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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잘생긴 야구부 주장을 좋아하는 보은은 이 ‘뚝딱’ 결혼을 영 인정하기 힘들다. 이건 바람기 철철 넘치는 상민도 비슷한 편. 하지만 영화 <어린신부>는 상민이 마음 속 깊숙이 보은을 좋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작은 암시를 첫 장면에 살짝 던져준다. 결혼을 하리라고는 아직 까마득이 모른 채, 상민은 비행기 안에서 검정색 동그란 안경을 쓴 보은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배시시 웃는다.
<어린신부>는 너무 친숙한 나머지, 서로의 감정을 깨닫지 못했던 보은과 상민이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결국 귀엽고 순수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는 해피 엔딩 영화다. 이런 스토리를 밝고 경쾌하게 펼쳐가는 <어린신부>는 여러모로 순정만화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여성 관객들이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달콤한 외모의 김래원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어필했던 귀엽고 능청스러운 이미지를 상당 부분 끌어와 이 로맨틱 코미디의 멋진 히로를 연기했다.
하지만 김래원이 기존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미지로, 무난하게 ‘상민’의 캐릭터를 소화했다면, 문근영은 이 영화를 통해 주목할 만한 이미지 변신을 선사한다. 동글동글 커다란 이목구비를 지닌 귀여운 마스크의 문근영은 이전 영화들에선, 그녀의 외모가 발산하는 이미지를 전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했었다. <연애소설>의 ‘지윤’은 깜찍하긴 하지만, 어딘가 어눌하고 소심한 캐릭터였으며, <장화, 홍련>의 ‘수연’은 겁에 질린 공포 영화의 히로인으로 비의감(悲意感)을 잔뜩 안겨주었다.
물론, 그러한 이미지들 역시 감독들 각자가 문근영에게서 끌어낸 이미지이므로, 그녀가 가진 복합적인 이미지의 단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근영을 백지 상태로 놓고 봤을 때, 아무래도 그녀는 남녀노소 누구나 예뻐할 수 있는, 맑고 발랄한 소녀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배우다. <어린신부>의 보은은 그런 문근영의 이미지로 똘똘 뭉쳐진 친근한 캐릭터. 어찌보면, 문근영의 첫 필모그래피로, 가장 어울릴 만한 영화로 느껴지는 이 명랑한 영화는 망설임끝에 도전한 문근영의 세 번째 영화가 됐다(무비스트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문근영은 ‘밝은’ 캐릭터가 처음엔 어렵게 느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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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마이클 잭슨의 뒷발춤(?)을 열광적으로 추어대며 노래하는 보은을 보노라면, 저모습이 단순히 보은인지 문근영인지 혼동될 만큼 너무나 귀여워서 한참동안 웃음이 터져나온다. 여기에 <어린신부>는 관객들에게 문근영의 노래 실력까지 보너스처럼 보여준다. 곡명은 그 옛날, 80년대 후반을 주름잡은 미녀 가수 이지연의 ‘난 아직 사랑을 몰라’. 영화의 내용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이 80년대 명곡은 문근영의 조그만 입술에서 신나게 흘러나온다.
김래원과 문근영이 다함께 ‘오버’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이 노래방 장면은 <어린신부>의 압권 중의 압권이다. 이런 저런 문근영의 모습을 순정 만화로 비유하자면, 『내 남자친구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야자와 아이(YAZAWA AI)의 그림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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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의 예상가능한 경로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어린신부>는 보은에 대한 상민의 마음이 예상보다 쉽게 밝혀지는 탓에, 티격태격하던 커플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생각보다 짜릿하지 못하다. 특히 ‘지수’로 등장하는 김보경이 라이벌보다는 두 사람의 사이를 돈독하게 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이 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심함도 다소 아쉬운 편.
대신 보은의 담임 교사로 등장하는 안선영이 두 사람의 사이를 위협(?)하는 코믹한 역할로 등장한다. 관객들은 남자를 심각하게 밝히는 이 푼수 노처녀 교사가 결코 보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별다른 긴장감없이 그녀가 유발하는 유머의 이미지만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어린신부>가 영화 데뷔작인 안선영은 ‘김샘’의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했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건 보은과 상민의 결혼 생활 ‘몇 년 후’를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어설픈 분장으로 아이딸린 주부를 연기하고 있는 문근영의 모습은 귀엽기보단 감독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군더더기같은 장면으로 기능한다(차라리 보은이 상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예쁜 장면에서 끝마쳤다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아쉬움들에도 불구하고 <어린신부>는 꽤 재밌는 구석이 있는 코믹 멜로다. 하이틴을 겨냥한 영화면서도, 로맨틱 코미디가 빠지기 쉬운 ‘판타지’가 제거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무르익는 이 봄에 핑크빛 기운을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깜찍함의 보증 수표 ‘문근영’과 주저없이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