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철부지 시절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사람은 서서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스스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욕망과 탐욕을 조금씩 버리면서. 하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그런 탐욕과 욕망에 자유롭다.
그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왔기에 탐욕과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명인들이 오지를 체험하고 돌아오면 앞 다투어 내뱉는 말이 사람들이 너무 순하고 착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순수한 사람과 문명에 찌들대로 찌든 남녀 한 쌍의 오지에서의 표류를 그리고 있다. 비행이라면 눈감고도 해낼 자신이 넘치는 찰리. 몰래 아르바이트로 쌈짓돈을 챙길 욕심에 비행구역을 이탈한다. 우연히 마주친 에스키모 일행이 아픈 소녀를 병원까지 태워다 달라고 하지만 거절한다. 그들이 내미는 상아를 보고서야 못이기는 척 소녀를 비행기에 태운다. 하지만 비행기는 허허벌판의 설원에 불시착하고 소녀와 찰리는 겨우 목숨만 유지한다. 무전기도 다 망가지고 구조를 요청할 방법도 없다.
몸도 성치 않은 환자와 오지에 남겨진 남자의 살아남기. 앞으로 영화가 나아갈 방향은 뻔하다. 갖은 고생 끝에 결국 살아남아야 한다는 미션. 그리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녀와 찰리의 인간적인 화합. 예상대로 찰리는 문명세계에서 살아온 자신에게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며 허풍을 떨어대지만 사실 이런 야생에서는 소녀가 더 낫다. 그녀는 이런 야생이 곧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리는 자신이 가진 총의 위력만 믿을 뿐 소녀의 지혜나 그녀가 터득한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다. 문명이 곧 자신들을 구조해 줄 거라 굳게 믿는 찰리에게 소녀의 행동은 장난처럼 보일뿐이다.
나무를 긁어모아 각자의 불을 피우는 모습은 두 사람의 심리와 환경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소녀의 불은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크기다. 자연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취득하고 살아왔던 생활방식이 불의 크기에 그대로 나타난다. 반면 찰리의 불은 크고 화려하다. 내일을 준비하기 보다는 당장 과장되고 허풍떠는 문명인의 삶의 방식이 불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구조되기 틀렸다는 걸 직감한 찰리는 소녀만을 남겨둔 채 마을에가 사람들을 구해오겠다며 길을 나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허허벌판. 여기에 마지막 희망의 촛불처럼 여겼던 총마저 쓸모없게 되자 찰리는 야생에서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소녀에 의해 겨우 구출되는 찰리. 자신도 해내지 못하는 야생의 삶을 소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 그제서야 찰리는 서서히 문명을 벗고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인다. 사냥을 위해 하루 종일 엎드려 있어야 하는 기다림. 야생의 삶은 바로 그런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이란 걸 소녀를 통해 터득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찰리는 서서히 소녀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되고 약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감정까지 전달하게 된다.
병원에 가지 못한 소녀의 병은 더 악화되지만 찰리는 소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소녀는 죽음을 거부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눈치다. 광활하고 멋지게 펼쳐진 대지를 보면 우리가 탄성을 지르는 순간 그 곳에는 이런 치열한 삶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두 자연의 일부 아니던가? 그 광활한 대지에서는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 역시 하나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양식이 되는 동물들도 결국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하는 공생관계이기에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잡는 야생인들의 삶. 찰리는 소녀를 통해 비로소 문명인의 조급함을 버리고 자연인의 넉넉함을 깨우치게 된다.
어쩌면 소녀와 찰리의 가슴속에는 사랑이 싹트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약간 밋밋해 보이는 감정 선이지만 그것이 그들이 나누는 사랑이란 감정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문명인과 자연인, 오지에서의 살아남기 그리고 어느새 찾아온 둘의 사랑. 평범하면서도 고전적인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순수함에 끌리다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느껴진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순수한 마음처럼 깨끗하고 맑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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