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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심하게 비약한다면, 필자는 락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정신 구조다. 왜냐면 생산의 합리, 노동의 미덕을 찬미하는 것은 락의 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런 점과 관련해서 ‘경직된 사람들은 락을 비난한다. 그들에겐 다음 생산을 위한 여가, 그 시간에는 육체의 활력을 회복하고 지친 정신을 다시 충전해야 한다. 휴식은 모두 내일의 더 많은 노동과 긴장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그 이상의 자유를 부르짖는, 그 이상의 쾌락을 찾는 짓은 낭비이며 부도덕하고 위험천만하다.’는 말을 필자는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도대체 <스쿨 오브 락>을 두고, 왜 이런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내뱉고 있는가. 그건 이 영화의 제목이나 내용에 담긴 ‘락’이라는 말의 압박 때문이다. 아무래도 음악에 문외한이다 보니, 이 영화를 보기 전엔 상당한 부담감이 느껴졌었다. 뮤지션들간에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계보부터 그들이 속한 음악 장르, 심지어 어느 레이블에 소속돼 있는 건지 적잖이 통달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 등등.
물론 보고 난 뒤에도 음악적 무지가 영화의 잔재미들을 놓쳤겠구나 하는 생각은 예외없이 파고들었다. 주인공 ‘듀이 핀(잭 블랙)’의 방에 걸려 있던 섹스 피스톨즈, 후, 이블 제이크 등의 포스터들이야 그렇다치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쯤 잭 블랙이 스쳐지나가는 두 명의 뮤지션들이 무니 스즈키(The Mooney Suzuki)의 멤버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무니 스즈키는 엔딩 장면인 콘서트 장면에 나오는 노래 ‘스쿨 오브 락’을 작곡하기도 했다).
여기다 극중에서 에이씨/디씨(AC/DC)가 언급된 것은 신경질적인 보컬 솜씨로 유명한 데이브 에반스가 주인공 듀이의 캐릭터와 어떤 연관성을 맺는 장치는 아닐까하는 망상까지 솟아나니 그야말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태도는 말할 것도 없이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 영화는 락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굉장히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경쾌한 코미디다.
뉴스위크지가 이 영화를 ‘2003년 10대 영화’로 뽑으면서 ‘이처럼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영화는 없었다’라고 평가내린 것처럼 말이다. 극중에서 듀이가 락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을 귀엽게 감화시키듯이, 관객들은 스크린 바깥에서 마치 그에게 가르침을 받듯이 느긋한 마음으로 관망하면 된다.
<스쿨 오브 락>은 삶이 온통 락에 대한 열정으로만 뭉친 사이비 교사와 좋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머리에 쥐나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락’을 매개로 천천히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린 유아판 <죽은 시인의 사회>다.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던 듀이는 비주얼이 전혀 받쳐주지 못하는 관계로 밴드에서 쫓겨난다. 친구 ‘네드(마이크 화이트)’의 집에서 얹혀 살지만, 월세가 밀려 그나마 그 집에서도 쫓겨날 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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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력교실>에선 학생들이 교사에게 “역사수업은 때려치웁시다. 음악을 듣자구요.”라고 말했다면, 이 영화에선 교사가 학생들에게 “평가받기 위한 수업은 때려치워. 락 음악을 배워보자구”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할까.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각인된 락 아티스트들의 외적 이미지를 기분좋은 유머로 응용하는데 성공했다. 클래식한 악기들만 다룰 줄 알던 모범생 꼬맹이들이 컬러풀한 패션, 덥수룩히 기른 머리와 수염, 성적/언어적 터부 등에 대한 저항 등을 지닌 락커들의 ‘튀는’ 이미지를 재현하기 시작하면, 담담히 있으려해도 역시 웃음이 터져나오고 만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등장하고 있는 배우들 모두 실제 연주가 가능한 사람들이라는 것. 알려져 있다시피 듀이 역의 잭 블랙은 락 밴드 터네이셔스 디(Tenacious D)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이며, 아역 배우들도 실제 가창력과 악기 연주력을 갖추고 있다.
비록 락에 대한 거창한 성찰같은 걸 담고 있진 않지만, <스쿨 오브 락>은 시나리오 작가 마이크 화이트부터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잭 블랙에 이르기까지 락에 대한 즐거운 애정을 솔솔 풍기고 있는 영화다. 스크린에 엔딩 자막이 다 오를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말고 지켜보시라. 잭 블랙의 코미디 연기가 계속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