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일을 하다가도 이게 내 일이 아니다 싶은 생각 누구나 한번쯤 갖게 된다. 그러다 정말 용기 내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 하에 현실을 푸념하며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뒤늦게 나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끝끝내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나두야 간다’는 자신의 재능을 찾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무의미했던 삶이 활력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일. 조폭과 작가의 만남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정겹게 다가온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가난한 삼류소설가 동화(정준호 役)다. 소설 좀 쓴답시고 매일 방에 쳐 박혀 끙끙대 보지만 변변한 작품 하나 내 놓은 적 없으니 아내의 구박에도 찍소리 한마디 못하는 신세다. 밤늦게 돌아온 아내가 와이셔츠를 벗어 던지며 빨아서 다려놓으라는 명령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의 동화. 그동안 우리 아버지들 즉 가장들이 왜 그렇게 막무가내로 큰소리 치며 살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느끼게 한다. 동화네 집의 가장은 바로 아내다. 경제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관계가 돼 버렸다. 하지만 아직 내조자의 기질을 갖추지 못한 동화의 삶은 초라하고 남루하기만 하다. 괜히 아이들 싸움에 끼어 들었다가 아들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는 한심한 인생이다. 돈도 힘도 믿었던 글발도 안 되는 삼류인간. 그나마 남은 거라고는 작가적 자존심이랄까.
드디어 온갖 푸념과 잔소리를 이겨내며 소설을 완성하지만 절친했던 친구마저 출판을 꺼린다. 이미 동화의 작품을 출판해 쪽박 찬 경험이 있으니 오죽하랴. 친구는 마지못해 한 청년 사업가의 자서전을 대필해 보라고 한다. 작가적 자존심으로 여태까지 버텨온 동화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만 감독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청년 사업가를 만나게 된다. 이런걸 바로 운명적 만남이라고 한다. 한심하고, 소심하고 무기력했던 동화의 삶에 한줄기 햇빛이 되어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잘나간다는 청년 사업가는 만철이파의 두목인 만철(손창민 役)이다. 다소 어눌했던 코미디는 이렇게 작가와 조폭 두목이 만나면서 상승작용을 하게 되고 절묘한 웃음들을 선사하기 시작한다.
작가료로 무려 5,000만원을 챙겨주고 근본부터 다른 작가선생이라는 깍듯한 대우, 여기에 출퇴근용 벤츠에 보디가드까지 따라 붙으니 목에 빳빳한 힘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 그동안 남의 집 개 쳐다보듯 하던 아내마저 화색을 띠고 코맹맹이 소리와 함께 스스로 팬티 끈을 내리는 판이니 돈의 위력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어쨌든 작가와 조폭의 만남은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불러오며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는데 ‘두사부일체’나 ‘가문의 영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소리 한번 쳤다가 그 뒤로 내내 피해 다녀야 했던 슈퍼 아저씨와의 맞짱을 통해 동화는 서서히 잃었던 남성성을 회복해 간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 조폭처럼 힘으로 세상을 살고 싶은 충동 있지 않았던가? 동화는 바로 그런 남성들의 대변인이라도 된 양 세상을 향해 힘을 발산해간다. 때문에 그동안 조폭 영화들이 취했던 조폭에 대한 선입견을 희화화한 웃음을 선사한다.
만철의 일기장을 통해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들은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취했던 교복문화에 대한 향수까지 첨가한다. 그야말로 상업성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단단한 의도가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철을 알기 위해 그의 일기장을 읽어가며 만철의 조폭에 대한 철학, 싸움에 대한 요령을 터득하고 기질을 발견해 가는 동화. 반면 만철은 동화를 통해 그동안 한번도 맞보지 못한 평범한 삶을 배우게 된다. 만철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서 만철과 동화의 관계는 동등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 지점을 지나면서 동화는 더 조폭 쪽으로 만철은 더 보통사람 쪽으로 기울어간다. 아무도 없는 동화의 집에 혼자 앉아서 소일하는 만철의 모습은 그래서 따뜻하고 편안하다. 가정이 얼마나 포근하고 온화한 곳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페이스 오프’ 아닌 ‘잡 오프’의 상황. 조폭이 작가 되고 작가가 조폭 되는 세상. 조폭에게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정준호는 ‘가문의 영광’에서 이미 비슷한 캐릭터를 선보였었다. 손창민 역시 ‘맹부삼천지교’에서 안면 근육이 굳은 딱딱한 조폭 두목을 연기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영화는 새로운 것보다는 낯익은 상황을 약간 비틀어 웃음을 선사한다. 숙명의 라이벌과의 그 긴장된 순간에 쏟아낸 엉뚱한 웃음처럼 영화는 긴장을 거부한다. 부대자루 삼인방이나 권용훈의 지원사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코믹영화는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활약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소심했던 소시민이 무시무시한 조폭을 만나지만 이야기는 재미있고 따뜻하다. 조폭 세계의 알력과 생존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삶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요즘같이 오락가락한 세상에서 뭔가 돌파구가 되어줄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