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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의 영화 <연애사진>을 보면, 까르띠에 브레송이 남긴 위와 같은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뿐 아니라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다”, “사진은 저널이며, 일기이며, 삶의 메모이다”와 같은 그의 다른 격언들까지도. 자신에게 놓인 어떤 순간, 어떤 찰나적 움직임도 뇌에서 눈으로, 눈에서 카메라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과 순간적 셔터의 불꽃을 동조시켰던 까르띠에 브레송.
<연애사진>의 여주인공 ‘시즈루’와 그런 까르띠에 브레송을 연결시키는 건 너무 억지일까. 하지만 첫사랑 ‘마코토’를 만난 후 가슴을 움직이는 그 무엇(wonder)를 찾아 카메라를 든채 거리를 달려가는 ‘시즈루’를 보고 있으면, 사진에 대해 잊고 있던 매혹적인 느낌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영화는 현재에서 과거로, 그 과거로부터 조금 더 먼 과거의 이야기가 남자 주인공 마코토의 회상을 통해 감각적으로 맞물리는 구조다. 대학을 졸업한 뒤 별볼일 없는 광고 사진을 찍으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마코토가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시즈루의 편지가 날아든다. 뉴욕에 있는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개최하니 꼭 와달라는 내용이었지만, 마코토의 반응은 시큰둥. 그녀에 대한 미묘한 질투와 자격지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마코토는 첫눈에 끌린 시즈루와 동거 생활을 하며,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진’을 계기로 서서히 어긋나게 된다. 프로 작가를 꿈꾸던 마코토의 영향을 받아 사진을 시작했던 시즈루가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것. 결국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 마코토는 시즈루와 이별하게 된다. 비록 그녀는 마코토가 프로 사진 작가가 될 때까지 잠시 헤어져 있자는 말을 남기지만 말이다.
시즈루의 편지가 날아든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이다. 마코토는 그녀의 편지를 무시하려 했지만, 우연히 대학동창에게 시즈루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만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전개되는 <연애사진>은 미스테리와 멜로, 코믹의 요소가 고루 섞이면서 스피드하게 진행되는 영화다. <트릭>, <사랑같은 거 필요없어, 여름> 등 일본의 TV와 영화를 오가며, 맹활약 중인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은 ‘영상의 귀재’라 불리는 사람이라고. 아닌게 아니라 <연애사진>의 화면들이 발산하는 세련된 뮤직비디오적 감각을 보노라면, 그러한 평가를 자연히 수긍하게 된다.
뮤직비디오도 연출한 감독답게 16mm, 8mm, 비디오, 스틸, 폴라로이드, 디지털 카메라 등 각종 영상기구를 활용한 카메라 기법과 앵글구사는 통통 튀는 감칠맛 나는 매력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게다가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은 두 사람의 극중 감정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위해 마코토와 시즈루를 연기한 마츠다 류헤이와 히로스에 료코가 직접 찍은 스틸 사진도 영화에 사용했다는 후문이다.
눈길을 잡아채는 탁월한 화면 연출 때문인지, 뉴욕 로케 장면 역시 매력적으로 구현됐다. 뉴욕이란 도시 자체가 지닌 역동적인 그래픽 이미지, 뉴욕을 배경으로 한 갱영화에서 보듯 폭력 뒤의 우수나 도시의 멜랑콜리가 적절하게 용해된 것. 하지만 이러한 영상미는 <연애사진> 전체를 관장하는 압도적인 장점이 되어버렸다. 영상의 정교함에 비해 드라마의 매력은 지극히 미비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죽은 시즈루의 영혼이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에서도, 생각만큼 감정의 고조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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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코토 역의 마츠다 류헤이는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일본에선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정받는 신세대 스타다. 그는 <블랙레인>의 히로(hero) 마츠다 유사쿠와 그에 못지 않은 일본의 유명 스타 마츠다 유키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화제를 뿌렸다. 특히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고하토>에 출연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재능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 <연애사진>에서도 마츠다 류헤이는 독특한 어두움으로, 히로스에 못지않은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일본 배우를 너무 밝히는(?) 혐의가 다분해도 이해해 주시길.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필자의 열병같은 증상이니 말이다. 또 하나 일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부분은 <연애사진>의 엔딩이다. 크레딧이 오르는 동안 흘러나오는 미샤(MISIA)의 노래를 들으면서, 극장 밖을 나서는 순간 당신은 헤어졌던 그(그녀)가 몹시도 그리워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