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들은 굳이 삶이니 인생이니 말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진리를 담아내는 경우가 있다. [시암 선셋]은 그런 영화다. 불운을 몰고 다니는 남자 페리(라이너스 로치 분)의 여정을 쫓다보면 한치 앞의 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영화에 투영된 삶의 의미를 읽어내게 된다.
마치 TV시리즈 'ER'에서 보았던 것 같은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시작된 영화는 평이한 중산층 남자의 행복한 삶을 비춘다. 아름다운 아내와 안정된 직장, 그의 그러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사건은 황당하게도 하늘에서 떨어진 냉장고로부터 시작된다. 화물기에서 잘못 떨어진 냉장고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주인공 페리의 불운은 이를 필두로 끊이지 않는다. 멀쩡히 길을 가던 트럭이 집으로 돌진을 하는가 하면, 그와 대화를 나눈 노파는 계단을 구른다.
폐인이 되어가던 그는 우연한 행운(어찌보면 계속될 불운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행운만은 아닌)으로 호주대륙으로 여행을 가게 되지만 불운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런 지진에, 사막의 침수, 목 매단 시체와 버스전복사고 까지, 이 기이한 우연(?)들은 그를 히스테릭한 상태로 몰아가지만 이상하게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점점 즐거워진다.
호주사막을 횡단하는 화면의 색감은 더없이 아름답고, 앞서 말했듯 촬영과 편집은 유려하다. 배우출신이라는 감독의 이력이 말해주듯 배우들은 기이한 캐릭터(주인공을 비롯, 스토커같은 여자의 남편, 엘비스 흉내를 내는 무명가수, 불친절하고 괴팍스런 버스기사,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가족들, 히피같은 모텔주인까지 정상적인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를 잘 소화하고 있다. 덕분에 관객은 '사체유기'라는 엄청난 범죄 앞에서도 쉽게 배우들의 행동에 동조하게 된다.
우연에 기대어 모든 사건이 풀려나가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어색함을 느낄 틈은 별로 없다. 속도감 있는 사건의 전개와 예의 멋진 화면들은 관객에게 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 뒤통수 치듯 엽기적인 발상의 사건들을 따라가며 웃기에도 벅찰 뿐이다.
하늘에서 냉장고와 세탁기가 비오듯 떨어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음에 행복해 하는 주인공처럼, 관객은 극장을 나서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어쩌면 인생은 그렇게 놀랍고 황당한 일의 연속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아니 조금만 낙관적인 시각을 가진다면 그리 두렵지 않은 것일테니까.
'시암 선셋'-시암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삶의 단면을 읽고 싶다면, 애인의, 가족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아보자. 의외성과 엽기성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속에 체현되는, 신비롭기만 한 삶의 진리를 마주하는 일은 단언컨대 정말 유쾌한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