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안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적진을 향해 달리던 장동권과 원빈이 있었으며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총을 쏘아대던 톰 행크스가 있었을 뿐이다. 조용히 어른들에게 힘겨웠던 학창시절의 한때를 회고해 보라는 전편의 충고가 여전히 현실에서 효력이 없어서 일까? 허나 전면전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강한 어조는 굳이 배틀로얄이 아니어도 되지 않았을까?
감독은 왜 배틀로얄이 우리에게 그렇게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는가를 잊은 듯 하다. 그건 바로 1년 혹은 3년 동안 함께 티격태격 싸우고 정들었던 친구들을 사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우정과 사랑의 갈등과 화해 이런 걸 서바이벌게임에 접목시켜 보여줬다는 것이다. 여기서 살아남는 자가 진정한 승자였던가를 뒤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던 울림이 이번 영화에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전투씬이 대변하듯 영화는 내적인 고민보다는 시각적인 형상화에 중점을 두고있다. 그럼으로써 전편에서 느꼈던 현실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 아닌가 싶다. 전편에서 살아남았던 나나하라 슈야가 어른들을 향한 테러리스트 돌변했다는 설정이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려왔기에 실망도 컸는지 모른다. 처음 배틀로얄법을 만들었던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새로운 배틀로얄법을 만들다 사망하자 속편은 물 건너갔구나 싶은 생각이었는데, 그의 아들 후카사쿠 겐타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받는다니 내심 기대되고 기다려졌던 것이다. 허나 이런 류의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어른들을 향해 독설과 총으로 맞서는 아이들보다는 조용히 읊조리듯 그때의 감성들을 토해내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건 필자의 욕심일 수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전편의 흥행을 넘어섰다고 하니 감독의 전략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편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도 될 만큼 일관성 내지는 연관성 부분에서의 성공은 아닐 것이다. 전편과 상관없는 전쟁영화로 즐기기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편과 연관지어 이 영화를 관람한 필자에게는 단점만 눈에 뛸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
전편의 흐름에서 바라본 속편이기에 이처럼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또 다른 한편으로 보는 관객이라면 필자의 시각에 수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필자로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분명 전편을 인식하지 않고 본다면 또 다른 시각으로 흥미롭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편의 느낌이 너무 강렬한 필자에게는 덩치를 키우면서 드러낸 약점들이 너무 허무하다. 능숙하게 전쟁을 치르는 아이들은 이미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전편이 온전히 아이들의 전쟁이었다면 속편은 어른들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외모만 아이들일뿐 그 외의 어떤 모습에서 아이들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왜 아이들의 모습을 거둬내고 어른들을 흉내내게 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