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영 목사의 글

● 이 글을 쓰신 박혜영씨는 현재 안양시 관양1동에 위치한 산오름 교회에서 목사님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영화가 나왔다고 했을 때, 기독교인들은 관심을 갖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 관객들에게는 별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라는 소리를 들으면, 사정이 조금은 달라진다.

게다가 이 영화에 투자를 하는 제작사를 찾지 못해서 멜 깁슨이 직접 자기 돈으로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아마도 흥미를 느낄 것이다. ‘아니, 용맹무쌍한 영웅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멜 깁슨이 예수 영화를 자기 돈으로? 그가 그렇게 신앙심이 깊었나? 한 번 볼까?’

영화가 시작하면 기독교인들은 무슨 뜻인지 알지만, 비기독교인은 무슨 뜻인지 모를 자막이 나온다. 예수보다 700년 전에 있었던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멜 깁슨이 제작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이 예언의 ‘찔림’과 ‘채찍’에 대한 ‘영상화’라고 할 수 있다. 교회용어로 하면 ‘영상 주석’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고증은 비교적 치밀한 듯 하다. 그러나 성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짜임새 없이 ‘절정’만 보는 것과 같아 ‘왜 저렇게 잔혹해야 되나?’ 또는 ‘폭력 노출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닌가?’, ‘뭐, 이야기가 앞뒤가 없어?’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영화의 구성이나 예술적 감동이 미비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잔인한 채찍질, 굴욕적인 비웃음, 가시관이 마치 내 머리에 박히는 느낌, 십자가의 물리적 육중함, 못이 손바닥을 통과하며 나무에 박히는 끔찍한 충격에 압도당해, ‘우리 예수님이 당한 고난이 저렇게 참혹했나? 저런 참혹함이 우리 죄 때문 아닌가?’ 생각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작품을 따지고, 구성을 따지면 뭔가 불경한 신자처럼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또 그들은 이미 성경을 통해 이 영화의 밑에 깔려 있는 발단과 전개를, 그리고 결말까지 알고 있기 때문에 복선이나 암시를 찾을 이유가 없다. 시작하자마자 영화에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가 12시간 동안 겪은 끔찍한 고통을 시각과 청각으로-또는 후각도 포함하여- 재생해서 기독교인들의 마음에 충격을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평범한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줄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영상으로 풀어 낸 맬 깁슨의 ‘신앙 고백’에 손을 들어 주는 것이다.

‘과도한 폭력 노출’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공감하고, 이번 4월에 교회 단체 관람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얼마나 생생하게 예수가 당한 고난을 전달하느냐?’ 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과도한 폭력 노출’로 생생함 그 이상을 전달하기 때문에 ‘과도한 폭력 노출’이라는 비평은 평범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별 주의를 끌지 못할 것 같다. 생생한 전달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기독교인들의 합격 점수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고난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부채 의식’을 생생한 화면에 2시간 동안 참여하여 경감 받는 심리적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볼 때에는 이사야의 예언 내용 가운데 ‘채찍’과 ‘찔림’만 보여주지 말고, 이왕이면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까지 보여주길 바라겠지만 이 영화는 거기까지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미 영화 중에 나오는 한 장면 곧,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하늘에서 눈물 한 방울이 땅에 떨어져 부딪히면서 마치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는 모습에 감동받아 ‘과도한 폭력 노출’이나 영화적 감동이 없다는 비평은 또한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멜 깁슨의 개인적인 변화 이야기를 이 영화와 관련 있는 에피소드로 어디선가 듣는다면, 이 영화의 입소문을 내는데 이 영화의 영화적인 약점은 더 이상 그들에게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예수가 당한 ‘채찍’과 ‘찔림’을 영화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참혹함만 들어 있는 ‘고문 영화’-만약 이런 장르가 있다면-로 비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에 종종 나오는 고문 장면을 기억해 보거나, 김근태가 당한 고문에 대한 묘사를 읽어보라. 그러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고문을 하면서도 낄낄거릴 수 있는 어떤 사악함이 있다는 것을. 혹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군중들 사이를 다니는 그 사악한 존재가 그 낄낄거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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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원 기자의 글

● 이 글을 쓴 무비스트 서대원 기자는 모태 신앙이긴 하나 중학교 때 더 이상 교회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일단은 신앙 생활을 뒤로 한 자칭 얼치기 신도입니다.(지가 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자평을 하니 상당히 민망하네요--;;)

‘반유대적인 내용’과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잔혹한 이미지’로 호떡집에 불난 것마냥 떠들썩한 논쟁으로 미국을 들쑤시고 있는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드디어 국내에서도 선보이게 됐다.

허나, 땅 덩어리가 넓은 만큼 인종도 많고 말도 많은 미국 애들과 달리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서로 등을 돌리고 반목했던 역사가 있을 리 없는 우리에게 전자의 경우는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중요한 쟁점이 되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관심사는 고스란히 예수에게 가해진 육체 훼손의 강도가 어느 정도이길래......로 모아진다.

그래서 어떻디?

불편할 만큼 끔찍하고 섬뜩했다. 피칠갑 하드 고어 영화를 적잖이 본 덕에 웬만한 뜨악스런 장면에도 안면 자태의 미세한 움직임 외에는 그다지 살 떨림이 없는 본 필자가 보기에도 말이다. 정말이지 몽둥이란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무식한 모양새로 이뤄진 나무 몽둥이와 보기만 해도 피가 솟구칠 거 같은 쇠꼬챙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채찍을 사정없이 예수의 육신을 향해 휘두르고,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크기와 두께의 대못이 그의 손과 발목을 힘겹게 비집고 관통하는 목불인견의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내칠 수 없는 미묘한 감동이 손을 내밂과 동시에 목이 메며 가슴이 착잡해질 것임이 틀림없다.

가학의 대상이 나쁜 놈도 아닌 우리의 죄를 사하여 구원해주신 전지전능한 예수님이니 원죄의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도 그럴만하다. 게다, 신의 계시로 다시 말해 소명의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됐고, 예수의 수난을 극대화한 영화를 통해 이 땅의 세인들이 감동을 먹고 믿음을 굳건히 했으면 한다는 게 멜 깁슨의 연출의도였으니 이는 더 명백해진다.

흠........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뭔가 찜찜하다. 전지전능하신 성경의 예수님을 스크린으로 부활시킨 영화를 보고 불경스럽게도 감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다.

우선, 영화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드린 후 유다의 뒤통수를 치는 배신으로 체포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까지 지상에서의 마지막 12시간만을 극사실적으로 묘파한다. 전후맥락을 거세해 채 세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육체의 수난을 당하는 찰나의 연속과 자신을 가혹하게 능멸하는 자들조차도 용서와 화해로 끌어안는 예수를 절대선으로 그리고 그의 하해와 같은 너그러움을 생까고 사악함으로 치닫는 자들을 절대악으로. 극명하게 이분법화해 긋는 연출 작법을 슬로모션, 클로즈업 등 할리우드의 적자라는 평가에 걸맞게 꿈의 공장에서 계승받은 기술을 퍽이나 도식적으로 활용하며 우리를 감화시키려 무지하게 애를 쓴다.

멜 깁슨의 충만한 믿음에서 비롯된 이 같은 의도는 독실한 신도들에겐 어떤 영적 체험과 같은 신앙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하지만 비신도들에겐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그 무엇을 기대하긴 어렵다. 신경을 심하게 찌르는 끔찍함의 스펙터클한 이미지와 귀를 찢는 아비규환적 사운드, 잔혹할 정도로 일방통행적인 전달방법에만 몰두해 복음을 전파하려는 그의 전술은 순간적으로는 분명 욱! 하는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 감동의 맨살을 한 꺼풀만 들춰내 정체를 파악하자면 원초적 윤리라 할 수 있는 연민의 정과 말초성에 감지된 경외심과 공포에 다름 아니다.

결국, 가공할 만한 육체 훼손의 향연을 관장하며 속세에 내놓은 멜 깁슨 신도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를 인간으로서 그린 마틴 스콜세즈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과는 달리 신앙의 대상으로 묘파함으로써 기독교인에겐 반갑기 그지없는 복음서의 또 다른 결정판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글쓴이와 같이 교회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부류에게도 당 영화는 입장료에 값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기능할 뿐 그 이상의 울림 있는 메시지나 가슴 먹먹한 숭고미를 예수를 좇지 않는 그네들에게 널리 복음 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 여신이라 불리는 모니카 벨루치가 막달라 마리아 역으로 분해, 비록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어쨌든, 영화에 등장한다. 그렇지만 종래의 영화 속 캐릭터처럼 황홀함의 극치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던져주는 알싸한 알몸 자태 신, 허망하지만 그런 거 이번에는 없음이다. 그럼에도 예수의 수난을 보며 처연한 얼굴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우리는 지독히도 할 말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