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에게 세월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어떤 이들은 젊음의 열정을 시간의 흐름을 통해 잃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가지지 못했던 노하우를 터득해가며 그 파이를 키워나가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시간의 고리는 족쇄처럼 그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성장시키기도 한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 브라운관에서 스크린까지
그런 양조위를 새롭게 재창조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후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가 공개되면서부터다. 벙어리 역할로 대사 한마디 없이 영화 속에서 슬픔 몸짓을 선보인 양조위는 오직 눈빛과 표정으로 완벽한 감정을 소화해 낸다.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한 <비정성시>는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양조위를 세계에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비정성시> 이후 양조위는 새로운 프로필을 꾸려나가기 시작하는데, 그저 그런 오락 영화에서 벗어나 <오호장>, <첩혈가두>, <천녀유혼3> 등의 화제작에 출연하면서 매번 한 단계씩 변화를 선보인다.
그러나 양조위를 결정적으로 현재의 위치로 끌어 올린 것은 영상미학의 선구자 왕가위 감독을 만나면서부터다. 비운의 걸작으로 불리는 <아비정전>에서 첫 선을 (아주 잠깐) 보였던 양조위는 이후 <중경삼림>, <동사서독>을 거쳐 <해피투게더>와 <화양연화> 그리고 올해 칸느 영화제에 어렵게 출품된 <2046>에서까지 함께한다. ‘왕가위의 페르소나’라 불릴 만큼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그 빛을 발하는 양조위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사랑과 고독 그리고 홍콩의 야경만큼이나 매혹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 왕가위, 그 나른함의 미학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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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화양연화>는 그가 보여준 스펙트럼의 정점을 보여주는데, 자욱한 담배 연기 넘어 아스라히 반짝이는 그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같이 울어주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느릿느릿 우아한 몸짓은 외로움과 세상에 지친 보편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미학적으로 표현한다. 지친 어깨를 감추기 위해 반듯한 정장과 흐트러짐 없는 헤어스타일로 가볍게 미소 짓는 양조위는 현실과 판타지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관객들을 취하게 한다.
● 홍콩 영화 부활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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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에서 양조위가 맡은 배역은 경찰이면서 흑사회에 침입한 스파이 ‘진영인’이다. 영화 속 그의 존재는 지금까지 그가 연기한 배역들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데, 정체성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심리와 그래서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쓸쓸함을 예의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그리고 나른한 그의 몸짓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영화의 비장함과 푸른빛이 도는 회색 도시의 적막함 보다는 진영인 혹은 양조위가 뿜어내는 ‘고독한 남자’의 정서가 <무간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양조위 외에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영인’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그 때문에라도 <무간도>의 최종편은 보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올 여름 최고의 화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