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미국. 인만(주드 로)과 에이다(니콜 키드먼)는 한번 마주친 것만으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곧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연인은 원치 않는 헤어짐을 맞는다. 징집 당시에는 사내 특유의 호기도 있었지만 직접 피부로 겪어 본 살육은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인만의 영혼은 걷잡을 수 없이 피폐해져 가고, 그를 고통으로부터 지켜 주는 건 사랑하는 여인의 편지와 사진뿐이다. 어느 날 병원 침대에 누워 사경을 헤매던 그에게 다시 에이다의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행군을 멈추고 제게 돌아오세요." 그녀의 간절한 청원을 되뇌어본 순간, 인만은 탈영을 결심한다. 이 행군이 어디를 향한 것이든, 누구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든 그가 갈 곳은 오직 그녀라고 결론 지은 탓이다.
인만이 목숨을 건 여정을 헤쳐나가는 동안 다시 스크린은 에이다를 비춘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기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양가집 아가씨'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피아노 건반 위를 유려하게 달리던 부드러운 손은 생존이라는 절대명제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이 때 그녀에게 은인이 되어주는 건 시골처녀 루비 튜스(르네 젤위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닭의 목을 비틀 수 있는 씩씩한 루비는 에이다에게 울타리를 세우고 젖을 짜고 채소를 가꾸는 등 서바이벌의 A to Z를 가르친다. 한편 루비가 에이다에게 배우는 건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일. 낮에는 밭에서 종일 일하고 밤에는 함께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두 여자는 꿋꿋이 삶을 개척해나간다.
안소니 밍겔라의 서사시 <콜드 마운틴>은 여러모로 같은 감독의 작품인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떠올리게 한다. 널리 알려진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이 우선 그렇고, 역사적 배경 안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타고 흐르는 비극적인 사랑을 담아냈다는 데에서도 궤를 같이 하기 때문. 그러나 <콜드 마운틴>이 애절한 사랑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니콜 키드먼과 주드 로라는 두 스타의 러브씬을 원했던 관객에게는 다소 미흡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정작 두 사람이 한 프레임에 등장하는 부분은 손에 꼽을 정도인 탓이다. 연인은 서로를 마음에 담고 끊임없이 그리워하지만, 영화는 마치 <멕시칸>이 그렇듯 두 사람의 삶을 각기 수평적으로 나열하며 진행된다.
인만이 연인에게로 향하는 길고 고통스런 여정을 감내하고, 에이다와 루비가 전쟁이라는 '늑대의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만큼 <콜드 마운틴>에서 방점이 찍히는 건 생존이다. 병사들의 공포감과 피로, 심지어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생생히 전해져오는 전쟁씬과 우아한 로맨스가 공존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영화는 모든 투쟁의 과정을 딛고 살아남는 사람의 것이다. 죽은 자는 산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는다. <콜드 마운틴>이 말하는 사랑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원작이 (<콜드 마운틴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출간되어 있다) 특별히 굵직한 사건에 의해 굴러가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여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자연 경관, 그리고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설을 스크린으로 가져온 밍겔라의 솜씨는 치하할 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가감의 과정을 거친 <콜드 마운틴>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매끈한 만듦새. 그 외 주연배우 두 사람은 정돈된 연기와 탁월한 미모가 뒷받침하는 스타의 아우라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르네 젤위거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십분 살린 유쾌함으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 케시 베이커를 비롯한 조연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록음악팬이라면 조지아로 분한 잭 화이트를 눈여겨볼 일. 올해 그래미상을 수상한 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리더이자 르네 젤위거의 실제 남자친구이기도 한 바로 그 사람이다.