라’(제니퍼 가너)는 선과 악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존재이다. 이분법적인 세상의 논리 위에 엘렉트라는 경계에 위치하면서 오로지 ‘살인’만을 업으로 하는 모호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한번의 ‘죽음’으로 인해 한 번의 새로운 ‘삶’을 얻게 되지만, 그녀의 파워는 타인을 죽이는 데 소모된다. 이야기는 힘을 가진 자의 외로움과 강박증에서 출발하고 거기에 ‘모성애’를 덧칠해 엘렉트라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엘렉트라는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가 그랬던 것처럼 ‘영웅’ 아니면 ‘악역’(조연)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그가 단독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탄생되었다면 모호했던 캐릭터의 역할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 중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또한 남성 주인공의 파트너나 볼거리로 일임을 다했던 과거사는 지우고 새로운 (여성) 영웅으로서의 자질을 검증 받기도 해야 한다. 그 자질이라 함이 ‘모성애’다. 오로지 새로 얻게 된 삶을 살인으로만 채우던 그녀가 마크와 애비 부녀를 보호하는 위치에 오르자, ‘살인’의 당위성이 성립된다.
즉, 영웅은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녀는 다른 영웅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보호하고 위험으로부터 구출해주는 임무를 자발적으로 떠 맏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선과 악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존재, ‘엘렉트라’는 진정한 영웅의 ‘파워’를 얻게 된다. 설사 그 능력이 우연과 행운으로 얻은 것처럼 어이없게 영화 안에 묘사되었다 치더라도 그 의도만은 명백하다.
사실, <엘렉트라>가 가진 내러티브의 의도가 요렇다고 설명하는 일은 쓸데없는 짓이다. 영화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부한 소스를 제공하기는 하나, 악당 ‘핸드’ 패거리의 범상치 않은 능력이 주인공 엘렉트라를 압도하면서 부터 불편해진다. 캐릭터의 안배를 제대로 못한 것이 재미 반감의 결정적 요인이다. 또한, 빨간 옷을 입고 ‘핸드’의 우두머리 키리기(윌 윤리)와 대결하는 모습은 ‘대결’이 아니라 달려드는 것처럼 보여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중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모자른다.
명백히 보이는 의도만큼이나 확실히 보이는 실수들. 이것은 <데어데블>에서 증명한 엘렉트라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한 데서 온 ‘자만’이다. 상상력을 보탠다고 해서 극 전체를 이끌 수 있는, 주인공은 탄생되지 않는다. 거기에 색깔을 입히는 보안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영화는 ‘여성’이라는 성차적인 한계성에 엘렉트라를 묶어 버려놓고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우기기만 한다. 상상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웅의 색깔을 붉은 색으로 단정한 치명적인 실수는 모르고 있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