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며칠 전에 후원사인 ITC를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학생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할 즈음 ITC에서 그들을 찾아온다. ITC를 찾은 교수의 아들과 발굴단원들은 ITC에서 문자를 전송할 수 있는 것처럼 사물을 전송 할 수 있는 양자 원격 이동 장치와 웜홀을 통해 존스톤 교수가 600년 전 영-불 100년 전쟁의 와중에 포로로 잡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환이 허용되는 시간은 웜홀이 닫히기까지 남아있는 6시간 뿐. 학생들은 교수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무장도 없이 전쟁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안 봐도 DVD 되겠다. 역사와 시간에 대한 짐짓 진지한 화두를 던질 것이고, 그들 중 누구는 전쟁영웅이 되어 로망스를 펼칠 것이고 몇몇은 죽고 몇몇은 살아 돌아오겠지.
영화는 숨가쁘게 호객행위를 한다. 2004년 새로운 타임 어드벤처의 막이 오른다... 보고싶지? 100년 전쟁의 웅장한 전쟁씬 재현... 기대되지? 600년 전 과거 속에 미래를 만난다... 신기하지? 하지만 이 정도로는 쉽게 약발이 서지 않는다. 시간을 왔다갔다하는 영화가 한 두 편이 아닌 고로, 명함 내밀기가 심히 '거시기'해지는 탓이다. 영화는 아마 그게 뜨끔했을 것이다. 살짝 강도를 높일 수밖에. <쥬라기공원> 마이클 크라이튼의 매혹적인 SF 환타지... 죽이지? <글라디에이터>, <브레이브 하트>제작진의 야심찬 스펙타클... 환장하겠지? 철학적인 질문 하나 양념처럼 곁들이고 내가 운명을 선택하는 것인가, 운명이 나를 선택하는 것인가... 있어 보이지?
아닌 게 아니라 툭툭 던져놓은 키워드들은 하나같이 녹록치 않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누군가. <쥬라기공원>으로 전세계에 무슨 무슨 사우르스 열풍을 몰고왔으며 <폭로>를 통해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던진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가. 그의 대표 소설 '타임라인'이 교정쇄가 나오기도 전에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데 보고싶고 기대되고 환장하겠다. <슈퍼맨>으로 보자기 판매량을 급상승시킨 '리차드 도너' 감독이 인간병기 <리쎌웨폰>을 들고 왔을 때도 우리는 열광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엑스 맨>, <제 5 원소>의 프로듀서, <글라디에이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특수효과팀, <브레이브 하트>, <미션 임파서블2>의 세트 디자인팀까지 합세했다고 한다. 면면을 살펴보면 <식스 센스>보다 주도면밀한 드라마에 강렬한 반전, <반지의 제왕>보다 화려한 비주얼에 웅장한 스케일, <메트릭스>보다 현란한 액션과 모호한 철학적 해석까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결국 이것이 <타임라인>이 가진 한계다.
영화는 정색을 하고 묻는다. "니들, 팩스가 우스워 보였지?" 우스워 보였다. 별거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글자가 휙휙 날아다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들의 논리도 당연하게 들린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다 보낼 수 있는 팩스를 개발했다니까." 허걱이다. <플라이>를 기억하시는지. '물질전송' 과정에서 파리 유전자와 섞여 파리형 인간인지 인간형 파리인지가 됐다는 얘기는 이미 예전 이야기다. 이 기계는 사람들 여럿이 손 붙잡고 들어가도 끄떡없다. 유전자? 절대 안 섞인다. 그러고 보니 21세기다. 문제는 이쪽에서 보냈는데 저쪽에서 받지 못해서 그렇지.
그럼 그 사람, 교수는 어디로 간 것인가. 복잡하지만 여기서 양자역학, 평행우주론, 웜홀 등의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설명하기도 복잡하고 알아듣기도 힘들지만 이미 여러 영화에서 많이 써먹었던 내용들이다. 그렇다보니 새삼 신기할 것도 없다. 남들 4년 다니는 대학을 6년씩 다니며 전공했던 물리학 시간에 교수가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니네 집 마당에 이따만하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어. 니가 과거로 돌아가 그 나무를 자른 거야. 자, 현재는 어떻게 됐을까? 과거는 원인이고 현재는 결과다. 인과율의 법칙에 의거해서 말해보도록." 난 그렇게 대답했다. "거시기... 저희 집 마당에는 나무가 없거덩요?" 논제가 흥미롭지 않으면 거기 빠져들고 싶은 생각도 사라진다. 이게 <타임라인>이 가진 또 다른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