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의 이러한 활약 속에서 일본 연예인들의 한국 진출도 끊임 없이 시도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초난강’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으로 활동했던 ‘쿠사나기 츠요시’는 ‘사랑해요~!(그러나 필자의 귀에는 ‘사람해요’라고 들렸다)’를 남발하며 잔잔한(?)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후에키 유우코’라는 이름의 신인 여배우는 ‘유민’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두가 길었다. 앞에 늘어놓은 잡다한 단어들은 사실 영화 <신 설국>에 등장하는 ‘유민’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데코레이션이다. 일본 문학계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설국>의 속편 격인 <신 설국>을 영화화 한 동명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안착한 ‘유민’이 주연이라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농염한 섹스신 때문에 ‘유민이 사실은 일본에서 포르노 배우를 했었다’는 둥의 헛소문들을 양산해 스포츠지 기자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 <신 설국>은 일본 문화 개방에 발맞춰 어렵사리 일반인들에 공개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해서는 딱히 코멘트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솔직히 ‘유민’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수입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터널을 지나 설국이 펼쳐지면 마치 <러브 레터>같은 영화라도 나올 것처럼 분위기를 잡기 시작하지만, 남녀의 만남이 보여주는 작위적인 설정을 비롯해 일본 특유의 과장된 오버액션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잔잔한 러브 스토리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뒤통수를 후려치는 배신감이 들 정도다. 느슨하게 얽힌 이야기 구조나 산만한 비약 그리고 밋밋한 갈등구조는 영화를 보는 동안 하품을 참을 수 없게 하며, 눈부신 절경 마저 감기는 눈꺼풀을 막지 못한다.
<신 설국>이 개봉할 수 있었던 유일한 미덕인 ‘유민’을 만나기 위해 이 영화를 찾는다면, 그러나 적극 권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또 다른 마음이다. 단지 그녀가 보여주는 속살의 아름다움 때문은 결코 아니다. 우아하면서도 묘한 미소로 시종일관 스크린을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에 건너온 그녀가 얼마나 많이 망가졌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확실히 연기는 서툴지만, 그 서투름 속에서 묻어나는 풋풋함은 한국의 브라운관에 펼쳐지는 어눌함과 낯설음과는 확실히 다른 무엇이다. 아무래도 제 옷을 바로 찾아 입은듯한 ‘후에키 유우코’라는 이름이 오히려 ‘유민’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되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일본 문화 개방을 타고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영화들에 편승해 재빠르게 개봉을 단행한 <신 설국>은 이미 한국에서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일본영화에 대한 확인사살 같은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라섰던 <춤추는 대수사선2 : 레인보우 브릿지> 역시도 한국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기대에 비하자면 참혹할 정도로 외면당하고 있다. <신 설국>의 흥행여부보다는 이러한 냉기서린 작품들이 휩쓸고 지나간 한국 영화시장에 앞으로 <자토이치>, <리리슈슈의 모든 것>, <드레곤 헤드>등을 비롯 완성도 높은 다양한 양식의 일본 영화들이 다시금 한국 시장의 또 다른 문화적 장르로 안착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