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쟈키 하야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은 1986년 제작된 영화이다.
20년 가까이 지난 후에야 한국에서 늦장 개봉하는 애니메이션계의 걸작을 쌍수 들고 환영하지 못하는 필자의 마음을 딱 까놓고 공개하면서 왜? <천공의 성 라퓨타>가 걸작일 수밖에 없는지 또한 미야쟈키 하야오라는 한 노인네의 영화 인생을 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지 허심탄회하게 쏟아 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공간 위에 공기를 바다 삼아 떠다니는 섬이 있다면? 상상력이 조금 남들보다 결핍된 사람이라도 신들이 기거하는 올림푸스 신전 같은 곳이 전설처럼 어디간에 묻혀 있으면서 인간들에게 발견되길 또는 잊혀져가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했을 것이다.
미야쟈키 하야오는 우리의 이런 상상력을 캐치하여 아니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재현하는 곳으로 ‘라퓨타’라는 전설 속의 섬을 영화 속에 등장시킨다.
‘비행석’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날아다니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목걸이를 목에 걸고 무스카 일행에게 쫓기는 신비한 소녀 시타 그리고 그 소녀를 도와 아버지가 말해준 라퓨타의 존재를 믿게 되면서 자아의 성숙과 중요한 그 무언가를 깨달아 가는 소년 파즈가 겪는 모험담이 기본 이야기의 축이다. 볼거리야 말하면 무엇하겠는가? 직접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그림과 절묘한 상상력이 결합된 ‘천공의 성 라퓨타’가 눈앞에서 완벽하게 재현되는 것을...(사실, 불법 해골바가지 상표로 이 작품을 미리 안본 사람은 거이 없을 것이다)
미야쟈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우리 나라 것인 줄 알고 서랍식 텔레비젼 앞에서 넋 놓고 볼 때부터 그는 구체적인 영화 세계에 대해 느끼게 해준 감독이다. 상업성의 맥락이라는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보기 보다 시선을 돌려 하나의 모티브로 그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뽑아낸다면 그가 얼마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고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축조했는지 놀라워할지도 모른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쟈키를 생각할 때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지브리의 설립(1985년)이후 그의 가치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영화 안에 투영하기 시작했는데 [천공의 성 라퓨타]가 그 중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
하지만 미야쟈키의 노스탤지어는 또 하나의 맹점을 갖는 불완전한 영화 구성물이다. 바로 과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네덜란드 전원풍경, 에덴동산 같은 바람계곡, 영국의 탄광촌으로 재현한 그의 유럽 이미지 차용 등은 구체적으로 주제를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함과 동시에 그의 영화를 논하는데 있어 가장 큰 화두꺼리가 튀어나오게 했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표현됐다 치더라도 그의 이미지들은 과거에 대한 환상이나 집착 그 이상의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동료 작가 다카하다와는 다른 리얼리즘의 결여는 일본을 떠나서는 작품의 의미를 간파 할 수 없는 대중에게는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다 . 그의 작품을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오류일지 모른다.
허나 인간 삶의 형태를 ‘자연’ 안에 끌어들여 표현하기 위해서는 판타지와의 결합도 결론적으로 리얼리즘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텍스트일 것이다. 미야쟈키는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이항대립쌍을 영화 안에 공존하게끔 했다. 1인 관료 독재체제의 인더스트리아, 전제군주체제의 토르메키아, 강력한 군사력과 무스카로 상징되는 국가정부 등이 그것이다. 결국 미야쟈키의 판타지는 이 지점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얻는 리얼리즘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미야쟈키 하야오가 영화로 우리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곳, 만들어야만 하는 곳이 이상적인 공동사회라 말하는 듯 하지만 그는 거기에 앞서 ‘라퓨타(나무)’가 상징하는 근원이 순수하고 자연적인 것이 우리의 심연에 존재하는 이상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가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당신은 알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