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는 개성이 강한 도시다. 특히 영화에서는. 후지산을 배경에서 빼버린 도쿄와 서울타워를 지워버린 서울처럼 헛갈리는 외형의 도시가 아니라,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하는 뉴욕이나 곤돌라가 지나다니는 운하의 베네치아처럼 강한 인상의 외형을 가진 도시다.
영화에서라면 카체이싱의 샌프란시스코(<불릿> <더 록>)나 중국어 간판과 마천루가 기묘하게 매치된 홍콩(<공각기동대><중경삼림>), 혹은 이층버스와 스코틀랜드 야드의 런던(<트레인스포팅>)처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만으로 반쯤은 존재감을 보여주고 돌아서는 성격파 배우같은 도시.
쿠바의 수도, 여송연과 반항의 도시 아바나는 헐리웃 영화에서 이국적인 풍광이 필요할 때 곧잘 이용하는 장소 중 하나다. 체 게바라 반항적 카리스마를 밑거름 삼고 카스트로의 정치적 충돌을 비료 삼아 키워놓은 쿠바의 이미지는 그 나라의 수도 아바나를 통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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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노골적으로 미국의 입장의 선다면 리처드 레스터의 1979년작 <쿠바>같은 영화도 있다. 이 영화에서는 숀 코너리가 카스트로 군에 대항하기 위해 쿠바에 파견된 장교 역할을 맡지만, 미모의 여인과 애틋한 감정이 싹트며 갈등과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카사블랑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강인한 인상의 숀 코너리 쪽이 로버트 레드포드보다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를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카사블랑카>식의 아바나는 결국 헐리웃 방식의 이국적인 시선을 강조할 뿐이다. 토마스 알레아의 <저개발의 기억> 같은 쿠바사람의 영화를 진지하게 기억하는 사람에게라면 <쿠바>도 <하바나>도 천박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섹시가이였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쿠바 갑부인체 시침떼고 나오고 더 섹시한 꽃뱀 안젤리나 졸리에게 사기당하며 사랑에 빠지는 <오리지널 신>같은 영화에 비하면 <카사블랑카>식 아바나는 양반이다. 북한군 장교가 성형수술하기 위해 도망가는 <007 어나더데이>의 아바나는 그냥 애교정도로 보아주자.(언제 우리가 본드무비를 진지하게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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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라틴 리듬에 대한 유럽인의 오마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아프로쿠반 리듬의 진면목을 들었다면 <리빙 하바나>쯤에서 쿠바 음악의 느끼한 매력에 환상을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즐겁게 꿍짝거리는 쿠바 영감님들의 관광버스 음악과 느끼하기 짝이 없는 콧수염을 기르고 섹소폰과 함께 쿠바를 탈출하고 싶어하는 재즈뮤지션의 이야기 따위에서 아바나의 리듬을 즐기기에는 무언가 하나가 부족하다. 바로 ... 춤.
전설의 춤꾼이라고 우기는 박풍식이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무사수행식으로 습득한 속칭 '사교댄스'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모던댄스(왈츠 - 빠소도블레 - 탱고 등)와 남미를 중심으로 하는 라틴댄스(자이브 - 차차 - 룸바 - 삼바 등)를 영국에서 대회를 가질 수 있도록 스포츠 형식으로 규정한 춤이다.(그런 춤과 80년대 대한민국 땐스홀의 지루박 - 브루스는 엄청 다른 춤이다. 이것이 <바람의 전설>의 맹점) 그래서 현대에는 <바람의 전설>에서 마지막에 소개한대로 '댄스스포츠'라는 이름으로 구분하며 이는 영국식 필이 다분한 춤이 되겠다. 결국 원류는 같더라도 실제로는 다소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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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된 리듬을 몸에 익히고 스포츠 대회에 맞추어 연습해온 춤은 진정한 라틴댄스가 아니란 자신감, 음악을 즐기며 몸을 싣지 못하면 라틴댄스가 아니라는 쿠바식 호언장담. 실제로도 미국에서 꽤 유명한 라틴댄서인 샤이엔은 1998년 영화 <댄스 위드 미>에서 쿠바출신 라파엘 역을 맡아 라틴리듬에 몸을 싣고 느끼하게 흐느적 거리는 쿠반댄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커다란 덩치에 느끼한 웃음을 흘리며 흔들어대는 엉덩이를 보고 있노라면 오래 보고싶지 않은 마음도 들지만 리듬에 몸을 싣는다는 대사를 확인하는 맛은 있다. 특히 라파엘의 자신있는 대사가 압권.
"쿠바 남자 중에 춤 못추는 남자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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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주연을 맡은 디에고 루나는 멕시코 출신이고, 영화를 찍는 과정에 라틴댄스 트레이너가 붙어 훈련시켰음에 분명하며, 다른 영화처럼 아바나의 이미지에 충실하게 만들었음에 분명하기 때문에 <하바나 나이트>의 장면을 다큐멘터리인양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은 없지만, 단순히 보기만해도 <하바나 나이트>의 라틴댄스가 <바람의 전설>과 느낌이 확연하게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솔직히 영화의 내용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제목에서 고백하다시피 이 영화는 1987년작 <더티댄싱>의 플롯을 충실하게 따르므로) 감각적으로 리듬에 몸을 싣는 이 영화의 라틴댄스는 충분히 볼만하다.
개성 강한 배우들이 열연하는 영화가 보기 좋은 것처럼 개성 강한 무대도 보기 좋을 때가 있다. 라틴리듬에 발끝을 두들겨 가며 몸을 작게나마 들썩거리다 어느 순간에 배경으로 아바나가 펼쳐지는 환상. 따뜻하게 부는 바람에서 외국의 어느 하늘을 상상하는 일탈의 유혹, 고단한 삶 사이에 끼어든 여유에 방점을 더하는 상상.
너무 현실을 도외시 하는게 아니냐고?
우린 항상 대한민국의 살 냄새나는 현실에 둘러쌓여 있는데 뭘. 어차피 정말 아바나에 있다면 서울에 대한 상상을 할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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