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선물? | 2004년 10월 25일 월요일 | 협객 이메일

이른 새벽,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유모차를 타고 동네를 산책하는 쿠미코(조제/이케와키 치즈루)를 만난다. 그녀는 병명도 불확실한 이상한 ‘증상’ 때문에 걸을 수가 없다.

동네에 버려진 책들을 주워서 읽는 것이 쿠미코의 유일한 취미이며 뛰어난 요리솜씨는 그녀의 유일한 장기다. 툭툭 내뱉는 그녀의 말투로 인해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가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치더라도 ‘만남’ 자체에 의미를 새기지는 못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남학생처럼 츠네오도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섹스는 쿨하게 즐기고 싶은 그저 그런 새끼 늑대일 뿐이다.

밝고 건강한 남자와 불구인 것도 모자라 초라한 현실을 갖춘 여자가 만나 앞으로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 ‘만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영화의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섣불리 예측하기 싫어진다. 가을과 겨울 또는 겨울과 봄 사이, 그 어디쯤 있는 차가운 공기만이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감지했을 것이다.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만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캐릭터의 외적인 특징으로 말미암아 신파성 강한 멜로 드라마라 일 것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방금 내리막길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공포를 삭히기도 전에 조제는 유모차에 누워 츠네오에게 시퍼런 식칼을 들이밀며 난폭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기 때문에 가지는 험한 세상에 대한 히스테리 한 반응이라 치부하기에는, 그녀는 길가의 고양이와 꽃들의 안부가 궁금한 낭만적인 소녀(?)다. 우리가 길가에서 흔히 보는 것들에 의미를 두고 새벽 산책을 포기하지 않는 조제에게 츠네오가 느끼는 감정은 호기심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사랑”

금발 가발을 쓰고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을 읽는 쿠미코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 조제처럼 자신을 ‘조제’라 소개한다. 그러나 평생 그녀의 발이 되어준 할머니조차 쿠미코를 ‘조제’라 불러주지 않았다. 아마 조제라고 자신을 불러준 사람은 츠네오가 처음일 것이다. 순순히 자신을 조제라 불러주는 그 남자에게 그녀가 설레는 감정을 가진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시 “꽃”중에서) 사랑이란 이렇듯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불러줄 때 시작한다.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죽음”

츠네오가 어렵게 찾아준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미소 띈 모습을 보여준 조제. 베르나르와 조제의 대화를 읊으면서 보통의 친구들처럼 사랑의 떨림을 갈구하는 조제의 모습을 본 츠네오는 그녀에게 낯설지 않은 동질감을 발견한다. 그러나 딱 한번 같이 본 한 낮의 푸른 하늘은 조제의 신체적 장애로 말미암아 첫번째 헤어짐의 이유가 돼버린다. 감정의 색깔마저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멈춰버린 ‘만남’은 조제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계절에 따라 성질만 달리하는 바람처럼 지속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할머니의 죽음은 츠네오와 조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원인임과 동시에 사랑의 연속성에 대한 거북하지 않은 영화적 장치로써 작용한다.

조제는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츠네오에게 선물하면서 젊은 날의 삶을 공유한다.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이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호랑이를 보고 싶었다는 조제. 첫 만남에서 식칼을 휘두르던 당당한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잔뜩 겁먹은 모습이다. 조제에게 호랑이는 방안에서 주워온 책들을 읽으면서 세상을 간접경험 했던 좁은 현실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사람들과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의지로 해석되어 진다. 그녀에게 ‘사랑’은 ‘시작’의 의미가 강한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츠네오의 ‘사랑’은 여러 면에서 조제와는 다른 의미를 두고 있다.

밝고 건강한 남자라는 말은 달리 말해 너무 ‘평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츠네오에게 조제와의 동거는 이 사랑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이길 희망하고 또한 다짐했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 없이는 혼자 살아가기 힘든 조제를 위해 츠네오는 그녀의 발이 되어주길 망설임 없이 결정한다. 조제는 말한다. “내 곁에 영원이 있어줘”. 츠네오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죽음’으로 지속되어진 ‘사랑’이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색깔을 입혔음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건 그들이 자신의 젊음을 미끼로 삶을 자만했다는 뜻은 아니다. 각각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한 것만은 분명하니 말이다. 츠네오가 동정과 연민이 뒤섞인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했을 리는 없다. 조제와 헤어지고 옛 애인 곁으로 돌아가는 츠네오의 미소에서 사랑은 했으나 때로는 그 사랑에 도망가고픈 일상 속의 나약한 우리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타나베 세이코의 20쪽 분량의 짧은 단편 소설을 감독 이누도 잇신이 각색해 찍은 일종의 독립영화다. 신파적 감수성을 배제한 감독의 절제된 연출력은 물고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조제의 이별 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낭만적 사랑이야기로 포장하거나 확대하지 않는다. 츠네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선물하기 위해 바다를 버리고 떠나온 물고기라고 읊조리던 조제의 모습 때문에 ‘그녀가 혹시 바다로 돌아가지 않았을까?’라는 감상적 상상을 했다면 이것이, 관객의 희망이 섞인, 로맨틱한 공상으로 끝날 것임을 곧 알아차릴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조제와 츠네오의 이별의 묘사는 담담하고 일상적이며 간결하다. 일상의 결을 섬세하게 잡아낸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솔직한 그들의 모습이 지금까지의 어느 멜로영화보다 더 가슴 아프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감독의 연출력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고 주인공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라는 신파 멜로영화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멜로영화의 영화적 ‘진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독특한 ‘서정’ 멜로영화임이 분명하다.

7 )
mooncos
너무 좋았던 영화 여러번볼때마다 뭔가 다른것을 발견하게 되는느낌   
2009-05-17 20:16
callyoungsin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2008-05-16 13:45
qsay11tem
슬픔이 밀려오네요   
2007-11-23 13:49
ldk209
아.. 조제... 생각만해도..슬프다...   
2007-01-09 23:03
soaring2
잔잔한 영화였던 것 같아요^^   
2005-02-14 01:49
jju123
별로인데 이영화;;   
2005-02-07 21:30
khjhero
정말..보고싶은 영화중 하나...   
2005-02-02 16:24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