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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 있었으니... 아주 저렴한(?) 가격에 수입해 전국 1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며 승승장구한 <주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빅 히트는 이어 2편을 한국 극장가 최고의 성수기로 꼽히는 추석에 공개하게끔 힘을 실어주었고, 이 역시도 전국 120여 개 스크린에서 8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인의 정서와 부합하는 원혼에 대한 공포는 일본의 스타일리쉬한 영상과 어울리면서 가슴 깊이 숨어 있던 어둠을 자극했음에 틀림이 없다. 스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주온>은 하나의 센세이션으로 받아질 만큼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본 공포영화가 당연히 국내 영화 수입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올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들만 해도, <강령>, <착신아리> 등등이 리스트 업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공개를 결정한 작품이 <오토기리소우>다. <주온>으로 일단 얼굴을 익힌바 있는 오키나 메구미가 등장하고 있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며, 음침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와 신비스러운 이야기 구조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게끔 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제목인 <오토기리소우>는 ‘제절초’의 일본식 발음으로 그 꽃의 꽃말이 ‘복수’라는 점에서 ‘이거 정말 뭔가 있겠군!’하는 기대 심리가 절로 든다. 100% 디지털로 촬영한 영상이라는 점도 그간 ‘디지털화’한 영상이 보여준 놀라운 색감과 미적 요소들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 부분에 있어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이러한 초반 기대심리는 영화가 시작하고 단 10분여 만에 완전히 갈갈이 부서지고 만다. 게임과 영화의 결함. 인물을 집요하게 쫓아가는 카메라 워크와 묘한 분위기의 영상은 어느 하나 제대로 조합되지 못하고 각각 따로따로 부유하며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망친다. 음습한 분위기의 별장은 처음 공포스러웠던 것이 나중에는 유치하게 보일 정도로 갑갑하다. 때때로 깜짝 쇼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미 <주온> 같은 작품으로 단련된 이들에게는 우습게 보일 뿐이다. 영화가 30분쯤 흐르게 되면, 흔들리는 카메라 덕택에 속이 메슥메슥 거리고, ‘이 영화, 도그마 선언이라도 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증이 난다. (‘도그마 선언’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닥터 무비스트에 문의해 보시길!)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애쓴 흔적은 역력하나, 정말이지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는 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감독이 의도라는 것이 이 영화 자체를 보는 것 자체가 ‘공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이들까지 학대해(?) 가면서, 이상한 방법으로 멋을 부리고 기교를 남발했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아니란 표본이 바로 <오토기리소우>다. 도대체 제목 조차도 왜 <오토기리소우>인지 알 수 없는, 이런 영화가 자꾸 나오면, 정말 일본 영화가 한국 영화시장에 발 붙이기 어려워 질 수도 있겠다 싶다.
※ 이 영화와 최근 비디오로 출시된 <욕망>을 한번쯤 비교해 보시라. 한 예술 하겠답시고 욕심부려 찍어낸 <욕망>도 디지털 촬영을 한 작품으로 그 색감이나 영상을 비교하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충고할 것은 <욕망> 또한 <오토기리소우>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보는 것 자체가 ‘공포’스럽다는 것! 두 작품은 이래저래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